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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0:35:33

왕자(강양공)


王滋
(?~1308)

1. 개요2. 상세

1. 개요

고려 시대의 왕족으로 충렬왕 정화궁주 소생의 왕자다. 작위는 강양공(江陽公). 충렬왕에게는 적장자이자 서장자이다[1].

2. 상세

본래 정화궁주가 충렬왕의 제1비였으나 1274년 혼인한 제국대장공주가 제1비가 되고 정화궁주가 제2비로 물러나면서, 충렬왕의 적장자였던 왕자도 하루아침에 서자로 전락하여 왕위 계승 순위에서 밀려났다. 게다가 왕자가 세자로 책봉되는 것을 막고자[2] 충렬왕 5년인 1279년부터 충청도 아주의 동심사(東深寺)에 보내졌다가 4년 뒤 환속해 강양공에 봉해진다. 왕자 본인은 아버지 충렬왕의 재위가 끝나기 직전인 1308년 4월에 죽었고, 제국대장공주의 아들인 이복동생 충선왕이 고려 왕위를 이었다. 사후 1391년 공양왕에 의해 정강공(靖康公)의 시호가 추증된다.

아내는 사서에서 안비(安妃)라고 호칭되며[3], 아들로 왕후(王珛), 왕고(王暠), 왕훈(王塤)이 있다. 왕후는 단양부원대군에 봉해진다. 왕고는 충선왕으로부터 심왕 작위를 상속받아 2대 심왕을 지낸다. 왕훈은 연덕부원대군에 봉해진다.


[1] 적장자이자 서장자라는 해괴한 경우가 된 경위는 아래에 서술. [2] 훗날 충선왕으로 즉위하는 이복동생 왕장은 1277년에 이미 세자로 책봉됐다. [3] 심왕으로서의 충선왕이 왕고를 세자로 삼았기 때문에, 그 어머니 역시 충선왕의 후궁에 상당하는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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