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씨가 ' 윤', 이름이 '석렬'인 사람의 목록이다.2. 목록
2.1.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 윤석열(尹錫悅)의 오기(誤記)
자세한 내용은 윤석열/여담 문서 참고하십시오.윤석열의 '열'은 기쁠 열( 悅) 자로 두음법칙과 관계 없이 본음이 '열'이기 때문에 '윤석렬'로 표기될 수 없다. 윤석열이 본인의 이름을 [윤서결]이 아닌 [윤성녈]로 발음해 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어 방송에서도 그렇게 발음하기 때문에 이것이 듣는 이로 하여금 혼동을 유발하는 듯하다.
2.2. 조선 후기의 문신
尹錫烈, 1729년 ~ 몰년 미상.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지중(祉仲).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윤사동(尹師東)이고, 어머니는 반남 박씨로 박사설(朴師卨)의 딸이다. 아래로 남동생 진사 윤흠렬(尹欽烈, 1734 ~ ?)이 있었다.
1750년(영조 26) 식년 진사시에 2등 25위로 입격했는데, 당시 방목(榜目)에 '이석렬(李錫烈)'로 오기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762년(영조 38) 6월 22일에 의금부 도사(都事)에 임명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고, 이튿날인 6월 23일 제용감 봉사(濟用監奉事, 종8품)가 되었다. 1763년(영조 39) 6월 20일 의영고 직장(義盈庫直長, 종7품)이 되었고, 그해 10월 22일 치러진 증광 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해 10월 30일 승정원 가주서(假注書, 정7품)[1]에 임명되었다. 이후 11월 2일과 1764년(영조 40) 2월 18일 부사정(副司正, 종7품)에 임명 된 것, 1764년 4월 8일 사변가주서(事變假注書)에 임명되어 4월 24일 병으로 면직된 것, 12월 6일 정자(正字, 정9품)로 있었던 것 외에는 줄곧 승정원 가주서로서 직무를 수행했다.
이후 1764년 12월 25일 성균관 전적(典籍, 정6품) 및 사정(司正, 정7품)에 임명되었고, 1765년 1월 2일 사헌부 지평(持平, 정5품)이 되었다. 1월 14일 부사과(副司果, 종6품), 5월 14일 세자시강원 사서(世子侍講院司書, 정6품)를 거쳐 9월 24일 병조 좌랑(佐郞, 정6품)에 임명되었으나, 10월 17일 병이 위중해 면직되었다. 1766년(영조 42) 4월 16일 사간원 정언(正言, 정6품)에 임명되었으나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해 6월 18일 사직했다.
1767년(영조 43) 1월 15일 조정에 복귀해 세자시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學, 정5품)에 임명되었고, 2월 19일 병조의 인사 행정을 담당하는 병조 정랑(正郞, 정5품)에 임명되었다. 11월 14일에는 경기도사(京畿都事, 종5품)가 되었다.
1768년(영조 44) 10월 17일 홍문관 부수찬(副修撰, 종6품), 11월 3일 홍문관 수찬(修撰, 정6품), 11월 19일 홍문관 부교리(副校理, 종5품) 등 홍문관의 요직을 두루 거쳤고, 1769년(영조 45) 3월 28일에는 서학 교수(西學敎授, 종6품), 3월 29일 사간원 헌납(獻納, 정5품), 4월 9일 사헌부 집의(執義, 종3품), 4월 18일 사직(司直, 정5품), 10월 5일 홍문관 교리(校理, 정5품) 등을 역임했다.
1770년(영조 46) 10월 19일 강진현감(康津縣監, 종6품)에 제수되었고, 1771년(영조 47) 5월 11일 명릉(明陵)의 고유제(告由祭: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적어서 신명에게 알리는 제사)에서 축문을 읽는 대축(大祝)이 되었는데, 직함이 없어 군직(軍職)을 부여받은 이후로 더 이상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후 1794년(정조 18) 3월 12일 승정원일기 기사에서 윤석렬의 남동생 윤흠렬을 '故校理錫烈弟也.(죽은 교리 윤석렬의 아우입니다.)'라고 칭하는 것으로 보아 1771년에서 1794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2.3. 기타 인물
- 尹錫烈 - 일제강점기의 순사이다. 1920년 각종 신문에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다.
- 尹錫烈 - 1949년 당시 남조선로동당의 영등포구 책임자. 1949년 9월 14일 당원 30명과 함께 체포되었다.
- 尹錫烈 - 1952년 당시 제주도경찰국장이다. 1952년 2월 12일자 경향신문 2면에 윤석렬 제주도경찰국장이 '이제는 일대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공비 한 놈을 죽이려면 경찰관도 한 사람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등의 강경 발언을 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동년 10월 15일 동아일보 2면에는 당시 내무부에서 윤석렬을 해임하고 후임 경찰국장으로 이경진(李慶進)을 임명하였다고 쓰여져 있다. 다만 제주경찰청 웹사이트의 '역대국장' 정보란에는 제14대 경찰국장 성명으로 윤석영이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