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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6 13:58:25

여암(후연)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餘巖
(? ~ 385년 11월)

후연의 무장이자 반란자. 반란을 일으키기 이전에는 후연의 건절장군(建節將軍)으로 있었다. 진서에는 서암(徐巖)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자치통감에는 여암(餘巖)으로 등장한다.

2. 생애

385년 7월 무읍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여암은 북상하여 유주자사 평규를 패배시키고 유주를 약탈한 뒤, 요서군 영지(令支)에 웅거했다고 한다. 이후 여암은 385년 11월 용성에서 파견된 모용농에 의해 진압당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참수당했다고 한다.

3. 기타

4세기 말에 전연, 후연, 남연 시기에 여씨 인물들이 자주 기용되는데 이들을 부여계 유민으로 보기도 한다.[1] 여(餘)씨를 부여씨의 줄임으로 보는 것이다. 부여의 다른 표기 중 부서(夫徐)도 있는데, 현재 한반도에 남은 백제 국성 부여씨의 후손이 서씨인 이유이다. 이는 여암의 다른 표기가 서암인 것과 부합한다.
[1] 대표적으로 모용황 사위가 된 현왕 모용수에게 부여왕으로 임명된 여울, 여화, 여숭, 여초, 여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