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에발트 체불라 (Ewald Cebula) |
출생 | 1917년 3월 22일 |
사망 | 2004년 2월 1일 (향년 86세) |
국적 |
[[폴란드|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독일 제국 시비엥토흐워비체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64cm | 62kg |
소속팀 |
실롱스크 시비엥토흐워비체 (?~1939) 실롱스크 시비엥토흐워비체 (1946~1947) 루흐 호주프 (1948~1952) |
국가대표 | 6경기 0골 (1939~1952) |
감독 |
루흐 호주프 (1952~1954) 루흐 호주프 (1959) 루흐 호주프 (1960) 구르니크 자브제 (1962~1963) 구르니크 자브제 (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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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전 축구 감독.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체불라는 1926년부터 실롱스크 시비엥토흐워비체(Śląsk Świętochłowice) 유스팀에서 축구를 배웠지만 정확한 1군팀 데뷔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이 시기 체불라의 팀은 특별한 우승 경력도 없으며 그 역시 전쟁으로 커리어가 중단되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시비엥토흐워비체에서 2년을 더 뛰다 1947년 루흐 호주프(Ruch Chorzów)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체불라는 호주프에서 1951년과 1952년, 2번의 엑스트라클라사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폴란드 축구 협회는 1951년은 호주프가 더블을 했음에도 리그 우승이 아니라 폴란드 컵 우승만으로 타이틀을 수여했다.
2.1.2. 국가대표
체불라는 대표팀에서의 출전 경기 수는 적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로 대표팀 경력을 모두 이어간 그다지 흔치 않은 경력의 소유자이다.체불라는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 참가했지만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
그러다 그는 1939년 6월 4일 스위스 대표팀과의 바르샤바 홈경기에서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경기는 1대1로 비겼다. 그리고 체불라는 폴란드의 전쟁 마지막 대표팀 경기에 참가한 11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1948년 4월의 체코슬로바키아전(3대1 승), 1952년 5월의 불가리아전(0대1 패), 6월의 헝가리전(1대5 패)에 출전했고 1952년 올림픽 프랑스전이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이다.
2.2. 감독
1952년에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면서 체불라는 루흐 호주프의 감독으로 취임했고 1953년에도 호주프를 엑스트라클라사에서 우승시켰다. 같은 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리그 연속 우승을 차지한 드문 경우이다.그는 1954년 이후로 당분간 감독직에서는 쉬고 폴란드 대표팀의 코치로 일했다. 1959년에 다시 호주프에 복귀해서 1960년, 팀을 엑스트라클라사 우승으로 이끌었다.
1962년에 구르니크 자브제의 감독을 잠시 맡아 1962-63 시즌에 우승을 이끈 것이 그의 마지막 감독 커리어이다. 1963년에 구르니크 자브제는 체불라를 포함해 3인 공동 감독 체제가 되었지만 이 체제가 오래가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