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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올림피오스 (Olympius) |
출생 | 미상 |
사망 | 652년 |
직위 | 라벤나 총독 |
반란 대상 | 콘스탄스 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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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이라클리오스 왕조의 반란자. 제11대 라벤나 총독. 콘스탄스 2세 황제의 지시에 따라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잡아들이려 했지만, 곧 마음을 바꿔 반기를 들었으나 전염병에 걸려 사망했다.2. 행적
648년 초, 콘스탄스 2세는 이슬람의 침략이 갈수록 심해져 제국의 영토를 잃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칼케돈 공의회파와 단성론, 그리고 단의론간의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 신민들이 분열되는 꼴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전범(Typos)>을 발표하여 일체의 논쟁을 중지하고, 앞으로 예수의 인격, 신격을 운운하는 자는 모두 처벌한다고 밝혔다. 주교나 사제라면 즉각 해임하고, 수도사라면 파문할 것이며, 군인이나 관리라면 지위나 직함을 박탈하며, 원로원 의원이라면 재산을 몰수하고, 민간인이라면 매질을 하고 유배를 보내겠다고 했다.649년 10월, 교황 마르티노 1세는 공의회를 열어 전범을 비난했다. 그는 공의회의 논의 사항에 관한 상세한 보고를 그리스어로 번역해서 보내면서, 콘스탄스 2세에게 단의론을 거부하라고 요구했다. 황제는 이에 분노했고, 라벤나 총독 올림피오스에게 교황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고 소규모 군대와 함께 로마로 출진했다. 마르티노 1세의 전기를 쓴 아나스타시오스에 따르면, 올림피오스는 애초에 교황을 체포하기보다 죽일 생각이었는데, 여러 차례의 시도가 실패한 뒤 교황이 신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교황에게 참회했다고 한다.
이후 이탈리아에 널리퍼진 동로마 제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이탈리아를 제국으로부터 분리하고 자신이 황제로 자처하기로 했다. 그는 652년 시칠리아로 진군해 제국군을 몰아내려 했다. 그러나 도중에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군대는 와해되었고, 그 역시 같은 해에 병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