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2-12-10 19:58:48

오보다스 3세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2B48C, #B8860B 20%, #B8860B 80%, #D2B48C); color: #000;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rowcolor=#FFF>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아레타스 1세 아레타스 2세 오보다스 1세 라벨 1세
<rowcolor=#FFF>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아레타스 3세 오보다스 2세 말리코스 1세 오보다스 3세
<rowcolor=#FFF> 제9대 제10대 제11대 -
아레타스 4세
훌두
샤킬랏 1세
말리코스 2세
샤킬랏 2세
라벨 2세
가밀랏
하가루
- }}}}}}}}}
나바테아 왕국 8대 군주
Ōbōdaṯ | 오보다스 3세
파일:오보다스 3세.jpg
제호 한국어 오보다스 3세
아람어 Ōbōdaṯ
그리스어 Ὀβόδας
라틴어 Obodas III
존호
생몰 년도 미상 ~ 기원전 9년
재위 기간 기원전 30년 ~ 기원전 9년

1. 개요2. 행적

[clearfix]

1. 개요

나바테아 왕국 8대 군주.

2. 행적

나바테아 왕국 7대 군주 말리코스 1세의 아들이다. 기원전 3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26년, 이집트 총독 가이우스 아일리우스 갈루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지금의 오만, 예멘에 해당하는 '아라비아 펠릭스(Arabia Felix)'를 공략하기 위한 원정에 착수했다.( 갈루스의 아라비아 원정) 그는 로마군이 나바테아 영토를 통과하는 걸 용인하고 1,000명의 나바테아 보조병을 보냈으며, 살라에우스라는 인물을 안내원으로 삼게 했다. 그러나 원정은 실패로 돌아갔고, 갈루스는 원정 실패 책임을 살라에우스에게 떠넘겨 처형당하게 했다.

그는 아우구스투스를 모방하여 월계관으로 장식된 자신의 이미지를 동전에 새겼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 새로운 양식의 동전은 기원전 14/13년부터 주조되었다. 또한 수도 페트라에 콰스르 알-빈트(Qasr el-Bint) 사원을 건설했는데, 이곳은 나바테아 왕들의 성역이 되었다. 그러나 고대 작가들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그를 "무능하고 냉담한 사람이었으며 모든 일을 신하에게 맡겼다"라고 평했고, 스트라보는 "오보다스 왕은 공무와 군사에 근면하지 않았고, 실라에우스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라고 밝혔다.

나바테아 왕국의 실권자 실라에우스는 헤로데 대왕의 여동생 살로메와 사랑에 빠졌다. 그가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청하자, 헤로데는 유대교로 개종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그렇게 했다간 아랍인들에게 돌로 맞을 거라며 거절했고, 헤로데는 개종하지 않으면 결혼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에 분노한 실라에우스는 헤로데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트라코니티스 주민들을 지원했다. 헤로데는 반란을 진압했지만, 40명 가량이 실라에우스에게 망명했다. 그는 이들을 훈련시켜 유대와 코엘레 시리아를 약탈하게 했다. 이에 헤로데는 나바테아로 망명한 이들의 가족을 살해했다.

이렇듯 양자 사이에 무력 충돌이 번번이 일어나자, 로마의 시리아 사령관 사투르니누스에게 반란군을 처벌하고 오보다스 3세에게 빌려준 60달란트를 돌려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실라에우스는 나바테아엔 반란군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부인하고 빚은 나중에 갚겠다고 밝혔다. 사투르니누스는 30일 이내에 헤로데에게 돈을 돌려주고 도망자들을 유대로 보내라고 명령했다. 실라에우스가 거부하자, 헤로데는 사투르니누스로부터 무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다. 헤로데는 반란군이 포로를 수용하고 있던 렙타 요새를 공략하고 귀환하던 중 나케브가 이끄는 나바테아인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가볍게 격파했다.

실라에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 헤로데가 제멋대로 왕국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했다고 항의했다. 이에 황제는 헤로데를 질책했다. 헤로데는 황제의 총애를 잃을 것을 우려해 두 아들을 로마에 인질로 보냈다. 그러던 기원전 9년, 오보다스 3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헤로데는 아레타스 4세의 사절들과 동맹을 맺고, 아우구스투스에게 자신이 나바테아 왕국을 공격했던 건 시리아 총독의 허락을 받았던 것이니 정당하다고 밝혔고, 실라에우스가 오보다스 3세를 암살했다고 고발했다. 아우구스투스는 마음을 바꿔 헤로데를 신임했고, 아레타스 4세를 새 왕으로 세우기로 했다. 아레타스 4세는 귀국 후 실라에우스를 추방하고 왕위에 올랐다. 실라에우스는 몇년 후 음모를 꾸몄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로마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