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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11 18:27:31

육영공원


육영공원
育英公院
국가 조선 대한제국
구분 공립교육기관
소재지 서울 전동
개교 1886년 9월 23일
폐교 1894년

1. 개요2. 과목3. 부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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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후기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관립 교육기관으로 근대적 신교육으로 발전하는 교량적 역할을 하였으나, 영어교육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고급 양반 자제만을 대상으로 삼는 등 국민 대중 교육에는 한계가 있었다.

2. 과목

교과 내용은 학습차제(學習次第)라 하고 책 읽기(讀書)·글쓰기(習學)· 외국어· 수학· 자연과학· 지리· 역사· 정치학· 국제법· 경제학 등을 교수하려 했으나 그중 일부분은 실현되지 못했다.

강의는 영어로 했으며 교과서도 영어로 된 것을 채용하였다. 임금이 주재하는 영어 받아쓰기 시험이 있었으며, 여기서 합격한 사람은 영어 실력을 인정받아서 관리로 등용되었다.

3. 부가 설명

학생 수는 1886년에는 35명, 1887년에는 20명, 1889년에는 50명이었다.

교사는 미국인인 호머 헐버트(H.B Hulbert) · 벙커(D.A. Bunker) · 길모어(G.W Gilmore) 등이 초빙되었고 이들 중 길모어가 귀국 한 뒤, 기포드(D.L Gifford) 목사가 얼마 동안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894년, 영어학교로 교명을 바꿀때까지 육영공원은 한국 교육이 근대적인 신교육으로 전환·발전하는 과정에서 교량적 역할을 한 최초의 관립학교였다.

설립 초기에는 동문학[1] 출신 통역조교를 두었으나, 점차 통역이 영어습득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교수진이 통역 조교들을 해임했다. 아펜젤러의 기록에 따르면 학생들 대다수는 양반층이었기 때문에 입신양명을 위해 영어를 공부하려 했으며, 영어는 10개월 내에 3천 단어를 익힐 만큼 열성적으로 배웠지만 신학문이나 종교 관련 내용은 대부분 재미없어했다고 한다.

설립 당시에는 서울 정동에 있다가 1891년 전동으로 이전했다.

대한제국 최후의 주 영국공사 이한응, 이완용이 육영공원 출신이다.
[1] 관립 외국어 교육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