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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3:11

유리 베즈메노프

1. 개요2. 그가 주장한 자기 생애3. 실상

1. 개요

유리 베즈메노프(Юрий Безменов)는 KGB 선전선동 분야 전문가를 자칭한 사기꾼이다. 캐나다로 망명 후 개명한 이름은 토마스 슈만(Tomas David Schuman)이다.

2. 그가 주장한 자기 생애

1939년 모스크바주 미티시에서 태어났다. 인도의 소련 정유 시설 담당 기관에서 통역 및 홍보 담당자로 일하며 커리어를 시작했으며[1] 대외적인 선전 매체 편집요원으로 일했다. 일을 하면서 점점 소련에 대한 환멸감과 인도에 대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시작해 마음을 바꾸어 1970년에 히피로 위장해 그리스로 탈출하여 캐나다로 망명하였다. 미국측은 그가 중요한 KGB 요원이라고 주장한 반면 소련측은 그는 전문적인 KGB 장교가 아닌 KGB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인원에 불과하다고 이를 일축하였다.

망명 후 1984년에 인터뷰에서 소련이 알게 모르게 여러 공작술로 미국인 중 아동 및 청소년에게 레닌주의를 세뇌시켰으며 그들이 어른이 되면 미국에게 장기적 위협이 되어 무의식적으로 소련의 첨병이 될 것이라고 경고문을 남겼다. 그는 일단 한 번 세뇌된 미국인들이 어른으로 자라 소련의 첨병이 되면 정상적이라면 멸망하고도 남을 소련에게 우호적으로 자본을 지원할 것이며 똑같은 방법으로 소련의 암묵적 지원을 받은 인도에 의해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이 일어나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미국만이 아닌 다른 나라도 이미 소련의 세뇌에 당해 있으니 주의하라고 주장하였고 소련의 편을 드는 매국행위에 동참해도 결국 끝은 이득을 끝까지 다 보고 토사구팽하기로 정해진 소련에 의한 숙청일 뿐이라고 일축하였다. 그 근거로 자신이 인도에서 일하던 당시 히피 68 운동에 참여한 서방 청년들과의 접촉을 줄이라는[3] 소련 당국의 명령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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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포일러] ( 영어)

한국에서는 2012년 조갑제가 이에 주목한 칼럼을 남김으로서 보수와 우파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가정을 꾸려나갔고 미국에서 살아가게 된다. 미국에서 여러 저서를 저술하고 대학에서 국제관계학 강사로도 일하던 그는 1993년에 과도한 알코올 의존증이 야기한 심장마비로 인해 사망했다.

3. 실상

베즈메노프는 극우 음모론자들에 의해 KGB 중요 요원으로 떠받들어졌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소련의 국영언론인 노보스티 통신사 직원이었다는 것뿐이다. 1970년 망명할 때 나이가 31세에 불과했기에 KGB 내의 요직을 차지했을 것이란 기대는 어렵다. 설사 우연히, 혹은 노력을 통해 KGB 내의 요직을 차지했다하더라도 이후 망명지인 캐나다에서 알코올 중독으로 물의를 빚었고, 1973년 몬트리올의 CBC 방송국에서 얻은 러시아어 방송 자리도 두 달만에 자신의 직장에 소련 스파이가 자신을 잡으러 왔다고 의심하며 주위 사람들을 압박해 인간관계를 파탄내서 1976년에 결국 쫒겨났다. 눈에 띄지 않고 절제할 줄 알아야할 첩보원으로써의 자질이 크게 의심된다. 더구나 게다가 KGB라기에는 입을 너무 싸게 놀려서[5] 1970년대 후반에 가면 캐나다 정보기관에게 전혀 신뢰할수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혔다. # #

방송국에서 쫒겨나 버스 회사 수위 같은 직업을 전전하던 그를 불러주던 세력이 있었으니 미국의 극우 음모론자들이었다. 1980년대 초 베즈메노프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고 극우 음모론자들의 초청을 받아 평소에 이들 세력이 고깝게 보던 언론, 노동조합, 교육계, 무신론자, 소수자 운동권 등등을 KGB의 공작에 의해 지원받아 만들어진 단체라고 그들을 마녀사냥에 몰아세우며 그들을 만족시켰다. 실제로 그가 별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정황근거만 내세우고 아전인수식 해석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그의 주장은 극우 음모론자들이 소유한 미디어를 통해 널리 유포되었다. 실상에 있어 베즈메노프는 조국에 환멸을 느껴 서방으로 탈출한 수많은 망명객 중 한명일 뿐이었단 것이다.

방글라데시 독립이 KGB 공작의 결과라는 것은 베즈메노프식 아전인수의 정점이다. 독립전쟁을 촉발한 것은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서파키스탄 정부의 서치라이트 작전이었고, 독립전쟁의 환경을 조성한 것은 동파키스탄에 대한 서파키스탄의 수탈과 벵골인에 대한 차별, 우르두어 강요 등이었다. 인도의 개입을 촉발한 것은 서파키스탄의 진압으로 인한 대규모 난민사태와 인도 국경지대에 대한 서파키스탄의 폭격이었다. 여기서 KGB가 동파키스탄 주민을 세뇌해서 독립전쟁을 유도했다고 볼 건덕지는 없다.

더구나 유리 베즈메노프가 언급한 방식들은 대다수 제국주의 시절부터 식민지 내의 독립주의 결사들을 약화시키거나 당장 식민지로 삼기엔 버거울 정도로 견고한 국가들을 식민화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고전적인 방법들이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의 국가들을 대상으로 기독교, 자본주의, 산업화 등의 서구적 이데올로기를 통한 이념적 전복, 교회, 대기업 자본 주도의 교육기관들을 통한 현지인들의 서구적 지식인화를 통한 식민국 내의 친제국파 양성, 그리고 식민화 완성 이후 벌어진 지식인과 지역 토호 세력들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강제이주 등등, 주어가 소련과 공산주의로 바뀌었을 뿐 결국 근본적으론 18~19세기에서부터 이용되었던 전통적인 방식의 정복 방식이었고, 더구나 당시 미국도 중앙, 남아메리카에 세워진 여러 극우 정권들의 더러운 전쟁을 조력하는 콘도르 작전을 CIA 주도로 행하며 오히려 제국주의 열강 국가들이나 KGB나 CIA나 모두 상대국들에 대한 무자비한 이념적 정복과 숙청을 아끼지 않았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입증할 뿐이다.

유리 베즈메노프가 '고백한' 사상 오염 이론도 소련이 생각해낸 기발한 방식은 아니며, 안토니오 그람시의 문화적 헤게모니 점령 이론에서 따 온 것이다. 오히려 이는 정 반대로 80년대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붕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동방 정책 데탕트를 통해 동유럽 내에 점차 유입되기 시작한 서구 자본 세력들은 동유럽 시민 사회 내에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 자본주의에 대한 동경 등을 심으며 '혼란화'를 완성시켰고, 태생적으로 자본론, 공산당 선언 등의 서적으로부터 유래되야하는 전문지식들을 필요로 하는 공산,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지식의 부재와 자본주의의 환상을 노린 '심리적 전술'을 사용했으며, 결국 그렇게 동유럽 대중 사회 내에서 제거될 수 없는 '(공산주의 정권 입장에서 보면) 오염된' 세대들이 동독일 붕괴, 동유럽 공산체제 붕괴, 더 넘어 소련 그 자체를 붕괴시켰다.


[1] 이 때 정유시설 직원의 3분의 2가 KGB 장교들이었다고 한다. [2] FULL INTERVIEW with Yuri Bezmenov: The Four Stages of Ideological Subversion (1984). 소련의 전략 중 이데올로기 전복을 네 단계로 다루었다. [3] 이들이 공산주의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적대세력으로 돌아설 것이 뻔하기 때문에 소련 당국에서 접촉을 자제하라고 지시를 내렸던 것이다. 당시 서방 청년들은 체 게바라와 같은 혁명가들에 혹해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게임스포일러] 유리 베즈메노프는 해당 작품의 소련 간첩 페르세우스가 문화, 정신적 침공의 중핵이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페르세우스가 노리고 있는 것은 고작 문화, 정신적 침공 따위가 아닌 미국이 유럽 국가들 내에 설치한 핵무기들과 핵배낭들을 통한 물리적 자멸이었고, 정작 정신적인 침공을 하고 있는 쪽은 따로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베즈메노프를 사용했단 것 자체가 하나의 서술트릭일 가능성이 높다. [5] 필리핀인 이웃에게 캐나다 망명과정과 그 과정에서 CIA의 공작에 대해 전부 떠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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