경기도 경성부윤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경기도 경성부윤 | |||
초대 오바 간이치 |
제2대 가나야 미쓰루 |
제3대 사이토 레이조 |
제4대 요시마쓰 노리오 |
|
제5대 다니 다키마 |
제6대 마노 세이치 |
제7대 마쓰이 후사지로 |
제8대 세키미즈 다케시 |
|
제9대 안도 게사이치 |
제10대 이노우에 키요시 |
제11대 다테 요쓰오 |
제12대 간자 요시쿠니 |
|
제13대 사에키 아키라 |
제14대 다카하시 사토시 |
제15대 야노 모모로 |
제16대 후루이치 스스무 |
|
제17대 이쿠타 세이자부로 |
제18대 쓰지 게이고 |
|||
경기도 경성부 군정부윤 |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 | |||
초대 제임스 킬러프 |
제2대 제임스 윌슨 |
초대 이범승 |
제2대 김형민 |
|
<rowcolor=#ffffff> 서울특별시장 · 서울특별시장 권한대행 | }}}}}}}}} |
이범승 관련 틀 | ||||||||||||||||||||||||||||||||||||||||||||||||||||||||||||||||||||||||||||||||||||||||||||||||||||||||||||||||||||||||||||||||||||||||||||||||||||||||||||||||||||||||||||||||||||||||||
|
<colbgcolor=#2e2e2e><colcolor=#fff>
초대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 이범승 李範昇 | Lee Beomseung |
|||
출생 | 1887년 8월 29일 | ||
충청도
연기현 (現 세종특별자치시) |
|||
사망 | 1976년 9월 3일 (향년 89세) |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4동 | |||
본관 | 전주 이씨[1] | ||
호 | 지우(至愚) | ||
재임기간 | 초대 경기도 경성부 민정부윤 | ||
1945년 10월 25일 ~ 1946년 5월 9일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 26px" {{{#373a3c,#ddd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colbgcolor=#2e2e2e><colcolor=#fff> 배우자 | 김은엽 | |
자녀 | 슬하 2남 4녀 | ||
학력 |
제8고등학교 (법률학 / 졸업) 교토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학 / 학사) |
||
의원 선수 | 2 | ||
의원 대수 | 2, 5 | ||
약력 |
경성도서관장 민립대학기성준비회 발기인 고등관 5등 사무관 조선박람회 사무위원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 경상북도청 산업부 산업과장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제2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긍종의 숙부이다.
2. 생애
2.1. 해방 이전
1887년 충청도 연기현(현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만석 갑부 이기하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2][3], 호는 지우(至愚). 어려서 한문을 배우고 일본으로 유학, 1912년 나고야의 제8고등학교[4], 1917년 교토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학과를 졸업하고, 1919년까지 동 대학원에서 법제사와 조선법제사 과정을 연구했다.이후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서 2년간 근무하고 1921년에는 윤익선이 설립해 운영하던 경성도서관을 인수하여 관장으로 재직했다. 1923년 민립대학기성준비회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26년 9월부터 고등관 5등 사무관으로 임명되어 조선총독부 식산국 농무과에서 근무했다. 이후 조선박람회 사무위원, 조선총독부 임야조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경상북도 산업부 산업과장( 이사관)을 역임했다. 1940년 9월 경성에서 변호사로 개업했다.
2.2. 해방 이후
8.15 광복 후 미군정기 때 경성부윤을 지냈다. 1952년 자신의 조카 이긍종 국회의원의 사망으로 치러진 연기군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남도 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류지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충청남도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민주당 구파에 속하여 활동하였다. 1960년 8월 8일 국회에서 진행된 부의장 투표에서 13표를 받으며 부의장이 되지 못했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의 조선총독부 사무관 부문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관료·친일단체 부문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