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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4 14:58:31

오브레노비치 왕조

1. 개요2. 상세3. 계보

1. 개요

세르비아의 왕조.

2. 상세

오스만 제국 치하의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 치하 말기에 세르비아 공국으로 반쯤 독립하면서 오브레노비치 가문이 세르비아 공작을 대대로 배출하게 되었다. 이후 세르비아 공국이 완전히 독립하여 세르비아 왕국으로 격상되면서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위상도 더욱 올라갔으나, 알렉산다르 1세가 각종 실책으로 민심을 잃다가 결국 쿠데타로 살해당하는 바람에 카라조르제비치 왕조에 세르비아 왕위를 넘겨주고 말았다.

2대에 그친 팔라비 왕조나 1대에 그친 보카사 왕조도 아니고 왕사가 그나마 5대 동안 약 백 년가량 유지되었음에도 마치 유럽판 유송 왕조를 보는 것처럼 이 왕가에서는 명군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인데, 건국자인 밀로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세르비아를 독립시키는 데 크게 공헌한 세르비아 독립의 구심점이기는 했으나 통치 방식이 전근대적이고 독선적이었으며 그 장남 밀란은 요절, 차남 미하일로는 계몽군주이기는 했으나 전제군주로서의 권력에 집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다 암살당했고, 밀로시의 종손자이자 미하일로의 당조카로서 즉위한 밀란(1세)은 국왕으로서 이렇다 할 업적도 없었음에도 막장 가정사로 인해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을 놔 두고 퇴위했고 그 아들인 알렉산다르 역시 방탕한 행적으로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화려한 끝을 장식했다. 송(남조)/왕사 문서에서 잘 나와 있듯, 왕실 구성원들이 하나같이 이 지경이 된 원인으로는 건국자인 밀로시에게 전근대의 지도자가 아닌 근대의 지도자로서의 정치 이념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그럴 의지조차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후계자들은 복장만 근대식 의복이고 의회 시스템만 근대식 시스템이지 군주의 성향이나 정치적 배경 등등이 전혀 근대적이지 않고 전근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니까 당대의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전제군주제에 가까운 나라여도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인 척은 했고 의회와 국민들을 존중하는 뉘앙스라도 보인 반면에, 오브레노비치 왕조는 그런 것조차도 없었다.

현재 오브레노비치 왕조의 왕위 요구자로는 프레드라크 야코블리에비치와 니콜라 페트로비치-네고시가 있다. 후자는 몬테네그로 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한데, 알렉산다르 1세의 내재종여동생이 니콜라의 할머니이기 때문에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왕위 요구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계보

가정사가 상당히 비범한 편인데, 일단 가문명인 오브레노비치가 초대 공작인 밀로시 오브레노비치적부이자 어머니 비쉬냐의 사별한 전 남편 오브렌(Obren)에게서 따온 것이기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밀로시의 부계 친족이 아닌 모계 친족들에게 주어진다. 현재 오브레노비치 계통의 왕위 요구자 중 한 명인 프레드라그 역시 오브렌의 친자인 야코브의 후손으로 밀로시의 친부 테오도르와는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
비쉬냐 (1737? ~ 1817)
(1, 5) 밀로시 오브레노비치
(1780 ~ 1860)
예브렘
(1790 ~ 1856)
야코브[1]
(1767 ~ 1817)
(2) 밀란 오브레노비치
(1819 ~ 1839)
(3, 6) 미하일로 오브레노비치
(1823 ~ 1868)
안카
(1821 ~ 1868)
밀로시
(1829 ~ 1861)
?
알렉산다르
(? ~ 1914)
(7) 밀란 1세
(1854 ~ 1901)
?
나탈리야[2]
(1882 ~ 1950)
(8) 알렉산다르 1세
(1876 ~ 1903)
게오르기
(1889/1890 ~ 1925)
?
미하일로
(1908 ~ 1986)
?
니콜라
(1944 ~ )
프레드라그

멸문 직전에도 남아있는 왕족 남성이 씨가 마를 지경이어서, 1903년 시점에서 알렉산다르 1세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다음 계승자는 살리카법의 여계 계승 금지와 여성 계승 금지를 모두 위반한 나탈리야(1882 ~ 1950)[3]가 즉위할 예정이었다.[4] 그러나 알렉산다르가 독단적으로 왕세자 자리를 자신의 평민 처남에게 넘겨버린 것이 화근이 되어 오브레노비치 왕조는 왕위를 잃게 되고, 정작 본가인 몬테네그로는 니콜라 1세의 장남 다닐로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서 차남 미르코의 아들 미하일로가 왕위를 잇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하다. 이외에도 밀란 1세의 어머니는 루마니아 공국의 공작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와 사통해서 왕자까지 낳았다. 실사판 재혼황후.

1945년 오브레노비치 왕조를 몰아낸 카라조르제비치 왕조가 동유럽 공산화로 인해 몰락하고 공산권 정부 또한 구소련 해체와 함께 탈공산화되었으나 카라조르제비치 왕조가 왕정복고되지 못하는 마당에 공작위/왕위를 쥐고 있던 시절에 즉위하는 족족 문제를 일으켜 평판이 나빠진 오브레노비치 왕조가 복권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 현존하는 비쉬냐의 직계 자손은 모두 야코브의 후손이다. [2] 1902년 세르비아 정부에 의해 왕세녀로 지명되었으나 이듬해인 1903년 오브레노비치 왕조가 몰락하고 다른 가문인 카라조르제비치 왕조가 들어서면서 무효화된다. [3] 당시 몬테네그로 국왕이었던 니콜라 1세의 차남 미르코 왕자와 혼인했다. 현 몬테네그로 왕위요구자 니콜라 2세의 할머니. [4] 알렉산다르가 자녀가 없다면 왕가 혈통 중에는 그의 후계자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는 알렉산다르가 자녀를 가질 계획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 드라가 마신이 알렉산다르보다 12살이나 연상이긴 해도 1900년 결혼 시점에선 아직 36세였고 1903년 살해될 시점에서는 불과 38세였다. 당대에도 왕족 여성들이 40대에 출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자녀가 생길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알렉산다르는 결혼하자마자 자녀를 가질 생각은 안 하고 친척 중에 후계자를 물색하기 시작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