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월터 피츠월터 Walter FitzWal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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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400년 ~ 1431년 11월 23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피츠월터 남작령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 |
아버지 | 월터 피츠월터 | |
어머니 | 조앤 데버루 | |
형제 | 험프리 피츠월터 | |
아내 | 엘리자베스 치데크 | |
자녀 | 엘리자베스 피츠월터 | |
직위 | 피츠월터 남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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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다.2. 생애
1400년경 제4대 피츠월터 남작 월터 피츠월터와 초대 데버루 남작 존 데버루의 딸인 조앤 데버루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아버지 월터 피츠월터는 글로스터 공작 우드스톡의 토머스의 가신으로, 1395년 토머스가 아일랜드 원정을 떠났을 때 동행했다. 1399년 10월 18일 새 국왕 헨리 4세가 등극했을 때, 그는 노리치의 에드워드가 1397년 토머스가 반역 혐의로 체포되어 칼레에 수감된 뒤 피살된 사건의 배후에 있다며 고발했으며, 결투 재판까지 신청했다. 헨리 4세는 두 사람을 뜯어말렸고, 1401년이 되어서야 피츠월터와 에드워드는 공식적으로 화해했다.이후 웨일즈에서 반란을 일으킨 오와인 글린두르의 공세에 맞서 웨일즈 국경에 있는 도르스톤 성을 요새화했다. 이후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 로마와 나폴리 사이에서 사라센 해적에게 납치된 뒤 튀니스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오랜 기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제노바 상인들에 의해 석방되었지만 포로 생활에서 겪은 고초로 인해 몸이 쇠약해지다가 1406년 5월 16일 이탈리아에서 사망했다. 어머니 조앤 데버루는 남편이 사망한 뒤 제2대 버넬 남작 휴 버넬과 재혼했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 험프리 피츠월터가 제5대 피츠월터 남작이 되었지만, 얼마 살지 못하고 1415년에 자식 없이 사망했다. 이후 제6대 피츠월터 남작이 된 그는 잉글랜드 궁정에서 자랐고, 1420년 잉글랜드 국왕 헨리 5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노르망디에서 원정 중이던 헨리 5세와 함께 전쟁에 참전했고, 1420년 7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진 멜룬 공방전에 참전했다. 1421년 클라렌스 공작 랭커스터의 토머스의 앙주 원정에 참여했다가 그해 3월 22일 보제 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생포된 뒤 1423년 상당한 몸값을 지불한 후에 풀려났다.
1425년 글로스터 공작 랭커스터의 험프리가 아내이자 에노 여백작 자클린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저지대 국가로 군대를 이끌고 갈 때 참여했다. 1426년 1월 질란트에 상륙했지만 부르고뉴 공작 선량공 필리프가 파견한 부르고뉴군과 플란데런 연합군의 공세에 격파되어 본국으로 피신했다. 이후 1429년과 1430년에 잉글랜드 의원이 되었고, 1431년 다시 프랑스에서 군사 작전을 수행하던 중 그해 11월 23일에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사망했다. 사후 잉글랜드로 옮겨져 에식스 카운티에 있는 리틀 던모우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그는 생전에 도셋의 치데크 기사 존 치데크의 딸인 엘리자베스 치데크와 결혼해 외동딸 엘리자베스(1430 ~ 1505)를 낳았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사망한 뒤 제7대 피츠월터 여남작이 되었으며, 기사 존 레드클리프와 초혼, 기사 존 딘햄과 재혼했다. 첫번째 결혼해서 아들 존 레드클리프를 낳았고, 존 레드클리프는 어머니가 사망한 1505년에 9대 피츠월터 남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