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前 축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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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윤기원 尹基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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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7년 5월 20일 | |
부산광역시 | ||
사망 | 2011년 5월 6일 (향년 23세) | |
서울특별시 서초동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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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8cm / 체중 79kg | |
포지션 | 골키퍼 | |
학력 | 거제고 - 아주대 | |
소속 구단 |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0~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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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골키퍼였다.2. 선수 생활
거제고등학교와 아주대학교를 거쳐서 2010년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지명되어 인천의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팀의 주전이었던 김이섭 골리가 나이가 꽤 많았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필요했고, 그는 송유걸과 경쟁을 펼치면서 성장해나가던 유망주였다. 첫 시즌 윤기원은 2군에서 뛰었지만 허정무의 눈에 띄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출전,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이 활약으로 다음 시즌에는 송유걸을 제치고 인천의 넘버 원 골리가 되었고, 안정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3. 갑작스런 사망과 의문점
정락인 닷컴의 윤기원 사망사건 의문점 정리글.그런데 2011년 5월 6일 11시 30분 경, 윤기원은 서울특별시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 휴게소에서 본인의 르노삼성 SM5 승용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젖힌 채 누워 있었고, 조수석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이 있었다. 차 안에서 현금 봉투[1]가 발견되기도 했지만 유서는 없었다. 사망 원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고, 타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했다. 사망 당시 윤기원의 나이는 고작 23세였다.
경찰의 수사 결과와는 달리, 윤기원의 죽음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당시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었고, 여러 정황상 윤기원 역시 승부조작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 FC의 감독이었던 허정무는 K리그 개막을 즈음해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해 윤기원의 발견은 최대 소득”이라고말하는 등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 막 그 잠재력을 인정 받으며 주전 선수로서 큰 꿈을 향해 가던 윤 선수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석연치 않았다.
이에 경찰의 수사 발표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구보다도 윤기원의 유족은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윤기원의 어머니는 2014년 12월에 윤기원 사망사건에 대한 의혹을 정리해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키퍼』(책과 나무)를 내고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기도 했다. 책의 출판에 앞서 SBS < 궁금한 이야기 Y>(225회)에서도 윤기원의 죽음의 의혹을 다루기도 했다. 그리고 2016년 2월 17일에는 KBS < 추적60분>에서 윤기원의 타살 정황이 담긴 동료의 증언이 방송되면서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이 사건의 의혹으로는 우선, 주전으로 선발돼 희망에 부풀었던 윤 기원이 자살을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웠음에도 실내에 그을음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윤기원이 숙소에서 나와 휴게소에서 변사체로 발견되기까지의 행적에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의혹이 다수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의혹은 < 궁금한 이야기 Y>와 < 추적60분>, 그리고 윤 선수의 어머니가 쓴 책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키퍼』(책과 나무)에 상세하게 풀이돼 있다.
한편, 2015년, 안종복 전 인천 단장이 비리와 심판 매수 등으로 인해 구속되자 다시 한번 논란이 일어났으며, 가족들은 다음 아고라를 통해 청원을 하기도 했다.
방송에 힘입어 2016년 2월 22일, 5년만에 재조사가 들어갔다. 그러나 2017년 2월 13일, 검찰과 경찰 모두 제대로 된 증거를 아무것도 찾지 못해 내사종결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내사 과정에서 유족들이 오히려 협조를 거부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위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경찰이 "해당 동료 선수가 누군지 아는 유족 측에 연락을 취했다"라고 하지만,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 씨는 경찰이 내사를 진행하는 동안 한 번도 연락을 해 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유족 측이 "타살이 명백하고 그 정황이 수두룩한데 당시 수사팀이 자살로 몰아갔다. 서초경찰서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는 것은 더더욱 신뢰할 수 없는 주장이다.
물론 유족이 경찰을 신뢰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두 차례의 방송에서 드러난 것처럼 경찰의 수사에는 여러 가지 의혹이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유족은 힘들게 증언한 윤기원의 동료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의 내사는 유족에 연락 한 번 없이 조용히 종결된 것으로 보이며, 위 보도에 인용된 경찰의 발언은 의혹을 가질만한 정황이 뚜렷함에도 내사를 흐지부지 마치게 된 책임을 오히려 유족 측에 전가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한편 경찰과 검찰의 재수사가 진행 중이던 2016년 말, 윤기원의 아버지가 사건해결을 위해서 도와주던 여성상담사를 성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기사. 그러나 이 사건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무죄로 확정됐고, 오히려 이 사건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은 인터넷에서 '유명 운동선수 아버지 성폭력 사건'으로 유포되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블로그 구르지 않는 돌에서 총 9편에 걸쳐 연재 형식으로 다뤘다.
[1]
팀 행사후 남은 잔금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