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슬람 공화국 라흐바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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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 제2대 |
루홀라 호메이니 | 알리 하메네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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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바르 رهبر | Rahb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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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9f40> 현직 | <colbgcolor=#fff,#191919> 세예드 알리 호세이니 하메네이 / 제2대 |
취임일자 | 1989년 6월 4일 |
지위 | 이란의 최고지도자 |
관저 | 이란 지도자 관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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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رهبر( 페르시아어)페르시아어로 직역하면 지도자라는 뜻이다. 영문 표기는 supreme leader이기 때문에, 국내 언론에서는 대개 이를 번역한 '최고지도자'로 지칭된다. 이란의 이슬람 최고위 성직자, 최고지도자이자 국가원수를 뜻한다. 초기에는 시아파 성직자 중 최고위 지위인 '마르자에 타글리드'(مرجع تقلید)만이 라흐바르로 선출될 자격이 있었으나, 1989년부터는 시아파 신학자라면 누구나 라흐바르로 선출될 수 있도록 선출 자격이 완화되었다.
임기는 종신직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다. 다만, 시아파에서 믿는 예언대로 마흐디가 이 세상에 재림할 경우, 라흐바르는 통치권을 마흐디에게 헌납하도록 이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즉, 라흐바르는 구세주가 아닌 그 대리인 셈이다.
2. 상세
이란은 표면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지만 실제로는 이슬람 법학자 체제이며 다수의 정치학자들이 평가하기로는 신정국가다. 이러한 체제에서 종교지도자는 신의 대리인이며 대통령보다 지위가 높다. 국민의 투표로 뽑힌 전문가 의회에서 선출한다. 실질적으로는 전근대 군주와 비슷한 권한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란은 명목상 공화국이기 때문에 라흐바르는 군주가 아니며 국가 최고 지도자에 해당한다.[1]다만 전제군주에 가까운 권한과 위상을 가지고 있지만 공화제 요소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라흐바르는 일단은 세습직이 아니며[2] 전임 라흐바르가 후계자를 지명하지도 않는다.[3][4] 전문가 의회를 통한 간선제 형식이기는 해도 어쨌든 선거로 뽑힌 이들의 투표로 다음 라흐바르가 선출된다. 실제로 발동된 적은 없지만 투표한 의원들이 탄핵하는 것도 가능은 하다. 물론 신정일체 국가의 특성 상 라흐바르가 종교적으로 매우 심각한 물의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탄핵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라흐바르가 탄핵당하는 것보다 현재의 이란 정치체제가 무너지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도 있을 정도다.
한국 언론 매체에서는 라흐바르라는 칭호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아야톨라라고 호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야톨라는 어디까지나 종교계에서의 직책이지 정부의 직책이 아니다. 동시대에 1명만 존재할 수 있는 라흐바르와는 달리 아야톨라는 여러 명이고, 다들 권위 있는 신학자들이라 그동안 연구해 온 전문 분야가 다 다른데다 성향도 마찬가지로 제각각이다. 실제로 보수적인 이란의 대 아야톨라(마르자에 타끌리드)들 중에서도 호메이니의 벨러야테 파키 이론에 반대하거나 그 이론에는 동조하더라도 현재의 이슬람 신정 체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즉, 성직자인 아야톨라의 지위와 신정체제 국가의 최고지도자인 라흐바르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초대 라흐바르였던 호메이니는 원래부터 대 아야톨라였을 정도로 경력 있는 신학자였지만, 1989년 호메이니 사후 라흐바르가 된 알리 하메네이는 대통령을 역임하는 등 정치적 경력은 출중했던 반면 종교적으로는 호자톨 이슬람에 불과했고 최고지도자로 임명되기 얼마 전에야 겨우 아야톨라가 되었다. 하메네이는 1994년에 대 아야톨라로 선언되었으나 전임자 호메이니에 미치지 못하는 학식과 법률 능력으로 다소 무리하게 아야톨라로 승격되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벨러야테 파키 이론에 반대하는 일부 대 아야톨라들은 그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체포되고 구금되거나 사적으로 공격당하는 등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그것도 일부 강경 반대파 중 수뇌급에게만 내려진 처분이고, 아직도 이란에는 개혁 성향의 성직자들이 여럿 남아 있으며, 그중에는 강경 개혁성향을 넘어 아예 이슬람 신정 체제를 부정하는 사람도 있다.[5]
3. 역대 라흐바르
대수 | 이름 | 취임 | 퇴임 | 비고 |
초대 |
루홀라 호메이니 (1900 / 1902 ~ 1989) |
1979년 12월 3일 | 1989년 6월 4일 | |
2 |
알리 하메네이 (1939 ~ ) |
1989년 8월 6일 | 현재 | 제3대 이란 대통령 |
4. 권한
- 대통령 인준권과 해임권[6]
- 이란군 최고통수권자( 이란군· 이슬람 혁명 수비대 최고사령관)
- 국영TV 운영
- 최고정책결정권
- 평의회 의원 절반 선임
- 국정조정위원회 위원 전원 선임
- 헌법수호위원회 12명 중 6명 임명[7]
- 헌법수호위원회와 국회의 이견이 있을 때 심사하는 체제공익판별위원회 위원 전부[8]
- 국방장관, 정보장관, 외무장관, 과학장관 선임
- 선거와 투표의 공정성에 대한 최종 결정권
- 파트와(فتوى; 율법 해석)에 따른 초법적 직권 명령[9]
즉, 사실상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모두 지닌 절대권력자다.
[1]
다만 이란의 정치체제를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란을 전제군주제와 다를 바 없다며 까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역대 라흐바르인 호메이니와 하메네이의 자손들이 이란 혁명 이후 줄곧 기득권 중의 핵심 기득권이었으므로. 거기다 최근에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유력했던 에브라힘 라이시가 사망하면서 하메네이의 차남이 하메네이 사후 차기 라흐바르로 유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므로 더더욱.
[2]
사실 작정하면 세습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세습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워진 게 현 이란 신정 체제인지라 대놓고 세습을 할 명분이 없다. 국부로 떠받들어지는 호메이니도 라흐바르의 세습에 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허나 정작 그의 막내아들인 아흐마드 호메이니(1946~1995)는 그의 비서이자 수행원으로 요직에 있었고 그의 아들이자 호메이니의 손자인 하산 호메이니(1972~)는 이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시사하거나 하메네이 사후 차기 라흐바르 후보로 여겨지고 있다. 현임 라흐바르인 하메네이 역시 장남 모스타파(1965~)가 고위 성직자이고 차남 모즈타바(1969~)가 에브라힘 라이시 사후 차기 라흐바르 후보로 얘기가 오가는 등 이런 면에서조차 예전 팔라비 왕조와 거의 다를 바 없다는 평을 받는다.
[3]
보통의 독재 국가는 세습과 후계자 지명, 둘 중 하나의 방법을 이용해 대를 넘어 통치를 이어나간다. 전자는 북한, 후자는 중국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경우 정확히는 바로 뒤의 후계자가 아니라 한 단계 건너 뒤의 후계자를 지명하는 방식인데, 시진핑 뒤의 후계자를 후진타오가 지명해야 하나 시진핑이 전제권력을 가진 1인독재자가 되며 흐지부지되었고, 현재로서는 시진핑이 직접 후계자를 지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태이다.
[4]
물론 라흐바르가 작정하고 라흐바르 지위를 세습하거나 후계자를 지명하려고 시도하면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전문가 의회 의원 후보자의 출마 자격을 심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사실상 라흐바르의 친위 기관이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헌법수호위원회를 통해 라흐바르가 파벌이 다르거나 의견이 맞지 않는 후보의 출마를 완전히 차단하고 라흐바르를 일방적으로 추종하는 꼭두각시들로 전문가 의회를 채워버리면 (실질적인)후계자 지명이든 세습이든 라흐바르 마음대로 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후계자 지명은 몰라도, 앞선 주석에서 설명되었듯이 이란 정계 및 사회 분위기상 세습은 실질적으로 시도하기 쉽지 않다.
[5]
대표적으로 그 호메이니의 손자 후사인 호메이니(1959~)는 조부와 조부의 정권이 팔레비 왕조보다 더 나쁘다며 무려 할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할아버지를 비판해 가택연금 상태에 빠졌고 타국으로 망명 간 이후엔 조부의 적이었던 팔레비 2세의 장남
레자 팔라비를 만났다. 후사인은 장남 모스타파 호메이니(1930~1977)의 아들로 아흐마드(1946~1995)의 조카, 하산(1972~)의 사촌 형이다.
[6]
즉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위해서는 라흐바르의 인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라흐바르가 인준을 거절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사실 대통령 후보자는 후보등록 후 사실상 라흐바르의 친위 기관인 호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후보가 될 수 있어 라흐바르의 비위를 크게 거스르는 후보는 출마 자체가 차단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거운동 과정에서 라흐바르의 눈 밖에 날 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라흐바르가 인준을 거절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7]
나머지 6명은 라흐바르가 임명한 대법원장이 고르니 사실상 모두 임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호헌위원회의 역할은 헌법 해석을 내리거나 각종 국정선거에 등록한 후보의 자격을 심의해 출마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라흐바르의 선호에 따라 후보의 출마를 차단 또는 승인하는 방식을 통해 라흐바르가 합법적으로 국정선거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8]
즉, 라흐바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통과시킬 수 있다.
[9]
파트와 자체는 이슬람 율법학자의 견해를 뜻하지만 이 율법학자에게 어떤 식으로든 강한 영향력이 주어지면 그냥 견해로 끝나지 않게 된다. 과거
오스만 제국의 사례를 예로 들면 황제가 선전포고 등 무언가 일을 벌이려 할 때 명분을 얻고자 율법학자들에게 적당한 파트와를 반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으며 제국 쇠퇴기에는 황제에게 대드는
예니체리들과 한패인 학자들이 지금의 황제는 이러저러해서 잘못되었다는 식의 파트와를 반포해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러니 이란처럼 이 율법학자가 최고 지도자라면 왕명이나 황명으로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며 이를 지키지 않거나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경우 생명권과 같은 기본적 인권마저 위태로워진다. 파트와의 초법성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호메이니가 소설
악마의 시의 저자와 출판자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