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르네상스 과학사학자 프랜시스 예이츠가 주장한 것으로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르네상스기의 마술이 근대 과학의 형성에 기여했다는 것이다.그녀의 주장은 과학과 상당히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진 마술은 과학사에 기여할 수 없었다고 하는 기존의 학설에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었다. 예이츠 테제가 등장한 후 마술과 과학의 관계에 대한 과학사가들의 연구가 활발해졌고 예이츠 테제를 둘러싸고 논의가 확대되었다.
2. 예이츠의 연구
프랜시스 예이츠는 1964년 <조르다노 브루노와 헤르메스 전통>이라는 논문에서 르네상스기의 신비적이고 마술적인 철학이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인간과 세계의 관계에 대한 관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하였다. 그녀의 주장은 1968년에 제출한 <르네상스 과학에서의 헤르메스 전통>에서 보다 명확해졌는데 헤르메스주의를 자연마술 단계와 로지크루지안 단계로 나눈 뒤 전자의 단계에서 마술의 영향으로 수학과 기계학 등이, 후자의 단계에서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공리주의적 지식관과 유사한 것이 나타나면서 마술은 과학으로 나간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예이츠는 르네상스 자연마술에서 로지크루지안으로, 그리고 여기서 근대과학으로 나아가는 도식을 제시한 것이다.예이츠가 말한 헤르메스주의란 수비학과 존재론적·방법론적 일원론, 신플라톤주의, 카발라, 표상적 태양 중심설 등을 일컫는 용어로, 마술적 그물망으로 이어진 세계를 인간이 적극적으로 조작함으로써 지식을 얻을 수 있다라는 중세와는 다른 새로운 태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3. 예이츠 테제에 대한 논쟁과 그 영향
예이츠의 주장은 예이츠 테제 혹은 예이츠 패러다임으로 불렸는데 이는 르네상스기 신플라톤주의를 연구한 여러 철학사학자들과 라탄시, 디버스를 비롯한 여러 과학사학자들에게 지지를 받게 되었다. 예이츠 테제를 지지하는 이들은 르네상스기 신비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과학혁명의 주역들, 코페르니쿠스와 요하네스 케플러, 윌리엄 하비, 아이작 뉴턴과 같은 이들에게서 나타난 마술적 요소를 밝혀내었고, 이를 통해 합리성의 상징인 과학과 비합리성의 상징인 마술이 적어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토머스 쿤과 파울 파이어아벤트의 과학철학과 함께 '확고하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지식으로서의 과학'이라는 기존의 과학관을 공격할 무기로 여겨졌다.한편 예이츠 테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과학사학자들 역시 등장하였는데 파울로 로시나 매리 헤세가 대표적이다. 파울로 로시는 과학혁명의 주역들에게서 마술적 요소가 나타나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것들은 마술사상과는 전혀 다른 이론적 틀에 흡수되었으며 과학혁명의 주역들이 마술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매리 헤세는 헤르메스주의가 근대과학의 대립항으로써 근대과학의 등장을 촉진시킨 간접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였다.
찰스 슈미트는 르네상스기의 마술적 사조들을 헤르메스주의라는 용어로 일반화시키는 예이츠 테제의 지지자들을 비판하였으며 신플라톤주의가 이 각종 마술사조들을 융화시켰다고 주장하였으며 여러 문헌학적·사상사적 연구를 통해 오컬트나 헤르메스주의를 비롯한 주요 용어들을 검토하고 재규정함으로써 르네상스기에 등장한 마술사상과 근대과학과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