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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르투 왕국 Վանի թագավորություն |
||
기원전 860년 ~ 기원전 590년 | ||
위치 | 서아시아 | |
수도 |
수구니아 아르자슈쿤 투슈파(기원전 832년 이후) |
|
정치체제 | 전제군주제 | |
국가원수 | 왕 | |
언어 | 우라르투어[1] | |
민족 | 우라르투인 | |
종교 | 우라르투 다신교 | |
주요 사건 |
기원전 860년 건국 기원전 590년 멸망 |
|
성립 이전 | 나이리 | |
멸망 이후 | 메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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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라르투어: Biai, Biainili아르메니아어: Ուրարտու (Urartu)
우라르투 왕국은 기원전 860년 서아시아 지역에 우라르투인들이 세웠던 나라이다. 우라르투는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했고, 그들 스스로는 비아이라고 칭했다. 초창기의 강역은 반 호수 주변에 국한되었지만, 연이은 현군의 통치로 아르메니아 고원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노릴 정도로 성장하여, 아시리아의 강력한 라이벌이 된다. 하지만 이란고원으로 남하하던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아리아인들과 충돌하게 된다. 그 민족들은 다름아닌 메디아인과 페르시아인이었고, 그들의 침략으로 국력이 쇠하게 되었다. 결국, 강력한 국가로 성장한 메디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리디아 왕국과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지원으로 페르시아 제국와 싸웠으나 키루스 2세의 전략에 대패한 곳도 이곳이다.
이 왕국은 현대 아르메니아 지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다른 오리엔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잊힌 고대 국가였다. 1940년대 이후, 중동 지역에 대한 고고학 발굴의 규모가 커지며 그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발굴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2. 역사
반에 남아있는 우라르투 왕성 유적.
본래 아르메니아 고원의 작은 왕국들과 부족 국가의 연합체인 나이리의 주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세력을 키워 아시리아의 라이벌로 반등한다. 특히 기원전 8세기 전반부에 아시리아가 수십 년 동안 일시적인 침체기에 빠진 시기를 틈타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시리아에서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가 즉위하면서 우라르투는 압박을 받게 되고 후에 즉위한 사르곤 2세의 공략으로 인해 아시리아는 우라르투로부터 대승을 거두게 되고 우라르투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무사시르까지 정복하여 우라르투는 이후 아시리아에 위협이 되지도 못할 정도로 몰락하게 되었다.
기원전 7세기 후반에는 메디아와 스키타이 연합군의 침략을 받았고 아시리아가 멸망한 이후 기원전 590년경 우라르투도 메디아에게 정복되어 멸망한다.
3. 언어와 민족
우라르투어는 현재의 반 호수에서 사용되었다고 하여 반어라고도 한다. 우라르투의 지배 계층이 우라르투인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피지배 계층도 우라르투인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만약 피지배 계층이 우라르투인이 아니었다면 그 피지배 계층은 아르메니아인일 가능성이 높다. 우라르투인은 우라르투어를 사용했으며, 우라르투어는 메소포타미아의 미탄니에서 사용되었던 후르리어와 함께 후르리-우라르투어[2]족을 이룬다. 후르리어는 적어도 기원전 2천년기 이전부터 문증되며, 우라르투어는 우라르투 왕국이 존속하던 때인 기원전 9세기부터 기원전 6세기까지 문증된다.
[1]
후르리-우라르투어족에 속하며, 현재는
사어다.
인도유럽어족인
아르메니아어와 기원이 다르다.
[2]
이 어족이
카르트벨리어족이나
엘람어,
북캅카스어족과 동계라는 가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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