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우거 배틀 사가의 등장인물에 대한 내용은 워런 문(오우거 배틀 사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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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 타이탄스 영구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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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cac00> No.1 | No.9 | No.27 | No.34 |
<rowcolor=#fff> 워런 문 | 스티브 맥네어 | 에디 조지 | 얼 캠벨 | |
<rowcolor=#ccac00> No.43 | No.63 | No.65 | No.74 | |
<rowcolor=#fff> 짐 노튼 | 마이크 먼책 | 엘빈 베시아 | 브루스 매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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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2244><colcolor=#ffffff> 테네시 타이탄스 No.1 | |
워런 문 Warren Mo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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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헤로드 워런 문 Harold Warren Moon |
출생 | 1956년 11월 18일 ([age(1956-11-18)]세) |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 학교 | 워싱턴 대학교 |
신체 | 193cm | 100kg |
포지션 | 쿼터백 |
프로 입단 | 1978년 에드먼턴 에스키모스[1] 자유계약 |
소속 구단 |
에드먼턴 에스키모스 (1978~1983) 휴스턴 오일러스(1984~1993) 미네소타 바이킹스(1994~1996) 시애틀 시호크스(1997~1998) 캔자스시티 치프스(1999~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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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미식축구 - 캐나디안 풋볼 선수. 포지션은 쿼터백. 백인의 것이라는 선입견이 박혀 있었던 NFL의 쿼터백 포지션에서 최초로 흑인으로서 대성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2. 일생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NFL뿐만 아니라 대학 풋볼만 하더라도 쿼터백은 자고로 머리 좋고 체격 좋고 어깨 강하고 리더십 있는 백인이 해야 제맛이라는 백인 우월의식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 정서가 지배하고 있던 미식축구 바닥에서 흑인이 팀을 이끄는 쿼터백을 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흑인은 머리가 나빠서 수많은 전술을 외우고 실행에 옮겨야 되는 쿼터백으로는 부적격이고 몸으로 때우는 라인맨, 와이드 리시버, 러닝백 등으로만 뛰어야 한다는 편견이 상당히 오랫동안 박혀있었다.러닝게임이 주류였던 초기 미식축구에서는, 이러한 백인 우월의식이 극성을 이루어 몸으로 때운다는 라인맨 중에서도 라인 콜을 전담하고 쿼터백과 콤비를 맞추는 센터조차도 흑인 선수는 머리 나빠서 못하기 때문에 백인이 해야 한다는 편견도 존재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워런 문은 고교 졸업후 쿼터백을 계속 하기 위해 백인들과 같이 다니는 일반 대학으로의 진학을 포기하고 흑인 학교인 웨스트 LA 칼리지[2]로 진학해서 쿼터백으로 뛰었다.
그 곳에서 맹활약하여 3학년 때 '비교적' 인종에 대한 편견이 적고 진보적인 분위기가 자리잡은 시애틀에 위치한 워싱턴 대학교의 스카웃을 받아서 편입하고 워싱턴 대학 미식축구부에 들어가서 4학년 때 대학 미식축구의 메이저 볼 게임 중의 하나인 로즈 보울 게임에서 미시간 대학교를 꺾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 때의 활약 덕분에 아직도 워싱턴 대학 미식축구부의 올드팬 사이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3학년 때 편입해서 대학미식축구의 메이저 무대에서는 고작 2년만 뛰었을 뿐이라서 스카우터들의 눈에 띌 시간이 부족했고, 흑인 쿼터백이라는 편견까지 겹쳤기에 결국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비교적 인종에 대한 편견이 적은 캐나다 풋볼 리그로 눈을 돌려서, 에드먼턴 에스키모스에 입단했다. 캐나다 풋볼리그에서 6시즌 동안 21228 야드, 144 터치다운 패스를 던지며 맹활약한다. 결국 캐나다 풋볼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1984년 NFL 휴스턴 오일러스에 입단했다.
이후로 16년동안 4개 팀을 거치며 통산 패싱야드 49325야드로 5위, 터치다운 패스 271개로 6위, 프로보울[3] 9회 선정, 베스트팀 3회 선정[4], 1990년 NEA선정 MVP에 뽑히는 등 NFL을 대표하는 쿼터백으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소속팀이 비교적 약체였던 탓에 슈퍼볼 무대를 밟아보지는 못했지만 휴스턴에 재적해있던 10년동안 팀을 6번이나 플레이오프로 이끌었다.[5]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06년에는 명예의 전당으로도 헌액된다. 이는 흑인 쿼터백으로는 사상 최초. 그리고 당연히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대접을 받는 테네시 타이탄스로부터 영구결번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렇듯 워런 문은 미국 사회의 편견을 깨고 NFL에서 흑인도 쿼터백으로서 대성할 수 있다는 사례를 최초로 보여줬다. 그리고 그가 개척한 길은 이후로도 NFL에서 흑인 쿼터백으로서 이름을 날렸거나 스티브 맥네어, 도노반 맥냅, 마이클 빅 등은 물론이요 차세대 스타 쿼터백으로 떠오르는 러셀 윌슨, 캠 뉴튼 등 후배 선수들에게 선구자적 지표를 제공했다.
[1]
캐나디안 풋볼 리그의 팀이다.
[2]
미국에서는
대학교 과정에서
흑인들만 다니는 흑인학교가 존재한다.
[3]
NFL의 올스타전.
[4]
MLB로 치면 골드글러브나 실버슬러거에 해당한다.
[5]
그 외에 미네소타 바이킹스 시절에도 플레이오프에 한번 진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