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colcolor=#000> 프로이센 왕국의 왕자 오스카어 폰 프로이센 Prinz Oskar von Preuß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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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오스카어 카를 구스타프 아돌프 폰 프로이센 (Oskar Karl Gustav Adolf von Preußen) |
출생 |
1888년
7월 27일 독일 제국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 대리석 궁전 |
사망 |
1958년
1월 27일 (향년 69세) 서독 바이에른 뮌헨 |
배우자 | 이나 마리 폰 바세비츠 여백작 (1914년 결혼) |
자녀 | 오스카어, 부르하르트, 헤르첼라이데, 빌헬름 카를 |
아버지 | 빌헬름 2세 |
어머니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아우구스테 빅토리아 |
형제 | 빌헬름, 아이텔 프리드리히, 아달베르트, 아우구스트 빌헬름, 요아힘, 빅토리아 루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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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오남.2. 생애
1888년 7월 27일 포츠담에서 태어났다. 오스카가 태어난 1888년에는 증조할아버지이자 독일 제국의 초대 황제인 빌헬름 1세와 할아버지이자 제2대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빌헬름 2세가 황제로 즉위한 세 황제의 해였다. 오스카는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에 태어났다. 중앙 베를린 슈프레섬에 있는 황궁 예배당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군주이자 대부였던 오스카르 2세의 이름을 따서 오스카어가 되었다.다른 형제들처럼 오스카도 장교로 교육 받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초기에는 척탄병 연대 "쾨니히 빌헬름 1세"를 지휘했고, 이후에는 동부 전선에서 복무했다. 최종계급은 대령.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대령 연금을 신청했다는 이유로 언론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다른 형제들처럼 나치당에 호의적이었으나 히틀러는 군주제를 혐오하는 사람이었기에 왕정복고는 어림도 없었다.
오스카어의 장남과 장조카인 빌헬름 왕자가 전사하면서 독일의 왕족들과 귀족들은 군대 예편되었다.
이후 1958년 서독 바이에른 뮌헨에서 향년 69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빅토리아 루이제를 제외한 형제들 중에서 가장 늦게 사망했다.
3. 성 요한 기사단장
제35대 성 요한 기사단장으로 활동했다. 제36대 기사단장은 삼남 빌헬름 카를이고 제37대 단장은 둘째 손자 오스카어 왕자다.[1]
4.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호엔촐레른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4.1. 자녀와 후손
이나 마리 폰 바스비츠 여백작과 결혼해서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 결혼 당시에는 귀천상혼이였으나 독일 군주제 폐지 이후인 1920년에 가법에서 귀천상혼 규정을 완화하면서 동등결혼으로 인정되었다. 덕분에 자녀들의 가문 계승권은 유지되었다.[2] 장남 오스카어는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인 폴란드 침공에 참전해서 전사했다. 차남 버크하르트는 결혼은 했으나 자녀는 없었다. 장녀 헤르첼라이데는 슬하 2남 1녀를 두었다.
삼남이자 막내인 빌헬름 카를 폰 프로이센은 빌헬름 2세의 손주들 중 가장 늦게 태어났으며, 누나 헤르첼라이데처럼 제정폐지 이후에 태어나서 실제 왕자였던 적이 없었다. 첫째 형은 전사하고, 둘째 형은 자녀가 없었기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36대 성 요한 기사단장이 되었으며, 슬하 2남 1녀를 두었다.
빌헬름 카를의 차남이자 막내인 오스카어 폰 프로이센은 현재 제37대 성 요한 기사단장이다. 슬하 2남 1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