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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円応教[1]정자체: 圓應敎
일본 효고현 단바시(丹波市)에 본부를 둔, 후카다 치요코(深田千代子, 1887~1925)가 창시하여 1948년에 설립된 신종교.
일본 문화청이 발간한 레이와(令和) 4년( 2022)판 『종교연감』에 따르면, 신자 수는 439,767명으로 가톨릭, 금광교보다 많다고 한다. 교세는 주로 효고현과 오사카부를 중심으로 한 서일본에 퍼져 있다.
- 본 항목에서 날짜는 전부 양력이다.[2]
- 치요코의 나이는 세는 나이로 한다.
- 지명에 사(寺)ㆍ촌(村) 등 한자가 붙으면 그 부분만 한국식 한자음으로 붙여 썼다(예: 霊雲寺 → 레이운사). 고유명사라 하더라도 한자 표기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어 의미가 잘 전달된다면 음역하지 않았다.
2. 역사
2.1. 창교로부터 교단 설립까지
교조 후카다 치요코(深田千代子)는 1887년 10월 3일, 효고현 히카미군(氷上郡) 오가와무라지이하라(小川村字井原)[3]의 찻집 주인 후카다 난키치(深田難吉)의 장녀로 태어났다. 1907년(21세) 사사쿠라 미하루(笹倉三治)와 결혼해 이듬해 장남 나가하루(長治)를 얻었지만, 같은 해 미하루가 여행지에서 금품을 빼앗기고 독살당하는 불행을 겪자 1909년 나가하루를 후카다 가문에 남겨두고 마을에 순회하러 온 대중연극[4]의 배우[5] 가와이 시즈오(河合靜雄)와 오사카시에서 재혼했다.1919년(33세) 7월 16일, 치요코는 하늘의 계시를 받아 기적 영험을 나타내, '신의 심부름으로 태어나, 세상의 도구가 된다'는 교의 아래 종교 활동을 개시했다.[6]. 수법(修法)이라는 영도의 길(霊導の道)을 남기고 1925년(39세) 1월 6일에 사망[7]하였는데, 치요코는 '하느님이 말씀하신 7년이 끝났을 때, 자신은 죽는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가르침은 제자에 의해 계승되어 1925년 2월 9일, 치요코의 법명 '慈照院圓應智覺大姉(자조원원응지각대자)'로부터 圓應의 두 글자를 따 원응법수회(圓應法修會)가 결성, 사사키 슌조(佐々木俊蔵)가 회장에 취임했다. 1931년 2월 6일에 '원응수법회'로 개칭, 후카다 가문의 보리사(菩提寺)[8]였던 고가와촌(小川村)의 임제종 묘심사파(妙心寺派) 레이운사(霊雲寺)의 주지 하야시 마사미치(林誠道)가 회장에 취임하였다. 이와 별도로 1933년 '원응보은회'가 설립되어 반나카 지츠조(伴仲実襄)가 회장에 취임하였다. '원응수법회'는 레이운사에 속하였으나, '원응보은회'는 전쟁 전 일본 종교단체법 하에서는 이른바 유사종교 내지 종교결사로 간주되어 독립된 종교단체의 설립에 이르지 못하였다.
그러다 패전 후인 1948년 6월 10일, 두 단체가 합동해 종교법인령에 의한 종교법인 원응교를 설립, 고가와촌에 본부를 두고 아마가사키시(尼崎市)에서 청년학교[9] 교감(敎頭)을 맡고 있던 치요코의 장남 나가하루를 관장(管長)으로 맞이했다. 1951년 4월 종교법인법 시행을 거쳐 1952년 7월 7일 종교법인으로 인증되어, 관장을 교주로 개칭하고 나가하루가 초대 교주가 되었다.
2.2. 역대 교주
- 초대 후카다 나가하루(深田長治)
치요코의 유문을 바탕으로 한 교전(敎典) 및 교의 서적 발간, 본전 건설(1970년 10월 6일 낙성) 등 본부 정비 등을 실시하였다. 사후 법명은 圓通院天山宗覺居士.
- 2대 후카다 미쓰히로(深田充啓)
- 3대 예정자: 후카다 케이코(深田惠子)
3. 기념일
- 아래 날짜는 기본 일정이다. 다만 행사에 따라 가까운 일요일, 공휴일 등으로 변경될 수도 있다.
- 날짜는 전부 양력이다.
1월 1일 : 원단제(元旦祭)
1월 6일 : 교조제(教祖祭, 혹은 墓前祭, 祥月祭)
2월 27일 : 교주 탄생제(教主誕生祭)
4월 6일 : 춘계대제
7월 15일 : 조령제(祖霊祭)
7월 16일 : 입교기념제(立教記念祭)
8월 6일 : 평화기원제
10월 6일 : 추계대제
12월 6일 : 감사제(感謝祭)
4. 교리
천지동근, 물심일여, 만교일원, 생활이 곧 종교를 부르짖으며 '세상의 도구가 된다'는 본뜻에 의거하여 개인의 영력 자각과 발현에 힘쓰며, 교주의 영도를 믿고 개인 영력의 무한함·숭고·위대성을 자각, 반성, 참회하는 '수행법(修法)'을 실시하여 개인과 사회와의 행복한 생활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교리의 다섯 항목으로는 마토(まと)·성(誠)·애(愛)·선(善)·음(陰)이 있다.「마토」(마토사마(まとう様))는 신앙 대상을 말하며, 그 중심은 大부모(大御親: 생명의 근원이자 생성화육 발전하는 우주생명)라고 한다. 무엇을 빌어도 그것은 '마토'이기 때문에 '대부모'에게 기도하는 것이 된다는 전형적인 혼합주의(syncretism) 관념에 따른 것이다. 또 교주 자조원원응지각대자(慈照院圓應智覺大姉 = 후카다 치요코)를 모신다.
원응교에서 말하는 수행법(修法)이란 교주에 의해 고안된 중생 구제 방법의 하나이다. 이 수행법 중에서는 손끝을 비롯하여 신체 전체에 영의 감응이 나타나는 신체적 표현과 함께, 포교사의 말을 '교문(敎文)'이라 하며 유의적 참회(有意的懺悔), 편언편구(片言片句), 반의식, 무의식 등이 있으며, 또한 현재의식·잠재의식을 중심으로 역사적 잠재의식이나 영적 감응, 아뢰야식의 발현에 의해 과거·현재·미래까지가 시현된다고 한다.
교주 후카다 치요코(深田千代子)의 신봉을 기원으로 하는 종교로, 제단이나 제식은 신토(神道)의 색채를 띠지만 후계자 중 한 명인 하야시 마사미치(林誠道)가 임제종의 승려였기 때문에 건축의장은 불교의 것을 따르고 있다. 교리도 치요코 사후에 하야시와 아들인 마사하루에 의해 정리된 것이므로 불교, 특히 선종의 어휘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신토-불교 혼합 종교이지만 모시고 있는 것은 신경(神鏡)[10] 뿐 불상· 불탑 등은 없다. 신자 가정에서는 교조 이외에는 신앙 대상을 자유롭게 하고, 경신존조의 교의에 따라 씨신(氏神)[11]과 각 가문의 선조들을 모실 것을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1]
えんのうきょう
[2]
일본은 치요코의 탄생 이전인
1873년에 이미 양력을 도입했다.
[3]
오늘날 단바시
[4]
가부키에서 파생된 일본의 연극장르. 해외에 홍보용으로 널리 알려진 가부키와는 달리 철저하게 국내소비용이다.
[5]
旅役者(타비야쿠샤)
[6]
교단에서는 이 날을 '입교(立敎)의 날'로 칭한다
[7]
교단에서는 '승천하셨다(ご昇天)'고 함
[8]
일본에서, 조상 대대의 위패를 안치하여 명복을 비는 절
[9]
1935년~1948년 사이 존재했던,
심상소학교 6년을 졸업한 뒤
구제중학교 등에 진학하지 않고 근로에 종사하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회교육 기관
[10]
신토(神道)에서 모시는,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구리거울
[11]
うじがみ. 씨족신이나 조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