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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역 | 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 | ||||
면적 | 80.328km² | ||||
인구 | 127,390명[1] | ||||
역사 | 1237년 도시 설립 | ||||
시간대 | UTC+01:00 (GMT)[서머타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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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 바르민스코마주르스키에의 항구도시로 엘블롱크강 유역에 있으며 하항을 끼고 있다. 구 동프로이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2. 역사
엘블롱크가 처음 언급된 곳은 잉글랜드 국왕 알프레드 대왕 통치 기간에 쓰인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다. 이 곳은 바이킹의 정착지로 당시 일핑(Ilfing)이라 불렸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엘블롱크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초 튜튼 기사단이 프루스족을 몰아내고 이 곳에 요새를 쌓으면서다. 엘블롱크는 엘블롱크가 하항에 있고 고틀란트섬에서 발트해의 비스뷔를 잇는 중세 초기 발트해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 지역의 무역상들은 호박길[3]를 따라 호박, 모피, 노예를 사고 팔았다. 1358년 한자 동맹에 가입한 엘블롱크는 이 지역의 곡물, 금속, 임산물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그러나 1410년 엘블롱크 시민들은 튜튼 기사단에 반란을 일으켰고 폴란드 왕국에 합류하려고 했다. 1454년 폴란드 왕국의 수도인 크라쿠프에서 엘블롱크를 폴란드에 편입시켜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였고, 폴란드의 국왕 카지미에시 4세 야기엘론치크는 이를 승낙하였다. 이는 13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으며, 말 그대로 13년 동안 튜튼 기사단과 폴란드 왕국 사이 전쟁이 일어났다. 결국 1466년 중재 하에 엘블롱크는 폴란드 왕국령이 되었다.그러나 16세기 마르틴 루터으로 부터 촉발된 종교 개혁의 바람이 엘블롱크에 불었고 상인이나 수공업자가 대부분이던 엘블롱크는 대부분 루터교회 신자가 되어,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였던 폴란드와 충돌했다. 이때문에 30년 전쟁 시기에 엘블롱크는 구교측에 기울었지만 중립이었던 폴란드 정부와 달리 신교측에 적극 가담하였으며,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주요 거점이기도 하였다. 30년 전쟁 이후 폴란드 영토로 반환되었지만. 7년 전쟁 때 러시아 제국군이 점령하였으며, 그 이후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때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이에 반발한 폴란드인의 몇차례 봉기가 있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진압당했고 폴란드인은 프랑스, 영국,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이후 독일어인 엘빙(Elbing)으로 불리면서 산업도시로서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독일 최초 프로펠러 선박인 보루시아호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3개의 강제 수용소가 있었으며 특히 쉬투트호프 강제 수용소에서는 63,000명에서 65,000명 사이의 폴란드인과 유대인이 가혹한 노동 환경 속에 사망하였다. 1945년 2월 소련군이 진격하면서 시가지의 65%가 파괴되었고, 전후 이 지역의 독일인 대부분은 추방되었다. 그 이후 소련에 합병된 폴란드 동부 지역에서 온 난민들이 이 지역에 정착하여 재건이 시작되나 하였으나 재정적인 문제로 복구를 하지 못했다. 오히려 바르샤바나 그단스크를 재건 한다고 이 지역의 자재를 가져갔다. 결국 구시가지 복원 프로젝트는 1989년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약 75%가 재건되었다.
3. 자매도시
4. 여담
- 폴란드에서 가장 큰 맥주 양조장인 엘블롱크 양조장이 있으며, 독일 제국의 마지막 황제 빌헬름 2세의 궁정에 필스너 맥주를 독점적으로 공급하였다. 현재 지비에츠 그룹(Żywiec Brewery)소유이다. 다만 지비에츠 그룹 지분의 61%는 네덜란드 맥주 회사 하이네켄이 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