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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양/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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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전쟁없는세상 · 대체복무제 · 평화주의 · 21세기 진보학생연합 · 오태양 성소수자 현수막 훼손 피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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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정치 입문 전
2.1. 평화주의 운동가
3. 정계 입문 후

1. 개요

오태양의 생애를 다룬 문서.

2. 정치 입문 전

1975년 10월 26일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 광진구에서 자랐다.

2.1. 평화주의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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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주의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첫 공개 선언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준비해야합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 선언 중

서울신자초등학교, 광양중학교, 광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에 94학번으로 입학하여 인권운동을 하다가 2001년에 자신의 평화주의적인 신념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1] 이 과정에서 그는 학사장교 38기 최종 합격했으나 양심적 병역거부의 신념에 따라 입대하지 않았다.

한동안 선고가 보류되고 재판이 미루어지다가 2004년 8월에야 1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004년 11월 그의 여동생이 오빠의 병역거부를 지지하며 병역법 개정안을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한겨레 독자투고란에 기고하기도 했다. #

오태양 이전에도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의 윤석양 이병이나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으로 인해 탈영 후 군 복무를 거부한 전투경찰 박석진 같은 비종교인 병역거부자들이 있었으나 그의 병역거부 선언을 계기로 그동안 병역의 의무가 신성하게 여겨지던 한국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병역거부 운동이 확산됐다.

2001년에서 2004년 사이 병역거부를 한 뒤 스스로 대체복무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저소득층 아이를 상대로 한 공부방에서 활동하고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소에서 일했다고 하지만 당시 토론회와 강연장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거나 물병을 던지는 이들도 생겼다고 한다. 하루는 독거노인에게 밥을 퍼서 드리는데 "매국노가 떠준 밥은 먹을 수 없다."며 식판을 내팽겨쳤다고 한다.

직업군인인 그의 동창은 이라크 파병 전날 전화를 걸어와 “나는 너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너의 선택은 지지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오태양은 자신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지만 참전을 결정한 친구의 선택은 존중했다며,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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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국방위에서 증언하는 오태양

그는 징역형이 확정되어 청주교도소에서 복역한 후 2005년 11월 30일 만기 출소하였다. 석방되었지만 전과로 인해 본래의 목표였던 초등학교 교사의 꿈은 접어야 했다고 한다.[2] 이후에는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의 병역법 개정안을 신호탄으로 양심적 병역거부 공청회를 열자 오태양의 '좋은 벗들'을 비롯해 평화인권연대, 평화네트워크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과 국방부와 병무청 관계자 등이 100여명이 자리를 같이해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총 3,000명이면 전체 병력의 0.5%인데 매년 1,000명씩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쿼터제'를 3년 운영해보자"며 "일단 시행해서 정말 안보에 영향이 있는지, 징병제의 기본틀을 흔드는지, 국민여론이 나쁜지 알아보자"고 제안했는데 이 의견에 한홍구 교수도 "대체복무인원의 상한선을 묶고 구체적으로 1,000명이 적당할지 3,000명이 적당할지는 국방위에서 논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3. 정계 입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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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복무제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 석방 시위
박주민 의원,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임재성 민변 소속 변호사, 홍정호 활동가 등과 함께했다.

이후 인권단체 활동을 거쳐 청년당에 입당하여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하였고 2018년에는 원외 청년 정당인 우리미래에서 비상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2대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3.1. 21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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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의 반대 기습 연설
미래한국당은 불법정당입니다. 당장 해산하십시오. 당장 해산하고 집에 가시기 바랍니다. 위성정당 불법 정당 가짜정당 미래한국당 해산하십시오
2월 5일, 미래한국당 창당대회
민주당은 마치 연합정당 통합과 소수정당과의 추가 교섭을 하는 것처럼 언론에 밝혔으나 실제로는 시민당을 사실상 내정한 채 일방적인 위성정당 만들기에만 전력했습니다. 미래통합당이 대놓고 만들었던 위성정당(미래한국당)과 민주당이 민주당 아닌척 만들고 있는 위성정당은 강도짓과 도둑질의 비유에 다름 아닌 국민 기만입니다.
3월 20일, 기자간담회

2020년, 21대 총선을 위해 비례대표로 출마하여 비례순번 2번을 받았다. 미래한국당 창당대회에서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년정당 미래당 대표 오태양입니다. 미래한국당은 불법정당입니다. 당장 해산하십시오. 당장 해산하고 집에 가시기 바랍니다. 위성정당 불법 정당 가짜정당 미래한국당 해산하십시오” 라고 발언했다. 오태양 대표의 기습 연설에 기자들이 모두 몰려들었고, 발언을 마친 오태양 공동대표는 당직자들에 의해 무대 구석으로 밀려난 뒤 행사장에서 쫓겨났다. 행사장에서 끌려난 오태양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국민을 초대한 행사였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초대받아 갔다”며 “내일 선관위에 미래한국당을 정당법, 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고발할 예정이다. 정당법에 보면 입당을 강요하거나 재정 관련 강제적 모금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오태양 공동대표가 미래한국당 관계자들에게 폭행을 당해 논란에 일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창당 과정에서 비례연합정당에 선거 연합을 위해 참가하려고 했지만 당시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이 "이념·성소수자 논란 부를 정당과 연합 어려워"라며 녹색당, 미래당을 배제하고 이후 민주당을 따르는 정당만을 규합했으나 해당 정당들이 문제가 발견되자 다시 녹색당, 미래당에 손을 뻗는 행동을 보여 논란이 일자 더불어시민당을 향해 "연합정당 통합과 소수정당과의 추가 교섭을 하는 것처럼 말해놓고, 일방적 위성정당 만들기에는 전력한다"며 비판을 가했다.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해찬 민주당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후 양당정치심판, 정치세대교체를 외치며 미래당의 지역구 강화를 위해 광진구 을에 출마해 8번을 받았다. 이후 1.4%를 받으며 낙선했다.

총선 이후 미래당의 3기 대표로 당선되었다.

3.2. 2021년 재보궐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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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후보의 혐오발언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 오태양이 지키겠습니다.
출마선언문
서울은 무지개 이기는 소수자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 선언했다. 이후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의 성소수자 차별 발언을 비판했다.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이후 변희수 하사를 추모하며 서울광장에서 열린 변희수 하사 추모식에 참여했으며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 일자 LH를 맹비판하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의당, 녹색당과의 정책 연대로 후보를 내지 않은 두 정당과 사실상 단일화했으며 인권재단 사람, 청소년정책연대 등과 정책 교류 협약을 맻으며 성소수자, 여성, 청소년, 이주민 권리를 위한 정책을 교류했다. 손상우와 서진석을 기후미래특별위원회, 성평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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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얀마군부 결탁 포스코규탄 기자회견

미얀마와의 연대를 선언하며 미얀마 인권운동가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3월 26일 미얀마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부와 결탁해 논란이 일은 포스코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및 시위를 진행했다. 다음 날에는 미얀마 민주화 희생자 추모를 위한 시민분향소에서 참배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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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에 변희수 전 하사를 추모하며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 집회를 진행했다.


토론회에서 아예 남성 후보 자체가 출마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될 수 없으며 트랜스젠더 배제하는 페미니즘은 또다른 혐오라며 김진아 후보를 비판하였다. 신지예 후보 역시 트랜스젠더 문제에서 오태양 후보와 의견을 함께했다.

선거 결과 9위라는 낮은 순위로 낙선했다. 오태양 후보보다 적은 표를 얻은 것은 무소속 정동희, 이도엽 후보와 신민련 배영규 후보 뿐으로, 소수자 권리를 내세운 후보 중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다.

3.3. 제20대 대통령 선거

미래당이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와 선거연합을 하게 되면서 김동연 후보의 유세에 함께했다.

이후 김동연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를 선언하고 사퇴하자 3월 2일에는 "새로운 시대로 가는 길목에 작은 이정표 하나 묻고 가는 마음입니다."라면서 아쉬움을 표출했다.

[1] 당시 오태양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오보가 있었다. 실제로 그는 불교 신자다. [2] 성범죄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률상 무조건적인 교육공무원 결격사유는 아니지만(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신원조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일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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