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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에우티키오스 (영어: Eutychius, 그리스어: Ἐυτύχιος) |
출생 | 미상 |
사망 | 751년 |
직위 | 라벤나 총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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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라벤나 총독부의 20대이자 마지막 총독.2. 생애
727년 라벤나에서 반란이 일어나 파울로스 총독이 살해당하자, 레온 3세는 그를 파견해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다. 그는 나폴리로 상륙한 뒤 일부 관리들을 로마로 파견해 교황 그레고리오 2세를 체포하게 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랑고바르드 왕국에 뇌물을 줘서 그레고리오 2세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무효로 하게 유도하였고, 랑고바르드 왕국은 반항적인 베네벤토 공국과 스폴레토 공국을 복종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와 손을 잡겠다고 했다. 교황이 랑고바르드 왕국의 로마 침략을 저지하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라벤나로 가서 반란을 진압하였다. 이후 교황과 화해하였고, 730년 또는 731년 투시나에서 반란을 일으킨 티베리오스 페타시오스를 교황의 도움에 힘입어 토벌했다.732년 랑고바르드 군주 리우프란트는 태도를 바꿔 라벤나를 급습했고, 라벤나는 얼마 안가 함락되었다. 그는 베네치아 석호로 피신한 뒤 당시 총독의 암살로 혼란에 빠져 있던 베네치아를 수습하고 도제를 선출할 수 있는 마기스테르 밀리툼 5명을 임명하였다. 또한 랑고바르드 국왕 리우프란트에 대항하여 스폴레토와 베네벤토 공작을 지원하여 두 공작이 중부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랑고바르드 왕국이 혼란에 휩싸인 사이, 그는 739년 베네치아의 도움으로 라벤나를 탈환했다.
743년 스폴레토를 제압하고 직할령으로 삼은 리우프란트가 라벤나로 진군하자, 그는 무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라벤나 대주교 요한 5세와 시민 대표들을 교황 자카리아에게 보내 중재를 요청했다. 리우프란트는 교황의 설득에 넘어가 라벤나를 정복하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나 751년, 아이스툴프 왕이 이끄는 랑고바르드군이 라벤나를 공략했고, 그는 사력을 다해 싸우다 전사했다. 이리하여 동로마 제국은 이탈리아 중부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바리에 총독부를 새로 세워 남이탈리아에서나마 세력을 보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