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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판삼사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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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 (918~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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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벌귀족기 (981~1170) |
왕가도 이유충 김약진 최유길 류석 임간 오수증 이오 왕하 오연총 이자겸 최계방 강증 이궤 박경인 왕자지 최홍재 김부식 임경청 이중 한유충 왕충 최관 최유청 문공원 최함 김거공 최유칭 김영윤 서공 | |
무신정권 (1170~1270) |
임유겸 정극온 김취려 이적유 | |
원 간섭기 (1270~1356) |
공유 정가신 박지량 한희유 김흔 김지숙 홍규 최유엄 정인경 설영임 정해 김심 김태현 김혼 이호 김순 김태현 강융 박허중 이제현 권겸 박충좌 이제현 손수경 손홍량 김나해 이몽가 조일신 이권 홍언박 류탁 조유 강천유 강윤충 강인백 | |
여말선초 (1356~1392) |
원호 이수산 이인복 전보문 이수산 최영 이색 이색 이색 심덕부 설장수 조준 | |
王嘏
(? ~ ?)
1. 개요
고려의 문신.2. 생애
숙종 3년인 1098년 윤계형(尹繼衡)과 요나라에 조공 사절로 다녀온다. 이 해에 병부원외랑 추밀원우부승선(兵部員外郞 樞密院右副承宣)에 임명된다. 이후 상서(尙書)로 승진하며, 숙종 5년인 1100년에는 시랑(侍郞) 오연총, 임의, 김부일 등과 송휘종의 즉위를 축하하러 간다. 이듬해에 돌아와 추밀원좌승선(樞密院左承宣)에 오른다. 숙종 8년인 1103년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숙종 9년인 1104년 삼사사(三司事)를 거쳐 숙종 10년인 1105년 지추밀원사 병부상서(知樞密院事 兵部尙書)에 이른다. 예종이 즉위한 뒤에는 이부상서 추밀원사(吏部尙書 樞密院使)로 승진하며 이후 수사공(守司空), 판삼사사를 역임한다.금석문에 따르면 최종 관직은 좌복야 참지정사(左僕射 叅知政事)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3. 가족관계
금석문에서 확인되는 딸이 둘 있다. 최재의 묘지명에 따르면 개성군부인(開城郡夫人)에 봉해진 딸은 공암 최씨(孔巖 崔氏)[1] 최재(崔梓)와 사이에서 4남 4녀를 둔다. 또 김지우의 묘지명에 따르면 김인규의 아들 김지우의 모친이 왕하의 딸인 개주군부인(開州郡夫人)이다. 왕하의 딸이 왕가도의 부인과 같은 개성군부인(開城郡夫人)이라 나이대를 보면 왕가도의 손자로 추정된다.[2]- 본인: 왕하
[1]
현재
양천
[2]
이전 문서에는 아들로 추정된다고 되어 있었으나, 왕가도 정도의 공신의 아들이 나이 60대 초반의 나이에(정말 정말 양보하여 1034년에 죽은 왕가도의 유복자로 1035년에 태어났다고 쳐도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1098년이면 나이가 63세이다.) 병부원외랑에 우부승선이라는, 그리 높지는 않은 관직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또한 장녀와 결혼한 사위 최재가 1079년생인데, 그럼 장인과 맏사위의 나이가 44살 차이가 된다. 여러모로 봤을때 손자로 보는게 타당할 것이다.
[3]
공암 최씨(孔巖 崔氏) 최저수(崔翥守)의 아들
[4]
경주 김씨
김경용의 아들
[5]
인주 이씨
이자겸의 3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