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비하라 타케시 えびはら武司 |Takeshi Ebihar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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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 에비하라 타케시 (えびはら[ruby(武司, ruby=たけし)], Takeshi Ebihara) |
출생 | 1954년 6월 5일 ([age(1954-06-05)]세) |
일본 교토부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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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만화가 |
활동 기간 | 1980년 3월 ~ 현재 |
데뷔 | 마치코 선생님의 팬티 (マチコ先生のパンティー) |
대표작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まいっちんぐマチコ先生) |
오너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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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만화가. 대표작은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후지코 스튜디오에 입사하여 후지코 후지오 작품의 어시스턴트로 활약했으며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연재하면서 본격적으로 데뷔하였다.
2. 생애
1954년 6월 5일 교토에서 태어나 8살 때 부모님을 따라 치바현으로 이사를 갔으며 특유의 간사이벤 억양으로 학우들한테 인기가 많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치바현으로 이사를 간 후에도 부모님의 일 때문에 현 내를 계속 이동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1973년 8월, 젊은 나이에 후지코 스튜디오에 갓 입사하여 후지코 후지오 두 작가의 조수로 활동하면서 만화와 디자인에 대해 공부했다. 이 시절의 일화로 당시 후지코 스튜디오에는 10명 이상의 어시스턴트가 활동 중이었지만 당시 에비하라 타케시는 후지코 스튜디오의 열렬한 팬이었고 팬 출신 조수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후지코의 첫 번째 제자'라고 불렸다.
이 때 도라에몽의 등장인물인 만퉁퉁의 본명과 생일이 각각 "고다 타케시"[1], 6월 15일[2]로 정해졌는데 이는 조수인 에비하라에게서 따온 것이다. 후지코 F. 후지오의 회고에 의하면 골목대장 캐릭터인 퉁퉁이의 본명을 지으면 비슷한 이름을 가진 독자 아이들이 학교에서 놀림을 당할까 걱정하여 본명을 정하지 않았지만 퉁퉁이의 본명을 알려달라는 팬레터가 많이 오는 바람에 결국 마음을 추스리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이름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면 사랑받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평소 많이 아꼈던 제자 에비하라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1975년, 후지코 스튜디오에서 퇴사 후 한 광고 회사에 취직하여 근무하다가 1980년 3월, 학습연구사의 소년 챌린지에서 "마치코 선생님의 팬티"를 연재하면서 첫 데뷔하였고 같은 해 5월,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첫 연재하면서 호평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쌓았다. 당시 일본의 저연령층 사이에서 "마잇칭구!(まいっちんぐ!)"라는 이 작품의 유행어가 널리 알려질 정도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애니메이션, 실사 영화 및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매체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연재 시작 후 치바현으로 돌아온 에비하라는 그 이후로 쭉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도쿄에 위치한 일본공학원 전문학교의 카마타 캠퍼스의 강사로 취임하며 만화가이자 디자이너로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3. 작품 목록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8권)
- 신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8권)[3]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컬러 박스 시리즈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핑크 박스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블랙 박스
-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 화이트 박스
- 후지코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일기 마잇칭구 시리즈
- 만화의 길 편
- 명작 비화 편
- 도라에몽과의 추억 편
4. 기타
후지코 스튜디오 퇴사 후 데뷔할 때가 되었을 때 학습연구사를 선택했다. 이유는 "경쟁률이 낮아 보여서". 학습연구사의 편집사를 첫 방문했을 때 우연히 면접장에 편집장님만 계셔서, 그 자리에서 이미 데뷔가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그의 대표작인 마잇칭구 마치코 선생님을 그리게 된 이유는 후지오 스튜디오에 입사 후 조수로서 활동하면서 두 선배님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해, 어쩔 수 없이 선배님들의 만화와 비슷한 스타일의 이야기만 그려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 두 스승님들이 다소 꺼렸던 엄청난 성적 매력이 넘치는 만화를 그려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작품이 대히트를 치면서 스승들도 그를 인정하고 축하해줬다고.. 원작 단행본 4권이 100만 부를 돌파했을 때, 스승인 후지모토 히로시와 아비코 모토오를 게이오 플라자 호텔로 초대하여 만찬을 가지며 데뷔를 축하해줬다고 한다.
본작이 히트를 치면서 에비하라의 회고로는 스승인 후지코 F. 후지오에게 "후지모토 선생님 작품은 에로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였고 이에 후지모토는 "제자에게 지지 않겠다"며 에스퍼 마미를 탄생시켰다.[4]
후지코 스튜디오에서 조수로 활동할 무렵, 도라에몽의 신이슬의 목욕 장면을 그릴 때 당시 에비하라는 몸만 그렸고, 얼굴은 후지모토가 그렸다고 한다. 일부분의 에피소드만 에비하라 혼자서 전담하고 나머지는 후지모토가 모두 그렸다.
교토에서 나고 자라 치바현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특유의 간사이벤 억양으로 학우들한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이 마치코의 고향은 교토부이며 어린 시절에 간사이벤을 구사하는 것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