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오다 미키오(織田 幹雄) Mikio Oda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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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5년 3월 30일 |
일본 제국 히로시마현 아키군 카이타정 | |
사망 | 1998년 12월 2일 (향년 93세) |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 | |
신체 | 167cm, 65kg |
종목 | 육상 |
주종목 | 세단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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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前 남자 육상 선수이며, 일본의 올림픽 첫 육상 금메달리스트.2. 상세
오다 미키오는 일본 육상 역사에서 주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928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남자 삼단뛰기 종목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일본 육상 대표팀이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오다는 일본 올림픽 역사상 첫 육상 금메달리스트로 기록되었다. 1931년, 와세다대학 재학 중에 15.58m로 세계 기록을 경신하기도 하였다. 와세다대학 상학 학사로 편입해 상경계열 출신이다.[1] #이후에도 오다 미키오는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 개막식에서 성화 점화 모교 와세다대학의 교수를 맡는 등 자주 등장한 바 있다. 일본 스포츠 역사상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기억된다.
3. 한국과 인연
정상희가 참석해 있었는데 그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종 선발전 1등을 어떻게 제외합니까. 조선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일본인들 대부분이 고개를 외로 꼬는 가운데 한 일본인이 무겁게 입을 열었어. “정상희씨의 말이 옳습니다. 남승룡은 선발전 우승으로 실력을 확인해주었으며, 그를 배제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어느 놈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냐!’ 발끈하며 돌아본 일본인 기술위원도 필시 있었겠지만 발언자를 보고 끙 하며 곧바로 돌아앉았을 거야. 발언의 주인공은 일본 육상의 영웅 오다 미키오였거든. 그는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 육상 3단 뛰기 종목에서 15.21m를 기록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어. 일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지. 먼 훗날
1964년 일본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릴 때 내걸린 일장기 높이는 정확하게 15.21m였다고 해. 오다 미키오를 기념하기 위해서였어. 그 정도의 위상을 지닌 스포츠 영웅이 멋진 스포츠맨십을 발휘해준 거야. ... (중략) 〈
아사히 신문〉 스포츠부장이 바로 오다 미키오였거든. - 〈
동아일보〉
손기정 기고문, 1976년 1월13일)
오다 미키오는 한국인 (당시 조선인)을 지지해준 양심적인 일본인 유력 인사 중 한명 이었다.
# 4. 여담
1958 도쿄 아시안 게임 개막식때 성화 점화를 하였다.5. 수상 기록
올림픽 | ||
<colcolor=#000> 금메달 | 1928 암스테르담 | 세단뛰기 |
[1]
비즈니스 스쿨 격
[2]
사실 이정도의 상식적인 생각을 다른 일본 체육계 인물들이 못해서 조선인들을 배제하려고 했던게 아니다. 조선인들이 일본인들보다 앞서는게 일본인들의 자존심을 해하는 일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