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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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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 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 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기초자치단체가 아니다. }}}}}}}}}




1. 개관

파일:원주시 CI.svg 원주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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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국
日華國
추측
<colbgcolor=#008080>
평원군
平原郡
469
북원소경
北原小京
678
북원경
北原京
757
원주
原州
940
일신현
一新縣
1259
정원도호부
靖原都護府
1269
익흥도호부
益興都護府
1291
원주목
原州牧
1308
성안부
成安府
1310
원주목
原州牧
1352
강원도
원주목

原州牧
1395
강원도
원성현

原城縣
1683
강원도
원주목

原州牧
1692
강원도
원성현

原州縣
1728
강원도
원주목

原州牧
1737
충주부
원주군

原州郡
1895
강원도
원주군

原州郡
1896
강원도
원주시

原州市
1955
강원도
원성군

原城郡
1955
강원도
원주군

原州郡
1989
}}}}}}}}}

세부 내역은 다음과 같다.[출처]
파일:원주시 CI.svg 원주시의 역사
시대 시기 내용
삼한시대 4세기 중엽 밝혀진 유적조사에 따르면, 원주 지역에는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생활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삼한시대의 원주지역은 54개 부족국가로 형성된 마한의 가장 동쪽에 있었던 일화국(日華國)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백제 마한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는 백제의 영토였다.
장수왕 57년(469) 원주지방을 평원군이라 하였다.
남북국시대 문무왕 18년(678년) 전국의 행정구역을 재 정비하여 9주 5소경을 설치할 때 북원소경이라 하였다.
경덕왕 북원경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9세기 말 신라가 쇠퇴하면서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양길은 원주지역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하여 오늘날의 강원특별자치도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고려시대 태조 23년(940) 북원경을 폐지하고 원주를 개칭하였다.
성종 14년(995) 전국의 행정구역을 10도 12목으로 개편하였을 때 원주지방은 충원도(현재 충북)에 소속되었다.
현종 9년(1018) 지주사(知州事)[1]를 두었다.
고종 46년(1259) 원주가 왕명을 거역하였다는 이유로 일신현(一新縣)으로 강등시켰다.
원종 원년(1260) 지원주사(知原州事)로 복구하였다.
원종 10년(1269) 임유무[2]의 외향이라 하여 정원도호부(靖原都護府)로 승격시켰다.
충렬왕 17년(1291) 합단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에 향공진사 원충갑과 원주 사람들이 물리친 공을 기리기 위하여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하였다.
충렬왕 34년(1308) 원주목(原州牧)으로 승격되어 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원주목은 행정과 군사, 경제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충선왕 2년(1310) 여러 목을 도태시키면서 성안부(成安府)로 강등시켰다.
공민왕 2년(1352) 원주의 치악산에 왕의 태를 안치하고 원주목(原州牧)으로 복구하였다. 별호는 평량경(平涼京)이며, 또 평량(平涼)이라 부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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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속군, 속현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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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속군(屬郡)과 5개의 속현(屬縣)을 두고 있었다.
영월군(寧越郡): 고구려의 내생군(奈生郡), 신라 경덕왕 때 내성군(奈城郡), 고려시대에 영월군으로 개칭. 지금의 영월군이다.
제주군(堤州郡): 고구려의 내토군(柰吐郡)으로, 신라 경덕왕때 내제군(柰堤郡)으로 고쳤다. 현종 9년(1018)에 원주에 내속(來屬)하였다(원주의 임내(任內)로 편제). 지금의 제천시이다

평창현(平昌縣): 고구려의 욱오현(郁烏縣), 신라 경덕왕 때 백오(白烏), 고려시대에 평창현으로 개칭. 지금의 평창군이다.
단산현(丹山縣): 고구려의 적산현(赤山縣), 신라시대에 내제군(奈堤郡)의 속현, 고려시대에 단산현으로 개칭. 지금의 단양군의 일부이다.
영춘현(永春縣): 고구려의 을아단현(乙阿旦縣), 신라 경덕왕 때 자춘(子春), 고려시대에 영춘현으로 개칭. 지금의 단양군 영춘면이다.
주천현(酒泉縣): 고구려의 주연현(酒淵縣), 신라 경덕왕 때 주천, 고려시대에 주천현으로 개칭. 지금의 영월군 주천면이다.
황려현(黃驪縣): 고구려의 골내근현(骨乃斤縣), 신라 경덕왕 때 황효(黃驍), 고려시대에 황려현으로 개칭. 지금의 경기도 여주시이다.
}}}}}}}}} ||
조선시대 태조 4년 (1395) 태조는 지방행정구역을 정비하면서 강릉도와 교주도를 합하고 강릉의 '강'자와 원주의 '원'자를 합하여 강원도라 명명하였다. 이와 함께 원주에 강원감영을 설치하여 원주가 강원도의 수부로서 행정·치안·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맡게 되었다.
태종 13년 (1413) 8도제를 시행하면서 강원도의 감영을 유지했다.
숙종 9년 (1683) 강상(綱常) 사건으로 원성현(原城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692년(숙종 18)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영조 2년 (1728) 역당의 태생지라 하여 원성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37년(영조 13)에 원주목으로 회복되었다.
고종 32년 (1895) 5월 26일, 전국을 23부 337군 제도로 개편하면서 원주의 강원감영을 폐하고, 강원도는 2개 부(강릉부-9개군, 춘천부-13개군)로 개편되었으며, 원주군 외 3개 군(영월, 평창, 정선)은 충주부에 이속되었다.
고종 33년 (1896) 칙령 제36호[3]제5조에 의거 전국 23부를 폐지하고 13도로 개편됨에 따라 강원도가 부활되면서 원주군 외 3개 군( 평창, 영월, 정선)은 강원도로 편입되고 관찰사는 춘천에 배치되었다. 이 당시 전국 군은 5단계 등급으로 339군 중 원주군은 4등급의 군이었으며 19개 면이 있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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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속군, 속현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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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속군(屬郡)과 2개의 속현(屬縣)을 두고 있었다.
관할[所領]은 지군사(知郡事)가 1이었다.
1군 : 영월군(寧越郡)
2현 : 횡성현(橫城縣), 홍천현(洪川縣)
}}}}}}}}} ||
일제강점기 1914년 3월 1일, 총독부령 제111호[5]로 강원도를 21개 군[6]으로 조정한 뒤, 원주군은 원주군 일원으로 하였다.
1916년 1월 1일 조선총독부 강원도고시 제52호[7]에 의거 원주군 10개면 67개리[8]로 구역이 설정되었다.
1937년 7월 1일 원주군 본부면이 원주읍으로 승격함으로써 원주군은 1읍 9개면[9]으로 확정되었다.
1938년 10월 1일, 부령 제197호[10]에 의거 원주읍 흥양정을 소초면에 넘겼다.
<colbgcolor=#005ba6> 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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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945년 정을 동으로 개정하였다[11].
1955년 원주시설치에관한법률[12]로 원주군 중 원주읍 일원, 판부면 단구리, 행구리, 호저면 우산리를 편입하여 행구동, 단구동, 우산동을 증설하여 18개 동으로 시 승격하고 나머지 구역을 원성군으로 개칭하였다.
1961년 9월 15일, 연합동제를 실시하였다. 중앙동, 평원동을 중평동으로, 원동·인동을 원인동으로, 학성1·2구는 학성동으로, 태장1·2구는 태장동으로 봉산1·2·3구는 봉산동으로 연합하였다.
1965년 시조례 제207호[13]로 14개동[14]의 명칭 및 구역을 설정하였다.
1970년 7월 1일, 인구 증가로 학성동, 태장동, 봉산동을 각각 2개 동으로 분동 및 3개 동을 증설하여 15개 연합동제를 실시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15]로 18개 동 명칭과 구역을 설정[16]하여 법정동 18개동(행정동 18개동)으로 확정하였다.
1983년 대통령령 제11027호[17]로 원성군 소초면 장양리 일부를 원주시에, 원주시 관설동 일부를 원성군 판부면에(신촌리 설치),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의 매호리, 산현리 및 압곡리 일부를 원성군 호저면에 편입하였다.
1989년 법률 제4050호[18]로 원성군을 원주군으로 명칭 변경하였다.
1990년 시조례 제1486호[19]로 18개 동[20] 중 5개 동[21]을 제외한 나머지 동의 구역을 변경하였다. 단구동 일부를 명륜동과 개운동으로, 우산동 일부를 학성동과 태장동으로, 명륜동 일부를 원동으로, 원동 일부를 명륜동으로 조정하였다.
1992년 시조례 제1634호[22]로 원동 일부가 명륜동으로, 단구동 일부가 개운동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93년 시조례 제1658호[23]로 무실동 일부가 단계동으로 편입되었다.
1993년 시조례 제1675호[24]로 개운동 일부가 단구동으로, 명륜동 일부가 원동, 단계동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1월1일, 법률 제4774호[25]로 원주시와 원주군을 통합하여 원주시를 설치했다.(9면 18동)[26]

2월 15일, 시조례 제39호[27]로 단계동 일부가 명륜동으로 편입되었다.

3월 1일, 법률 제4802호[28]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 일부가 원주시로 편입되었다.
시조례 제142호[29]로 행정운영 읍면동 조정으로 명륜동이 명륜1·2동으로 분리되었다.(9면 19동)[30]

3월 2일, 시조례 제141호[31]로 문막면이 문막읍으로 승격(1읍 8면 19동)되었다.

11월 17일, 시조례 제166호[32]로 1읍 8면 18개동 중 일부 동 구역이 조정되었다[33]
1999년 1월 1일, 시조례 제341호[34]로 행정운영 읍면동 명칭 및 구역이 조정되었다. 학성2동과 중앙평원동이 중앙동, 봉산1.2동이 봉산동, 관설동과 반곡동이 반곡관설동, 학성1동이 학성동, 단계동일부를 무실동으로 명칭 및 구역이 조정되었다(1읍 8면 16동)[35]
}}}}}}}}} ||

삼국, 고려시대 출처 : 고려사 권 56 지 권제 10 地理 一[36]
고려시대 속군 정보출처[37]
교차 검증 및 조선시대 정보 출처[38]
[1] 지주사는 주(州)의 행정과 사법을 총괄하는 최고 책임자로서, 현재의 도지사나 군수와 비슷한 역할을 하였다. [2] 임유무는 당시 고려의 중요한 관료였으며, 그의 외가(外家)가 원주에 위치해 있어 이 지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3] 건양원년 1896.8.4 공포, 당일 시행 [4] 본부면, 저전동면, 사제면, 판제면, 금물산면, 미내면, 부론면, 귀래면, 강천면, 지내면, 지향곡면, 정지안면, 고모곡면, 호매곡면, 소초면, 수주면, 양변면, 가리파면, 부흥사면 [5] (1913.12.19 공포) [6] 이천군, 간성군, 김화군, 철원군, 울진군, 춘천군, 횡성군, 홍천군, 원주군, 평창군, 영월군, 정선군, 삼척군, 강릉군, 양양군, 통천군, 회양군, 평강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 [7] 조선총독부 관보 제1032호. 1916.1.15 (1915.12.25 공포, 1916.1.1시행) [8] (본부면-5개리, 금물산면-5개리, 귀래면-5개리, 가리파면-7개리, 판부면-6개리, 소초면-7개리, 호저면-9개리, 지정면 -8개리, 건등면-9개리, 부론면-6개리) [9] 원주읍(15개정) - 본정1.2정목(중앙), 대화정(인동), 금정(일산), 개운정(개운,명륜), 남산정(원동), 영정(학성1.2동), 욱정(평원), 흥양정(소초면 흥양리), 봉산정 1,2,3구, 태장1.2구, 사천리(단계) [10] 1938.9.27. 공포 [11] (15개동 - 평원동, 인동, 중앙동, 일산동, 개운동, 명륜동, 원동, 학성1.2구, 단계동, 태장1.2구, 봉산1.2.3구) [12] (1955.8.13 공포, 동년 9.1 시행) [13] (1965.12.28 공포, 동일 시행) [14] 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봉산동, 행구동 [15] (1973.3.12 공포) 및 시조례 제514호 (1973.5.23 공포, 동년 7.1 시행) [16] (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봉산동, 행구동, 원성군 호저면 가현리를 원주시에 편입하여 가현동, 흥업면 무실리 일원을 편입하여 무실동, 판부면 관설리를 편입하여 관설동, 판부면 반곡리를 편입하여 반곡동) [17] (1983.1.10 공포, 동년 2.15 시행) [18] (1988.12.31 공포, 익년 1월 시행) [19] (1990.3.31 공포, 동년 4.1 시행) [20] 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가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관설동, 반곡동) [21] 단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반곡동 [22] (1992.9.29 공포) [23] (1993.4.6 공포) [24] (1993.7.21 공포) [25] (1994.8.3 공포) [26]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문막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중앙동, 평원동, 원동, 인동, 개운동, 명륜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동, 가현동, 봉산동, 무실동, 행구동, 관설동, 반곡동 [27] (1995.2.15 공포) [28] (1994.12.22 공포) [29] (1994.12.22 공포) [30]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문막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중앙동, 원인동, 개운동, 명륜1·2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1·2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1·2동, 봉산1·2동, 무실동, 행구동, 관설동, 반곡동 [31] (1995.2.28 공포) [32] (1995.11.17 공포, 동일 시행) [33] 종전 일산동중 일부가 원동, 개운동 일부가 명륜동, 일산동 일부가 학성동, 학성동 일부가 단계동으로 편입 [34] (1998.12.24 공포) [35] 문막읍, 소초면, 호저면, 지정면, 부론면, 귀래면, 흥업면, 판부면, 신림면, 중앙동, 원인동, 개운동, 명륜1.2동, 단구동, 일산동, 학성동, 단계동, 우산동, 태장1.2동, 봉산동, 행구동, 무실동, 반곡관설동 [36] 황현, “高宗三十二年乙未”, ≪매천야록≫(한국사료총서 제1권, 1971).(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sa_001_0030_0020, 2007. 09. 03), “日陸戰隊撤退는 南北戰으로 中止? 今回 半數만 交代”, ≪동아일보≫ 1928년 3월 19일.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www.history.go.kr, np_da_1928_03_19_0030, accessed 2007. 09. 03) [37]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디지털제천문화대전) [38] 조선왕조실록 中 세종실록 153권, 지리지 강원도 원주목


2. 삼국시대

가 차례로 차지하여 다스린 땅이었다.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백제로, 삼한 중 하나였던 마한을 합병하며 마한의 땅이었던 원주를 그대로 차지했다. 이후 469년에 남진정책을 펼친 고구려 장수왕이 백제에 이어 두 번째로 원주를 차지하여 평원(平)군이라고 개칭하였다. 이후 세 번째로 신라 진흥왕이 점령한다.

3. 남북국시대

678년( 신라 문무왕 18) 지금으로 치면 광역시와 같은 행정구역인 5소경 중 하나인 북원소경(北小京)이 설치되었으며, 약 70여 년 후인 757년 경덕왕 16년 북원경(北京)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부터 사통팔달의 요충지로 군사상 중요한 곳이었으며, 앞서 등장한 지명에서 보듯이 이름에 넓고 탁 트인 들/벌[原]이라는 뜻이 있었다. 이 뜻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늘날 원주(原州)가 되었다. 또한 평원, 북원 등의 지명도 평원로, 북원로, 북원여자고등학교, 평원초등학교 등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4. 후삼국시대

9세기 말 호족이었던 양길(梁吉)이 북원을 기반으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궁예에게 패배하여 태봉의 강역에 들어갔고 이후 고려 태조(고려) 왕건의 정변으로 고려의 땅이 된다.

5. 고려

940년( 태조(고려) 24년) 처음으로 원주라는 지명이 등장하였으며, 1018년(현종 8) 영월군, 제천군을 속군으로 평창현, 황려현(여주), 단산현(단양), 주천현, 영춘현이 속현이 되어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신종의 등극 전 봉지였다. 1291년( 충렬왕 17년) 원충갑이 카다안의 침입을 막아내어 익흥도호부(益興都護府)로 개칭되었다.

6. 조선

1395년 조선시대 지방 행정구역을 재편하면서 강릉과 원주의 이름을 따 강원도가 생기고 감영이 설치되어 500년 간 도의 중심지가 된다. 그 전에는 양광도에 속했으나, 양광도가 남북으로 경기도, 충청도로 나눠지는 와중에 원주 일대만 딱 양광도 계열 도가 아닌 교주강릉도 계열의 도로 넘어가게 된다.
파일:원주_1895년(2).png
황색 : 원주군(原州郡)
1. 지향곡면(地向谷面)
2. 정지안면(正之安面)
3. 호매곡면(好梅谷面)
4. 저전동면(楮田洞面)
5. 소초면(所草面)
6. 본부면(本部面)
7. 사제면(沙堤面)
8. 미내면(彌乃面)
9. 부론면(富論面)
10. 귀래면(貴來面)
11. 금물산면(今勿山面)
12. 판제면(板梯面)
13. 부흥사면(富興寺面)
14. 가리파면(加里坡面)
1895년 친일내각이 주도한 2차 갑오개혁으로 인해 8도를 23부제로 개편하면서 충주부 관할의 원주군으로 격하되고 고모곡면이 횡성군에 편입되어 행정 중심지의 기능을 잃었으나[2], 이듬해인 1896년 다시 8도를 바탕으로 한 13도제가 시행되었다.[3] 한편 1906년 수주면과 양변면이 영월군에, 지내면과 서면이 여주군에 편입되었다.

7. 일제강점기

파일:원주_1914년.png
황색 : 원주군(原州郡)
1. 지정면(地正面)
2. 호저면(好楮面)
3. 소초면(所草面)
4. 본부면(本部面)
5. 건등면(建登面)
6. 부론면(富論面)
7. 귀래면(貴來面)
8. 흥업면(興業面)
9. 판부면(板富面)
10. 신림면(神林面)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인해 산하의 몇몇 면이 통폐합되었다. 1937년 원주군 본부면일원과 호저면 사천리를 원주읍[4], 건등면은 문막면으로 각각 변경하였다. 1938년 조선총독부의 방침에 의거 원주읍 흥양정을 소초면에 넘겼다.

8. 대한민국

파일:원주_1989년.png
백색 : 원주시(原州市) 황색 : 원성군(原城郡)
1. 원주시(原州市) 1. 지정면(地正面)
2. 호저면(好楮面)
3. 소초면(所草面)
4. 문막읍(文幕邑)
5. 부론면(富論面)
6. 귀래면(貴來面)
7. 흥업면(興業面)
8. 판부면(板富面)
9. 신림면(神林面)
1955년 원주읍이 원주시로 승격되고, 나머지 면 지역은 원성군(原城郡)으로 개칭되었다. 이 때 호저면 우산리와, 판부면 단구리, 행구리가 원주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호저면 가현리, 흥업면 무실리, 판부면 반곡리, 관설리가 원주시에 편입되고 지정면 무장리가 호저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횡성군 서원면 산현리, 매호리와 압곡리 일부(용곡리)가 호저면에 편입되고 관설동 일부가 판부면 신촌리가 되었다.

1989년 원성군을 원주군으로 명칭 환원, 1995년 원주군과 원주시를 합침으로써 도농 복합형 통합시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1일 여주군 강천면 대둔리가 문막면에 흡수되고 이튿날인 3월 2일 문막면이 문막읍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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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원주시 홈페이지 [2] 반면에 23부제 시행 때 강릉은 영동을 비롯한 강릉부로 분리되었고, 춘천은 그밖의 영서와 경기 일대를 비롯한 춘천부로 분리되었다. [3] 그러나 도청은 원주로 회복되지 못하고 춘천에 계속 있었다. 6.25 전쟁 때 임시 강원도청 소재지가 되었으나 전후 다시 춘천으로 옮겨졌다. [4] 당시 승격됐던 시 중에서 읍 승격이 가장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