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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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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000><colcolor=#fff> 오 헨리
O. Henry
파일:William_Sydney_Porter_by_doubleday.jpg
본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A]
William Sidney Porter
필명 윌리엄 시드니 포터[A]
William Sydney Porter
출생 1862년 9월 1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그린즈버러
사망 1910년 6월 5일 (향년 47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직업 작가
장르 단편소설

1. 개요2. 생애3. 특징4. 영향5. 작품

[clearfix]

1. 개요

"오 헨리는 단편소설에 싱그러운 새 바람을 불어넣음으로써 단편 소설이라는 장르가 독자들로부터 받던 불신이나 모욕을 없애 주었다.”
"가 단편 소설을 표준화하고, 호손이 그것을 우화화했다면, 오 헨리는 그것을 인간화했다."

본명은 윌리엄 시드니 포터 (William Sidney Porter). 오 헨리라는 필명은 여러 가지 일화가 전해지는데, 그가 기르던 고양이가 오 헨리라는 이름을 가져서 헨리라고 부르면 듣는 척도 안 하다가 오 헨리라고 불러야지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 및 교도소 복역 당시 교도소의 간수인 오린 헨리 이름을 따왔다는 설, 또 그가 복역했던 오하이오 주 연방 교도관(Ohio penitentiary)의 첫 자음 끝 철자의 조합이라는 설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설이 교도관장 오린 헨리 이름을 딴 것이다. 교도소에서부터 오 헨리란 필명으로 꾸준히 단편소설을 발표하여 출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2. 생애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고 약사 자격증을 따 약사로 일했다. 하지만 이 직업은 경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여 여러 일을 하며 살아갔는데 지방악단에서 만돌린이나 기타 연주도 하고 지역 신문기자로도 일했다가 28살 때 17살난 아내 아솔을 만나 결혼한다. 1남 1녀를 얻었으나 아들 제러미는 일찍 죽고 딸인 마거릿은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으나 그녀도 1927년 38살 나이로 병들어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만다.[3]

1893년에 롤링 스톤이란 주간지를 내서 데뷔했지만 그다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나마 장인의 도움으로 우체국 사무원으로 일했고 이후에 은행원으로 일하던 도중, 은행 자금을 횡령하여 1898년부터 3년 동안 복역하기도 했다. 원래는 5년형이 선고되었다가 모범수로 가석방 되었다고. 처음에 그는 횡령사실을 부정하면서 1896년 멕시코를 거쳐 온두라스로 달아나 1년 동안 잠적했다가 아내가 병으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자수해 아내인 아솔이 눈을 감는 걸 곁에서 지켜본 다음에 재판을 받았는데 약사 자격증이 있기에 교도소 의무실에서 약사로 일하면서 복역하게 되었다.[4] 그는 이 교도소 생활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회고했다.

석방된 다음 해인 1902년부터 본격적인 작가로 활동하며 모두 381편의 단편소설을 썼고 생전에 10권 남짓한 단편집을 출간했다. 딸 마거릿과 살아가다가 1907년 재혼하였고 이 무렵 연극 각본도 썼으나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그의 단편인 <되찾은 양심>을 다른 이가 연출 및 각본을 맡아서 브로드웨이 연극 <지미 밸런타인>(주인공의 이름)으로 1909년에 만들어 대박을 거둔 바 있다. O. Henry's Full House라는 영화가 1952년 개봉되기도 했다.

1908년, 건강이 악화하여 글쓰기를 중단하였고, 그 와중에 재혼한 아내와 이혼했다. 1910년 6월 5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유일한 핏줄인 외동딸 마거릿에게 남긴 그의 유언은 다음과 같다.
"Turn up the lights - I don't want to go home in the dark."
"불을 밝혀다오.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3. 특징

작품 구성은 트위스트 엔딩이라고 불리는 구성을 띄며 반전이 들어가는 때도 잦다. 작품 성향은 미국 서민들의 애환이 섞인 생활상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유머와 따듯하고 훈훈한 이야기가 많다. 또 갓 근대 도시가 급성장하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오 헨리의 시선을 잘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전해진다. 워드 매캘리스터라는 사람이 "뉴욕시에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모두 400명밖에 되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을 들은 오 헨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400명이 아니라, 400만 명은 된다."

이 당시의 뉴욕시 인구가 바로 400만 명이었다. 오 헨리는 나중에 자신의 작품집 하나에 <400만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4. 영향

문학사적으로는 그리 비중 있는 작가로 여겨지지는 않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오 헨리의 문학사적(특히 미국 문학사적) 비중이 낮다는 이런 평가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오 헨리의 문학사적 비중을 부당하게 깎아내린 편향적 평가의 결과이거나, '특정한 측면에서' 오 헨리의 문학사적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평가에서 전후맥락을 다 떼어내고 '문학사적 비중이 낮다.'라는 부분만 인용해 온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5] 무엇보다도 미국 문학사에서 오 헨리가 빠져버리면 미국 현대문학의 태동기와 황금기 사이를 연결해주는 <성장기> 시대의 미국 문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 문학의 세대와 오 헨리의 위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 기준에서 보면 오 헨리는 미국 문학의 '태동기인 1세대'와 '황금기인 3세대' 사이를 연결하는 '성장기인 2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오 헨리 및 2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도 이러한 특징은 강하게 드러난다.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직 확고하게 자리잡지 못한 시기에 활동한 0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혼란이 강하게 드러나는 데 비해 미국이 하나의 국가로 자리잡고 급속히 성장하던 시대에 살던 1세대 작가들의 작품색은 소년소녀의 감수성과도 상통하는 소박한 낙천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이 열강 중 하나로 확고히 자리잡은 시대에 속한 3세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성인으로서 자신이 가지게 된 능력을 어떻게 사용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1세대와 3세대의 연결고리인 2세대 작가들의 작품세계는 저 두 세대의 중간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즉 1세대의 소년적인 감성에서는 벗어났지만 3세대가 보여준 강한 자기확신과 자신감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자신을 인식하면서도 아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는 벗어나지 못한 청년적 감성을 기반으로 그래도 오늘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열어나갈 수 있으리라는 낙천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일단 오 헨리의 작품들 자체가 미국문학 2세대 작가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또한, 2세대 작가진 중에서 오 헨리를 빼면 이 세대를 대표할만한 작가가 딱히 없다. 진 웹스터는 작품수가 너무 적고, 잭 런던의 작품들은 경향소설의 특성이 너무 강하다. 따라서 오 헨리를 빼고는 19세기 후반 미국의 순문학과 보편적 대중문학을 설명할 수 없고, 만약 미국 문학사에서 오 헨리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그 바로 뒷 시대에 찾아온 미국 문학의 황금기는 없었거나, 실제 역사와는 전혀 다른 형태일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것이다. 좀 더 낭만적으로 표현하자면 마트 트웨인이 보여준 소년( 톰 소여 허클베리 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제이 개츠비와 어부 노인 산티아고로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 헨리가 그려낸 청년들이다.

세대론적 측면 이외에 작품 자체의 특징에 주목하더라도, 오 헨리는 '현대 단편소설의 모범을 제시한 인물'로서 문학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결국 전후 다른 세대의 작가들에 비해 임펙트가 부족하다는 정도면 모를까 문학사적 중요성 자체는 전혀 부정할 수 없는 인물인 셈이다.

실제로 그는 활발하게 연구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며, 그의 작품을 영상화하거나 그를 기리는 사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서 오 헨리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한 해 동안에 발표된 가장 우수한 단편에게 시상하는 상이다. 윌리엄 포크너,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앨리스 먼로 등 수상자들도 이름값이 높기로 유명하다.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이 동화 전집 사이에 끼어 있는 경우도 자주 있다. 7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만화 세계 옛날이야기 (まんが世界昔ばなし, 1976)에서는 붉은 추장의 몸값과 20년 뒤가 애니로도 만들어져 들어가 있었다.[6]

5. 작품

단편이 무려 286편에 달한다. 그의 작품은 영어 원문 사이트에서 읽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는 전집이 못 나오고 이 출판사에서 몇 개, 저 출판사에서 몇 개 내는 식으로 띄엄띄엄 번역되어 있어 집계하기도 난감하고, 잘 알려진 작품 위주로 번역하다보니 수록작이 거진 다 겹치는 와중에 한두 작품만 다른 역본이 난립해서 책을 구매해서 보려는 독자들을 난감하게 만든다. 오 헨리뿐 아니라 체호프, 모파상 같이 단편 위주로 집필 활동을 한 작가들의 국내 번역 현황은 대개 이렇다. 2024년 시점에서 대략 60여 편 가량이 번역, 출간되어 있어 있다.

[A] " O. Henry: American author",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 [A] [3] 다행히 마거릿의 후손들은 지금도 미국에서 살고 있다. [4] 처음에는 확고히 부정하는 그의 모습을 보아 은행 높으신 분들이 횡령했다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자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는 주장도 있다. [5] 예를 들어 오 헨리는 '기교적으로 복잡한' 표현방법은 별로 즐겨 쓰지 않았고, 그가 즐겨 사용한 기교인 '트위스트 엔딩' 역시 결말에서 이야기를 반전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아이러니를 안겨주는 비교적 간단한 기교에 속한다. 이런 점에 주목하여 '문학적 기교의 발전사에서 오 헨리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라는 식으로 설명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 하여 오 헨리의 문학사적 영향력 자체가 낮다는 설명은 비약으로서 수긍하기 어려운 것이다. [6] 참고로 이 시리즈에는 전 세계 민담(한국 민담으로 은혜 갚은 까치와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 쥐 이야기가 제작됐다.) 및 세계 단편 소설들이 애니로 들어가 있으며 데자키 오사무를 비롯한 여러 이들이 참여했다. [7] 고등학교 영어 독해와 작문(동아출판 - 권혁승, 2017년 개정) 6단원 본문으로 나와있다. 다만 고등학생이 읽어야 하는지라 원문이 그대로 실리지 않고 쉽게 각색되었다. [8] ‘마담 엘로이즈 다르시 보먼’ 이라는 이 젊은 귀부인은 사교계에서도 국제적인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라고 호텔 전체에 소문이 났다. 품위있고 우아한데다가 저녁 만찬에 참석할 때 입은 가운이 특히 아름다워서 모두의 시선을 끈다. [9] 자신의 진짜 이름은 메이미 시비터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끌던 화려한 가운은 오더우드 앤드 래빈스키 상점에서 할부로 구입했다는 말을 한다. 또한 1달러 지폐 한 장을 보여주면서 이게 자기가 가진 마지막 돈이라고 하는데 이 돈은 이번 주에 갚을 드레스값 [10] 이 말을 하면서 마담 보먼이 가지고 있는 1달러 지폐를 자기 지갑에 넣고, 1달러 영수증을 써준다. [11] 당시 뉴욕 서민들이 즐겨 찾던 유원지. [12] 이름은 소피이다. 그런데 여자이름으로 쓰이는 sophie가 아니라 soapy다. 이 사람은 남자다. [13] 작중에서는 "섬"이라고 불린다. 당연히 교도소가 하와이처럼 생긴 게 아니라, 뉴욕 시티 맨해튼 구 내 이스트리버의 하중도인 블랙웰 섬(현재명 루즈벨트 섬)에 교도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작중 서술에서 '섬에서 겨울을 나야겠다'고 하는걸 보면 추운 겨울을 바깥에서 버티기는 힘드니 잡범죄로 수개월 정도감옥에 들어갔다 나올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4] 이 교도소는 1832년부터 있었고, 1850년대부터는 점차 구빈원 겸 병원을 겸했다. 한마디로 뉴욕 시의 잡범들을 위한 교도소인 셈. 이 교도소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었고, 1932년 뉴욕 외곽의 라이커 섬으로 옮겨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블랙웰 섬이란 이름 역시, 1921년에는 웰페어(복지) 섬, 그리고 다시 50년 뒤인 1973년에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이름을 따 루스벨트 섬이 된다. 1904년이였던 이 시점에서 보면 상전벽해인 셈. [15] 무전취식을 시도했더니 첫 번째로 들어간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허름한 옷 때문에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쫓겨나고, 두 번째로 들어간 허름한 레스토랑에서는 실컷 먹고 경찰 불러~라고 큰소리쳤더니 웨이터 두 명이 그냥 두들겨패서 내쫓아버리고, 경찰관이 보는 앞에서 길가는 젊은 여성에게 성희롱을 했는데 알고보니 창녀라서 주인공에게 도리어 달라붙고, 거리에서 마구 춤을 추며 큰소리로 생난리를 피웠는데 경찰관은 그를 시합에 이겨 승리에 도취된 대학생으로 착각하고(시끄럽긴 하지만 해는 안 끼친다고 사람들에게 안내한다), 벽돌을 던져 가게 유리창을 부쉈더니 달려온 경찰관이 엉뚱한 사람을 쫓아가고, 길가던 이의 우산을 훔치고 주인에게 "억울하면 경찰 불러! 저기 있네!" 하고 소리쳤더니 알고보니 그날 아침에 주운 우산이었던 등. [16] 국내 출간본에 따라선 가죽 가공업자로 언급되기도 한다. [17] 지미는 매부리코였지만 지미라고 하면서 온 사람은 들창코였기에 가로등에 얼굴이 비쳐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자 밥은 가짜라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18] 아가씨의 꽉 짜인 스케줄 속에서 이 5분이 유일하게 이 아들에게 할당된 시간이었다. [19] 주인공 지미 발렌타인은 외모가 꽤 수려하고(벤 프라이스는 그를 멋쟁이 지미라고 비아냥거리듯이 불렀다.) 상위층에 대한 정보나 인맥이 되어서 가석방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몇주만 살다가 나오겠지라고 했는데 몇 달이나 살아서 충격받았다고 투덜거렸다. 나중에 뒷세계 정보통으로 바텐더 일을 하는 친구에게 듣어보니 높으신 분들 가운데 몇 사람이 자네의 가석방을 죽기살기로 반대해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20] 처음에는 800달러, 1500달러, 2천 달러 정도 하는 금고 속 돈이 차례로 털리다가 나중에는 5천 달러가 털린다. 지금이야 몇백만 원 수준이지만 이 당시 9300 달러는 현재 우리 돈으로 9억대 정도 금액이라 상당한 거액이었다. [21] 구두 만드는 법은 교도소에서 징역을 사는 동안 배웠다. [22] 정확히는 누가 100만 달러를 준다면서 금고를 털라고 해도 안 하겠어. 난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녀도 날 믿고 따르면서 평범한 구둣가게 주인으로 알고 있어. 그런 그녀에게 상처를 줄 마음은 없어. 이제 난 금고털이범 지미 발렌타인이 아닌 구둣가게 주인 랠프 D. 스펜서야..." [23] 당시 은행강도들은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다이너마이트로 금고를 폭파하는 수법을 자주 썼다. [24] 남북전쟁 이후 몰락해 상경한 남부인에 대한 북부인의 따뜻한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 [25] 너무 먹을게 없어서 갓난아기가 먹던 이유식을 빼앗아 먹다가 잡혀 한달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26] 문제는 이 사람들이 강도라는 걸 전혀 모르고 밤길에 만나서 합류했다는 점. 사실 강도단 생김새가 평범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같아 보여서 헷깔렸던 것이다. 밤길가다가 배가 고픈데 왠 사람들이 밥먹으며 이야기하는 걸 보고 다짜고짜 말에서 내려서 밥달라고 하는 배짱에 강도단은 놀라서 보통이 아니라고 했는데 실상은 나중에 강도단 정체를 알고 속으론 식겁하지만 겉으로 문제없다고 허세를 부렸던 거였다! [27] 이 강도단은 제법 국경지대 미국 농장들을 많이 털어서 결국 미국 정부에게도 요주대상이 되어 샘 키니 대위가 이끄는 미군 기병대 추격을 받는다. 버드 킹은 강도단 두목답게 용맹하지만 고작 소규모 농장주들이나 주로 털던 자신들 수준으로 제대로 훈련된 정규군 기병대랑 싸우는 건 자살이라고 여겨 강도단을 인적드문 산악지대 가시투성이 기지에 숨게했다. 원작에서도 현명한 판단이거늘 정작 강도단은 허세로 맞선다고 버드 킹에게 불만을 품는 이들이 있었다고 나온다. [28] 처음에는 돼지는 캡틴 몬트레서러는 멋진 이름으로 둘러달라고 했으나 강도단에서 즉각 기각당하고 엄청나게 먹는 식탐을 보고 만장일치로 돼지라고 부른다... [29] 버드 킹도 자신에게 향하는 불만을 모를 리 없었다. 심복인 캑터스 테일러가 강도단에서 돼지에 대한 인기가 높아간다는 말에 기막혀하면서 지들이 뭐 잘났기에 정규군 기병대랑 맞붙겠다? 비겁하다고? 기병대에게 총맞아죽거나 잡혀 교수형당하거나 아님 평생 옥살이나 할 신세라는 것도 몰라? 라고 어이없어 한다. 그러면서 "돼지가 얼굴이 무섭고 농장 터는 짓은 잘했지. 하지만 그걸로 뭐 그놈이 자랑하는 온갖 허세가 정말인지 입증할 수 있어?" 라고 제대로 돼지가 떠벌리는 허세를 뚫어보았다. 하지만 그런 그도 돼지가 열차를 터는 계획을 준비한 걸 듣고 감탄하면서 지휘권을 넘겨줄 정도였다. [30] 사람들이 대체 무슨 말을 했기에 당신이 그리도 겁먹었냐고 질문했지만 그녀는 죽을때까지 밝히지 않았고, 다만 내가 자초한 일에 대한 것을 따진 말이었다고 말할 뿐이었다. [31] 마차에 태우자마자 마부 이름을 말하면서 전 속력으로 달려!!!!!! 라고 우렁차게 소리질렀다... [32] 이 시기의 우편마차는 현금운송도 담당했기에 강도단의 좋은 표적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이게 하도 심해져서 우편차량 조수석에 샷건 해병을 앉혔다. 사실, 미국만 이런 게 아니라서 찰스 디킨스가 쓴 두 도시 이야기를 봐도 초반부에 우편 마차를 노리던 강도 5명에 맞서 마부 홀로 총으로 3명을 쏴죽이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나머지에게 총맞아 죽고 화물은 고스란히 다 털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33] 이때 이 모든 일의 원흉 레나의 아버지가 보인 반응이 참으로 가관인게 자신이 그 11살이나 되는 어린 딸을 마을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채석장으로 일하러 보내놓고선 레나가 학대로 인해 죽으려고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를 자신의 아내의 탓으로 돌린다. [34] 당연히 왕자님과 기사는 우편마차를 턴 강도단이다. 레나의 사정을 안 혼도 빌은 강도단을 이끌고 채석장 숙소에 쳐들어 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레나를 데리고 온 것이다. 그게 레나의 눈에는 왕자님과 기사단으로 미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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