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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20:58:19

덴마크의 요아킴 왕자

<colbgcolor=#FFD0CF><colcolor=#000> 덴마크의 요아킴 왕자
Prins Joachim af Danmark
파일:Prince Joachim.jpg
이름 요아킴 홀게르 발데마르 크리스티안
(Joachim Holger Waldemar Christian)
출생 1969년 6월 7일 (54세)
덴마크 코펜하겐 릭스 왕립 대학병원
신체 188cm
배우자 알렉산드라 맨리 (1995년 결혼 / 2005년 이혼)
마리 카발리어 (2008년 결혼)
자녀 니콜라이, 펠릭스, 헨리크, 아테나
아버지 앙리 드 라보르드 드 몽페자
어머니 마르그레테 2세
형제 프레데리크 10세
종교 루터교회 ( 덴마크 교회)
계승 서열 5위
1. 개요2. 생애
2.1. 군사 경력
3. 가족 관계4. 여담

[clearfix]

1. 개요

덴마크 왕자. 마르그레테 2세 헨리크 공의 둘째이자 차남이다.

조카 덴마크의 요세피네 공주에 이어 덴마크 왕위 계승 서열 5위다.

2. 생애

파일:1000030260.jpg
1969년 가족사진
1969년 6월 7일, 마르그레테 2세 헨리크 공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같은 해 7월 15일, 루터교회 유아세례를 받았다.
파일:1000030680.jpg
크렙스 스콜 재학 시절
1974년-1982년[1]까지 형과 크렙스 스콜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1982년-1983년 프랑스 노르망디에 위치한 로슈의 학교에 재학했다. 1986년 오레가드 김나시움에서 중학교를 다녔고 1986년-1987년 호주의 와가 와가에 위치한 한 농장에서 농사꾼으로 일하기도 했다. 1991년-1993년 팔스터 섬에 위치한 Classenske Agerbrugskole Næsgaard에서 농업 경제학을 공부했다.

2023년 마르그레테 2세가 차남 요아킴의 자녀들에게서 왕자와 공주라는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발표를 한 후, 어머니 마르그레테 2세는 물론이고 형 프레데리크와도 대화를 하지 않을 정도로 냉랭한 사이가 되었다. 마르그레테 2세는 이런 결정을 한 이유를 "4명의 손자, 손녀가 덴마크 왕실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훨씬 더 큰 범위에서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국민 여론이 높아지는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왕실을 보전하기 위한 고육지책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즉, 전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국민들이 힘들게 살면서 내는 세금으로 왕족들은 호화롭게 사는 건 불공평하니 차라리 군주제를 폐지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자, 왕족 숫자라도 줄여 왕실 유지에 드는 세금을 줄임으로써 국민들의 불만을 달래려는 것이다. 실제로 요아킴 왕자 자녀들에게서 왕족 지위를 박탈하는 결정을 내린 후 왕실 지지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에 대해 요아킴은 여왕의 결정을 발표 5일 전에야 알았고 그것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며 서운함과 분노를 드러내더니, 결국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전처 소생의 두 아들은 이미 성년이 되어 대학에 진학하거나 모델 활동을 해야 해서 덴마크에 남기로 했다.

미국 워싱턴 D.C로 이주한 후 덴마크 대사관에서 방위 산업 무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후에도 주요 왕실 행사에는 간간히 참석하고 있다.

2024년 1월 14일, 어머니의 양위식 겸 형의 즉위식에 본인은 참석했지만 부인과 자녀들은 불참했다. # 마르그레테 2세의 퇴위가 갑작스럽게 결정되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모두 모일 여유가 없었다고 한다.

2.1. 군사 경력

1987년에 Queen's Life Regiment의 신병으로 입대하여 NCO 학교에 입학했고 이후 중위 학교에 입학했다. 1989년부터 1990년까지 Prince's Life Regiment의 제3 전차 비행대/1 대대(3/I/PLR)에서 소대장을 역임했다.

1992년 예비군 장교가에서 대위가 되기 위해 덴마크 왕립 육군 사관학교 과정에 입학했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Prince's Life Regiment에서 제3 전차 비행대/2 대대(3/II/PLR)의 편대 사령관을 역임했다.

2005년 단스케 사단 참모장교로 근무했으며, 2011년부터 푸엔 및 남부 유틀란트 방위군 연락장교로 근무했다.

2015년 덴마크 왕립군 국방장관의 특별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2019년 여름, 전처 소생의 두 아들들을 제외한 가족이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고, 왕자는 프랑스 국방부 장관의 초청으로 École Militaire의 최고 군사 교육 프로그램에 입학했다. 2020년 6월 26일 졸업하여 두 파트로 나뉜 특수 교육을 이수한 최초의 덴마크 장교가 되었다.

3. 가족 관계

젊은 시절 홍콩에서 근무하다가 알렉산드라 맨리[2][3] 요아킴 왕자와 이혼한 후에도 프린세스 작위와 저하(Hans Højhed) 칭호와 재혼하기 전까지 왕실 면세 특권까지 유지했으며 프레데릭스보르 여백작 작위까지 본인 명의로 서임 받았다.[4] 2007년 2월 15살 연하의 사진작가 마틴 예르겐센과 재혼한 후에는 면세 특권과 저하 경칭부터 프린세스 직위도 반납했지만, 프레데릭스보르 백작위와 그에 딸린 각하 칭호는 여전히 보유 중이고 왕실 일가를 제외한 의전서열 1위 자리를 유지하며 왕실 행사에 종종 참여하고 있다. 재혼한 남편과는 10여년 만에 이혼했다. 라는 중국계 혈통의 초엘리트 금융인 여성을 만나 연애하고 1995년 11월 18일 프레데릭스보그 궁전에서 결혼했다. 알렉산드라와의 사이에서 1999년 8월 장남 니콜라이 글뤽스보르와 2002년 7월 차남 펠릭스 글뤽스보르를 낳았지만 2005년에 이혼했다.
파일:Screen Shot 2024-12-21 at 18.54.09.png
결혼사진
2008년, 프랑스 출신인 마리 아가시 오딜 카발리어와 재혼해 2009년 5월 헨리크와 2012년 1월 아테나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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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가족사진

4. 여담


[1] 1974년-1976년은 형과 함께 아밀리엔스보그 궁전에서 개인 수업을 받았다. [2] 아버지가 중국인과 영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중국계 영국인이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혈통의 백인이다. 아버지 역시 동양계 외모가 더 강하며 부모가 낳은 세 자매 중 장녀 알렉산드라만 동양적인 외모가 돋보이고 두 여동생은 백인에 가까운 외모다. [3] 전처 알렉산드라 맨리와 결혼할 때 중국계라 보수적인 유럽 상류층에서 이런저런 뒷공론이 있었고 덴마크 국민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라는 겨우 수개월 만에 덴마크어를 익혀 완벽하게 구사함으로써 동양계 혈통에 대한 반발감을 일거에 불식시킨 바 있다. [4] 다만 이 프레데릭스보르 여백작 작위는 자녀에게 세습시킬 순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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