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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80d53><colcolor=#ffffff> 스웨덴 팔츠츠바이브뤼켄 왕조 제4대 국왕
울리카 엘레오노라 Ulrika Eleono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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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울리카 엘레오노라 (Ulrika Eleonora) |
출생 | 1688년 1월 23일 |
스웨덴 스톡홀름 트레 크로노르[1] | |
사망 | 1741년 11월 24일 (향년 53세) |
스웨덴 스톡홀름 | |
재위 | 스웨덴의 여왕 |
1718년 12월 5일 ~ 1720년 2월 29일 | |
배우자 | 프레드리크 1세 (1715년 결혼) |
아버지 | 칼 11세 |
어머니 | 덴마크의 울리케 엘레오노레 |
형제 | 헤드비그 소피아, 칼 12세 |
종교 | 루터교회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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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울리카 엘레오노라는 스웨덴의 국왕으로,[2] 칼 11세의 둘째 딸이자 칼 12세의 여동생이다.2. 생애
1715년 헤센-카셀의 프리드리히와 결혼하였으며 자녀는 없었다. 평범한 왕족 여성으로 살 수 있었으나 1718년 11월 30일 오빠 칼 12세가 대북방전쟁에서 노르웨이 침공 중 전사하자 조카인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3](1700 ~ 1739)와 사촌 팔츠츠바이브뤼켄 후작(Fürst) 구스타프 자무엘 레오폴트와 왕위를 놓고 분쟁을 벌인 끝에 아르비드 호른이 이끄는 스웨덴 의회의 지지를 받아 1718년 즉위했다. 본래 언니의 아들이기에 카를 프리드리히의 계승권이 더 앞섰으나 카를 프리드리히가 외증조할머니이자 울리케 엘레오노레의 할머니에게 응석받이로 키워져서 워낙 성격이 오만방자한 탓에 스웨덴 정치권이 하도 질린 나머지 울리카 엘레오노라의 손을 들어준 것. 카를 프리드리히는 본인에게 더 가까웠던 스웨덴의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것은 물론 무능함으로 인해 그나마 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홀슈타인고토르프 영지마저 거의 다 잃어서 그 아들인 표트르 3세는 친척집을 오가며 떠도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2년 뒤 남편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며 남편은 1720년에 프레드리크 1세로 즉위했다. 이후 여왕이 아닌 남편 프레드리크 1세의 왕비로 살다가 1741년 11월 24일에 천연두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