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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11 16:47:40

우아르글라

1. 개요2. 역사
2.1. 근현대
3. 갤러리

1. 개요

아랍어: ورقلة
영어: Ouargla

파일:와르글라 알제리.jpg

동북쪽으로 5km 떨어진 움 에라넵 호수의 풍경.

파일:알제리 와르글라 1.jpg

와르글라 시내 서북부에 위치한 구도심 (엘 크사르) 풍경

파일:와르글라 알제리 2.jpg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트램이 다니는 와르글라.

알제리 중동부 와르글라 주의 주도. 사하라 사막 한복판의 오아시스 도시로, 인구는 15만명이다.[1] 가르다이아에서 동쪽으로 200km, 투구르트에서 남쪽으로 170km 떨어져 있다. 석유 산업이 발달하였으며 시가지 남부에는 우아르글라 대학교가 있다. 동쪽의 아인 베이다와 연담 도시화가 되어 있는데 그 동부에 우아르글라 아인 베이다 공항이 있다. 중세에 도시는 사하라 횡단 교역으로 번영하였고, 19세기 이후 사막 장미를 판매하며 관광 수입을 올렸다가 20세기 석유의 발견으로 발전하였고 시내에 트램이 있다.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탓에 날씨는 매우 더워 8월에는 53도까지 오른다.

2. 역사

파일:알제리 이바디 모스크.jpg

천년이 넘은 이바디 모스크.

이븐 칼둔에 의하면 도시는 바누 와르글라를 중심으로 틀렘센에서 남하한 베르베르계 부족들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가르다이아의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바디파 무슬림이었다. 909년에는 파티마 왕조에 의해 루스탐 왕조가 멸망, 수도 타헤르트가 파괴되자 그 주민들이 와르글라 오아시스로 피신하였다. 역시 이바디파를 믿었던 그들은 와르글라 남쪽 10km 지점에 세드라타를 세워 거주했으나 13세기 베두인들의 공격으로 파괴되었다. 그후 와르글라는 사하라 무역에 있어 독점적인 지위를 얻었고, 알제리에서 가장 큰 대추야자수 생산지였을 만큼 농업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1세기 그 부를 탐낸 함마드 왕조에게 귀속되었으나 여전히 높은 자치를 누리던 와르글라는 하프스 왕조 시기에 대사원이 건설되었다. 14세기 이븐 칼둔은 사막의 관문 와르글라가 농업 진흥과 수단으로 향하는 교통의 요지로써 수 세기간 번영했으며, 종종 현지 왕조들의 수도로 독립을 유지했다고 기록하였다. 다만 이바디 공동체가 서쪽 가르다이아 방면 음자브 협곡으로 후퇴하고 북쪽의 투구르트가 발전하며 와르글라의 중요성은 하락하였다. 16세기 와르글라는 알제리 총독 살라흐 레이스에게 복속되어 700여 km 떨어진 알제에 조공을 바쳤다.

2.1. 근현대

파일:세드라타 알제리.jpg 파일:알제리 와르글라 2.jpg
1868년 재발견 후 발굴 중인 세드라타 유적 1920년 와르글라 항공 사진.

19세기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 시에 와르글라는 1852년 라구아트 함락 이후 알제리 저항군의 거점이 되었다. 하지만 1854년 와르글라 역시 프랑스 군에게 점령되었고, 1872년부터 비스크라의 아가 벤 드리스에 의한 간접 지배가 확립되었다. 1936년에는 신시가지에 사하라 박물관이 세워졌다. 1962년에는 프랑스 당국의 알제리 분할에 대한 항의 시위가 있었다.

3. 갤러리

파일:알제리 와르글라.png
와르글라 트램 노선도.

파일:와르글라 알제리 1.jpg
엘 크사르 구도심의 항공 사진.

파일:와르글라 크사르 알제리.jpg
엘 크사르 풍경.


[1] 오아시스 주변의 잡다한 마을들까지 합치면 20만이 넘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