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전국시대의 인물로 생몰년도 미상. 쓰시마 도주 소 요시시게(宗義調)의 가신이다. 조선에서는 본성을 따라 귤강광(橘康廣), 즉 타치바나 노 야스히로([ruby(橘,ruby=たちばなノ)][ruby(康,ruby=やす)][ruby(廣,ruby=ひろ)])라고 기록되어 있다.2. 상세
1586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조선에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로 파견되어 조선 통신사를 요구했으며, 이 당시의 나이는 50세가 넘어 용모가 크고 수염과 머리털은 반백이었다. 또한 조선의 관·역마다 반드시 가장 좋은 방에 거처하면서 행동이 거만하고 보통 때의 일본 사신과는 아주 달라, 보는 사람이 괴상하게 여겼다고 한다.상주 목사 송응형(宋應泂)[1]이 베푼 연회에서 기생의 가무가 시작되자 송응형에게 '자신은 전쟁 속에 살면서 수염과 머리털이 희어졌는데, 당신은 기생 속에서 아무 걱정없이 지냈는데도 머리털이 희게 된 이유가 뭐냐'고 비꼬았다. 인동(현 구미시)에서는 백성들을 동원해 창을 잡고 길가에 늘어선 것을 보자 '너희들이 가진 창의 자루가 너무 짧다'고 디스했다. 한양에서 예조 판서가 연 연회장에 후추를 흩어놓자 기생·악공들이 서로 다투어 줍는 소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보더니 '너희 나라는 곧 망하겠구나. 기강이 허물어져서 망하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깠다. 일본의 쓰시마 도주는 조선으로 따지면 부사나 목사 급인데, 도주도 아니고 그 가신이 상주 목사는 물론 예조 판서 앞에서도 조롱으로 일관했으니, 괴상하게 여길 만도 하다. 일본국왕사 명목으로 파견된 이상 조선에서도 얘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특사'로 봐야지 '쓰시마 섬의 아전'으로 볼수는 없다. 다만 히데요시가 선정한 특사는 아니고, 쓰시마 도주가 부하중에서 조선사람들이 얼굴을 모르는 자 중에 적당히 선발해서 보낸 것이다. 어차피 히데요시는 조선을 쓰시마의 속국정도로 알고 있어 굳이 직접 특사를 보낼 생각을 하지 않고 쓰시마 도주에게 알아서 처리하게 하였다.
난중잡록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이 적혀있는데, 제목부터 '귤광련(橘光連)이 의를 위해 죽다'이다. 유즈야가 조선 조정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침략할 계획을 세우고 있음을 알리며 자신의 주군인 소 요시토시 등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히데요시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것도 조선 침략에 반대했기 때문으로 나온다. 이후 임진왜란이 끝나고 에도 막부가 성립한 1606년 회답사로 파견된 전계신(全繼信)과 역관 박희근(朴希根)이 운좋게 살아남은 유즈야의 아들을 만나, 그동안 있었던 일을 듣게 되었고 이를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柳永詢)에게 보고한다. 유영순은 다시 이 사실을 조정에 알렸고 조정은 부산에 유즈야의 사당을 건립했다는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