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츠 선제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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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3D3D3><colcolor=#000> 팔츠의 선제후 요한 빌헬름 Johann Wilhelm, Kurfürst von der Pfal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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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658년 4월 19일 |
베르크 공국 뒤셀도르프 | |
사망 | 1716년 6월 8일 (향년 58세) |
베르크 공국 뒤셀도르프 | |
재위 | 팔츠 선제후국의 선제후 |
1690년 9월 2일 ~ 1716년 6월 8일 | |
배우자 |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나 요제파 여대공 (1678년 결혼 / 1689년 사망) |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 (1691년 결혼) | |
아버지 | 팔츠 선제후 필리프 빌헬름 |
어머니 | 헤센다름슈타트의 엘리자베트 아말리 방백녀 |
형제 | 엘레오노레 막달레네, 볼프강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루트비히 안톤, 카를 3세 필리프, 알렉산더 지기스문트, 프란츠 루트비히[1], 프리드리히 빌헬름, 마리 조피[2], 마리아 안나[3], 필리프 빌헬름 아우구스트, 도로테아 조피, 헤트비히 엘리자베트, 레오폴디네 엘레오노레 |
종교 | 가톨릭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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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중에 팔츠 선제후 필리프 빌헬름이 되는 노이부르크 궁정백 필리프 빌헬름과 헤센다름슈타트의 엘리자베트 아멜리(Elisabeth Amalie von Hessen-Darmstadt 1635~1709)의 맏아들로 태어났다.부친이 무리하게 결혼시킨 여동생들의 결혼 자금을 대느라 돈에 쪼들리며 살았으나 문제는 본인도 예술품을 박박 긁어 모아 인생을 빈털털이로 살았다.
원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딸 마리아 아나 요제파(Maria Anna Josepha von Österreich 1654~1689)와 결혼했으나 자녀를 두지 못했고, 토스카나 대공국 메디치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Anna Maria Luisa de’ Medici 1667~1743)와 재혼했으나 역시 자녀를 두지 못했다. 마리아 루이사 역시 요한 빌헬름과 마찬가지로 예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다.
팔츠 선제후국의 수도를 9년 전쟁의 참화로 잿더미가 된 하이델베르크에서 베르크 공국의 중심지 뒤셀도르프로 천도했으며 은근 슬쩍 칼뱅파를 억압하고 가톨릭을 부활시키는 정책을 시행했다.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동생 카를 필리프가 팔츠 선제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