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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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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啓點[1]으로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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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2C92> 본관 장흥 위씨(長興 魏氏)[2]
출생 1963년 8월 7일 ([age(1963-08-07)]세)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신월리 초당마을
학력 대덕초등학교 (졸업 / 49회)
대덕중학교 (졸업 / 25회)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 행정학 83 / 학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 행정학 / 석사[3] · 박사[4])
소속 미래인재컴퍼니

1. 개요2. 생애3. 특징
3.1. 강의3.2. 교재3.3. 기타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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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무원 시험 행정학 및 지방자치론 강사.

2. 생애

1963년 8월 7일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면 신월리 초당마을에서 아버지 위병필(魏柄弼, 1906. 5. 3. ~ 1970. 11. 12.)과 어머니 장연 변씨(長淵 邊氏) 사이에서 4남 5녀 중 셋째 아들, 여덟째로 태어났다.[5] 고향의 대덕초등학교와 대덕중학교를 졸업한 후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6]에 진학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에 입사하였다.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유능한 기능인으로서의 삶을 꿈꾸었던 그는 처음에 직장생활에 만족했으나, 1년 정도 된 어느 날, 고졸 출신으로 최상급 지위에 있는 50대 초반의 주임이 대졸 출신의 30대 초반의 계장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고생을 한 것을 계기로 대학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다.[7] 이후 포항종합제철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1983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했고[8], 졸업 후에는 사직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에 진학하여 1992년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에 조교로 2년 간 근무하다가 1996년에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원광보건대학교 공무원행정과에 출강하면서 2000년에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행정고시 경찰간부후보생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PSAT 도입 전 한국법학원에서 행정고시 1,2차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후 김중규와 마찬가지로 행시 강의를 하다 노량진으로 옮겼다.[9] 2005년에는 신림동 한국법학원 이외에도 성균관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에도 출강하여 많은 시간을 강의로 보내면서도 다 소화해냈다고 한다.

공단기로 오기 전 남부고시학원, 웅진패스원 학원, 윈플스에 있었으며 웅진패스원 시절 김재정- 신성일-박민주- 박준철-위계점 라인으로 선택과목 도입 이전에 1타였던 적이 있다.

이후 2022년 12월 공단기에서 강의 판매종료 글이 공지됨에 따라 2023년부터 타회사에서 강의할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카페에서 2023년 1월부터 미래인재컴퍼니[10]에서 강의하였고 2024년부터 강의를 그만둔다고 한다

3. 특징

3.1. 강의

내용적으로 김중규보다도 잡다한 이론이나 법령을 풍부하게 알려주는 편이라 지엽의 끝판왕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어려운 강의의 특징으로 인해 불의타에 대한 적중률이 높다는 특징이 있으며 상대적으로 어려운 시험을 보는 7급 수험생들 사이에선 2타 강사로 인식되고 있다.[11]

7급 지방자치론 강의도 하고 있는데 행정학 과목과 지방자치론 과목를 가르칠 때의 특징이 정반대인 강사라는 평가도 있으나, 그래도 법령과 예상문제를 꼼꼼이 본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론도 모르면서 무작정 처음부터 기출문제 중심으로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비판하면서 행정학은 처음에 이론을 구석구석 공부하고나서 기출문제를 풀어야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3.2. 교재

이 강사의 진가는 교재라고 할 수 있는데 예상문제를 책으로 출간한 진도별 모의고사와 전범위 모의고사가 나름대로 유명하다. 기출은 물론, 기출 범위 밖에서까지도 온갖 잡다한 행정학 이론들을 문제화하였는데 박사 출신답게 행정학 각 파트에서 저명한 교수들의 논문과 교과서를 참고하여 문제를 만드는데 적중률이 좋다. 그래서 모의고사를 풀 때는 매우 어렵지만 국회직 8급 등 난이도가 높은 시험에서도 상당히 좋은 적중률을 자랑하는 편이다. 요약서인 핵심체크 역시 440페이지 안팎으로 행정학의 이론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서, 교재 면에서는 구매 비율이 높은 강사로 통한다.

기본서는 기본적으로 교수들 책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타 강사들이 도표나 그림으로 이해를 돕는 것을 자제하고, 텍스트가 90% 이상이다. 여러모로 초심자보다는 재시생 등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접근하기에 좋은 강사다.

기출문제집 역시 다양한 문제들을 수록한다고 한다. 지엽의 끝판왕답게 과거 서울시 문제는 물론 국회직, 군무원 문제까지도 풍부하다.

지방자치론 기본서+법령집의 경우 예상문제집 등 방대한 이론을 잘 정리할 수 있는 교재가 강점인 행정학과는 달리 꽤나 콤팩트하게 정리할 수 있는 교재를 사용하고 있다. 이론과 단원별 문제를 모두 포함해서 240쪽에 불과하고 뒤에 수록된 시행처별 기출까지 포함해도 300쪽이 채 안 된다. 다만 진도별+전범위 모의고사의 경우에는 행정학과 동일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어려운 지방직 7급 시험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3.3. 기타

4. 여담



[1] 족보에는 魏 [2] 판서공파(判書公派) 31세 계(啓) 항렬. [3] 석사 학위 논문 : 行政機關(행정기관) 提案制度(제안제도)의 活性化(활성화) 方案(방안)에 관한 硏究(연구) : 行政機關(행정기관)과 浦項綜合製鐵株式會社(포항종합제철주식회사)의 提案制度(제안제도)의 比較硏究(비교연구)를 中心(중심)으로(1992) [4] 박사 학위 논문 : 民營化政策(민영화정책)이 기업의 經營成果(경영성과)에 미치는 影響(영향) : 銀行産業(은행산업)을 中心(중심)으로(1996) [5] 어머니 장연 변씨는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며, 첫째 부인 선산 김씨 김재후(金在厚)의 딸은 슬하에 맏형 위계춘(魏啓椿)과 누나 2명을 둔 뒤 1952년 1월 29일 사망하였다. [6] 당시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는 3년 동안 기숙사 생활, 학비 감면, 그리고 졸업 후 포항종합제철 입사 보장 등의 혜택이 있던 특성화 고등학교였다. [7] 원래 사업과 공부 중 고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신의 업무분야가 압연 분야인데 그 분야에서는 사업을 단독으로 하기 어려워 공부로 결정했다고 한다. [8] 당시 포항제철은 병역특례가 주어져 병역문제도 해결하고 직장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대학문제는 방송통신대로 해결. [9] 특히 1차 전공 객관식이 없어지고 공직적격성능력평가가 도입되자 파이가 줄어들어 신림동 강의를 그만두고 노량진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0] 신광은, 전효진이 강의를 하고 있는 그 회사이다 [11] 이런 특징으로 인해 공시계의 끝판왕인 국회8급 합격자 제자도 제법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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