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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20:25:31

에두아르도 다실바

에두아르두 다 실바에서 넘어옴
크로아티아 前 축구선수
파일:eduardo_CRO.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에두아르도 다실바
Eduardo da Silva
본명 에두아르도 알베스 다실바[1]
Eduardo Alves da Silva
출생 1983년 2월 25일 ([age(1983-02-25)]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국적
[[크로아티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포지션 스트라이커, 윙어
주발 왼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GNK 디나모 자그레브 (2001~2007)
→ 크로아티아 세스베트 (2001 / 임대)
→ 인테르 자프레시치 (2003 / 임대)
아스날 FC (2007~2010)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0~2014)
CR 플라멩구 (2014~2015)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5~2016)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17~2018)
레기아 바르샤바 (2018)
국가대표 64경기 29골 ( 크로아티아 / 2004~201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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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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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 태생의 크로아티아 축구 선수로, 일명 두두(Dudu)라고 한다.[2] 브라질 선수답게 괜찮은 테크닉을 보유했으며, 유럽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며 몸싸움에 잘 단련되어 있다. 여기에 골 결정력이 높으며, 매우 빠른 스피드를 가졌다. 게다가 투쟁심이 강하고 직선적이며, 팀 플레이를 중요시하는 장점이 있다.

2. 클럽 경력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생이며, 방구 AC에서 유스 시절을 지냈다. 하지만 브라질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해 1999년 크로아티아로 건너와 디나모 자그레브 유스에 소속된 이래로 2001년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출전 기회를 잡기 위해 2002/03 시즌 2부 리그에 소속된 인테르 자프레시치에 1시즌동안 임대되었다. 임대 기간 동안 15경기에서 10골을 넣는 좋은 활약을 펼쳐 시즌 종료 이후 디나모 자그레브로 복귀한 뒤 니코 크란차르 등과 함께 팀에서 핵심적인 활약을 펼쳤으며, 2003/04 시즌 팀의 컵대회 우승에 일조했다. 이후 2005/06 시즌 팀의 리그 우승에 기여한 뒤 2006/07 시즌에 32경기 34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리그 2연패에 큰 공헌을 했으며,[3] 본인도 두 시즌 연속으로 '리그 최우수 선수'에 선정되었다.[4] 2006/07 시즌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당시에는 2차전에서 득점에 성공했으나 팀은 1, 2차전 합계 1:5를 기록하며 UEFA 컵으로 옮겨가게 되었으며,[5] AJ 옥세르와의 UEFA 컵 1라운드에서는 총 2골을 넣었으나 팀이 1, 2차전 합계 2:5를 기록해 탈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스날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인 덕분인지 2007/08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 티에리 앙리의 대체자로 선택되어 750만 파운드의 이적료에 아스날로 이적했으며,[6] 일명 '저주받은 등번호'로 불리는 9번을 달게 되었다.[7] 입단 이후 한동안 부상에 시달리다 8월 블랙번 로버스와의 경기에서 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얼마 뒤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데뷔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했다. 이후 세비야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이적 이후 2번째 득점에 성공해 팀의 3:0 승리를 견인했으며, 블랙번 로버스와의 풋볼 리그 컵 8강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며 데뷔골을 터뜨리지 못했는데, 박싱 데이 기간에 있었던 에버튼 FC와의 경기에서 데뷔골을 포함해 2골을 넣으며 팀의 4:1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해 팀의 1위 수성에 일조했으며, 번리 FC와의 FA컵 경기에서 골을 넣으며 로빈 반 페르시 엠마누엘 아데바요르와의 주전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파일:external/balls.co.uk/1-Hacker.jpg
파일:external/metrouk2.files.wordpress.com/eduardoinjuredai_450x300.jpg
하지만 2008년 2월 23일 버밍엄 시티와의 경기에서 경기 시작 3분만에 마틴 테일러의 태클이 문제였다. 테일러의 태클은 발목도 아니고, 디딤발인 왼쪽 다리 정강이 부위에 드롭킥을 하듯이 들어갔고, 이 충격으로 에두아르도의 왼쪽 발목이 90도로 돌아가서 탈골이 되었고, 이걸로도 충격흡수가 완전히 안 되어서 종아리 뼈가 부러져서 피부를 뚫고 나오는 개방성 골절 사고가 발생했다. 그 직후 테일러는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8] 당시 사고 상황. 부상당한 직후 에두아르도는 그라운드에 쓰러진 채 발목을 붙잡고 신음했으며, 곧바로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들 것에 실려 나가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다.[9] 경기 직후 아스날의 감독인 아르센 벵거는 테일러에게 "다시는 축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까지 말했으며, 테일러는 에두아르도의 병문안을 가며 자신의 태클은 결코 고의적인 것이 아니었다며 사과했다. 비록 수술 이후 버밍엄에서 런던의 병원으로 옮겨진 뒤 나흘 뒤에 퇴원했지만 시즌 아웃으로 리그를 마쳤으며, 아스날은 이후 최고조의 상승세에서 추락하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FC에게 밀리며 3위로 시즌을 마쳤다.[10] 당시 어린 선수들이 많았던 아스날은 기세로 성적을 올리고 있었는데, 경기장에서 개방형 골절상을 입은 동료의 모습을 본 이후에 거친 태클로 달려드는 상대에게 멘붕해버렸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11]

2007/08 시즌: 31경기(선발 22경기) 12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7 13 4 4 3
챔피언스 리그 5 3 2 2 0
FA컵 3 2 1 1 1
EFL컵 5 3 2 4 1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1 1
합계 31 22 9 12 6

이후 4월 1일부터 재활 훈련을 시작했지만, 부상 상태가 심각해 2008/09 시즌 시작 이후에도 한동안 복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포츠머스 FC와의 리저브 경기에 출전해 복귀하는가 했지만 전반전 이후 햄스트링 부상을 입어 1군 복귀가 무산되었으며, 2009년 2월 17일 카디프 시티와의 FA컵 32강전에서 1년여만에 1군으로 복귀한 뒤 두 골을 넣어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12] 이후 번리와의 FA컵 16강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며 득점을 기록했지만, 햄스트링 부상이 재발하는 등 잔부상에 시달려 결국 리그에서는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한 채 시즌을 마쳤다.

2008/09 시즌: 2경기(선발 0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챔피언스 리그 2 0 2 0 0
합계 2 0 2 0 0

2009/10 시즌에는 에버튼과의 리그 개막전에서 골을 기록해 팀의 6:1 승리에 일조했지만, 셀틱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셀틱의 골키퍼인 아르투르 보루츠의 손에 걸려 넘어진 척 하며 할리우드 액션을 취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는 의혹을 받아 UEFA로부터 유럽 대항전 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아스날 측에서는 셀틱과 스코틀랜드 축협에서 에두아르도를 상대로 마녀사냥을 벌이고 있다며 UEFA에 항소했고, UEFA가 이를 받아들여 징계가 무효 처리되었다. 이후 징계로 나오지 못할 뻔 했던 스탕다르 리에주와의 조별 라운드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3:2 승리에 큰 공헌을 했으며, 그 해 11월 구단과 장기 계약에 합의했다. 이후 리그에서 헐 시티와 포츠머스를 상대로 득점에 성공했으며,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과의 FA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2009/10 시즌: 31경기(선발 16경기) 4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24 13 11 2 4
챔피언스 리그 4 1 3 1 1
FA컵 2 1 1 1 0
EFL컵 1 1 0 0 0
합계 31 16 15 4 5

하지만 골절로 1년간 뛰지 못한 이후 지속적으로 잦은 부상을 입어 이전의 경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자 주전 경쟁을 통해서 재기하기 위해 2010/11 시즌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기로 결정했으며, 아스톤 빌라, 발렌시아 C.F., 올랭피크 리옹과의 경쟁 끝에 7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불하기로 합의한 우크라이나 프리미어 리그 샤흐타르 도네츠크로 이적하였다. 이적 이후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켰으며, 팀의 리그와 컵대회 더블에 기여하였다. 또한 공교롭게도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라운드에서 전 소속팀인 아스날과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아스날과의 원정 경기에서 득점을 성공시킨 데 이어 홈 경기에서는 결승골을 넣어 팀의 2:1 승리에 공헌했다.[13] 이후 파르티잔 베오그라드와의 경기에서도 득점을 기록하며 팀의 3:0 승리에 일조해 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한 뒤, AS 로마와의 16강 2차전에서 골을 넣어 팀의 3:0 승리에 일조하며 1983/84 시즌 이후 25년여만에 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2014년 7월 17일 고향 브라질의 플라멩구로 이적하였다. 2015년 7월 12일 샤흐타르 도네츠크 이적이 확정되었다.

3. 국가대표

크로아티아에서 6년 동안 생활한 뒤 2002년 크로아티아 시민권을 취득해 귀화에 성공했으며, 2004년 청소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같은 해 11월에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되어 아일랜드와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6년 칼스버그 컵 대회 당시 홍콩과의 경기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14]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당시에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즐라트코 크란차르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팀 명단에서 제외되었으며[15], 월드컵 이후 국가대표팀의 수장이 된 슬라벤 빌리치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했다.

이후 이탈리아와의 친선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어 팀의 2:0 승리를 견인했으며, 유로 2008 예선 당시에는 선두 경쟁을 벌이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득점하며 팀의 2:0 승리에 공헌한 뒤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하는 등 13경기에서 10골을 넣어 북아일랜드의 데이비드 힐리에 이은 득점 랭킹 2위에 올랐다. 하지만 본선을 앞두고 왼쪽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해 본선에는 나오지 못했으며, 2010 FIFA 월드컵 당시에는 팀이 본선 진출에 실패해 메이저 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끝에 에두아르도는 UEFA 유로 2012의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최종 명단에 발탁되어 3경기에 교체 출전하였고, 2년 후 2014 FIFA 월드컵에도 참가하게 되었다. 대회 이후 크로아티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문전 앞에서 매우 침착하고 차분한 선수였다. 귀신같을 정도로 차분하게 슛 동작을 가져가는 데다가, 신체 밸런스도 좋아서 슛 자세가 엉클어지지도 않았다. 신장의 한계로 제공권을 따낼 수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무결점의 스트라이커였다고 할 수 있다. 아스날 시절엔 아데바요르 벤트너같은 빅맨들과 투톱을 이뤄서 시너지가 상당했었다. 기술이 뛰어나고 발도 빠른 편이라 윙어도 소화했고, 날카로운 패싱 능력도 있어서 세컨 스트라이커로도 뛸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냥 축구 자체를 잘 하던 선수였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유명했던 버밍엄 시티전 장기 부상 이후로 원래부터 부상을 잘 당했던 신체가 급속도로 유리몸화 되면서 빅리그에서 뛸 신체 지속성을 잃어버린 게 그의 커리어에서 오점으로 남았다. 그 외에는 모든 면에서 클래스가 무척 높은 선수였다.


[1] 브라질 출신인 점을 감안해 포어 표기법을 적용할 경우 '에두아르두 아우베스 다시우바'가 된다. [2] 이러한 경력으로 인해 두두를 크로아티아와 브라질리언의 합성어인 크라질리언(Crazilian)으로 부르는 팬들도 있다. [3] 참고로 34골은 크로아티아 리그 창설 이래 한 시즌 최다골 기록이며, 이전까지는 고란 블라오비치가 1993/94 시즌에 기록한 29골이었다. [4] 참고로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라이벌 하이두크 스플리트와 만났는데, 에두아르도는 해트트릭을 기록해 '영원한 더비'에서 유일하게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5] 참고로 당시 에두아르도가 기록한 골은 2006년 개장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가진 유럽 대항전에서 나온 첫 골이다. [6] 당시 디나모 자그레브 구단주가 에두아르도를 1600만 유로에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앙리에 비유한 것이 오역되어 한 때 에두아르도의 이적료가 1600만 유로로 알려지기도 했다. [7] 니콜라 아넬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뒤 등번호 9번을 달았던 다보르 수케르, 프랜시스 제퍼스,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 줄리우 밥티스타 모두 아스날에서 성공을 맛보지 못 했다. [8] 굉장히 끔찍한 상황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종아리 뼈가 부러져서 피부와 양말을 뚫고 튀어나온 장면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해 방송국에서 리플레이조차 보여주지 못할 정도였다. 혐짤주의. [9] 당시 아스날 선수들 중 질베르투 실바만이 영어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어서 병원까지 함께 동행했다. [10] 2007-08 시즌이 무패우승 이후 아스날이 리그 우승에 가장 근접했었던 시즌이었다. 승점 83점은 무패우승 이후 아직까지도 최다 승점으로 남아있으며 1위와의 승점차도 가장 적었던 시즌이다. [11] 당시 팀의 주장이던 윌리엄 갈라스는 아스날에 입단한 지 2년 밖에 되지 않았고, 이 때 산전수전 다겪은 베테랑이었던 그조차도 충격을 받아 주저앉을 정도였으니 다른 동료들의 멘탈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12] 다만 골절된 왼쪽 발목이 완치된 것이 아니어서 복귀 이후에 왼쪽 발목을 교정하기 위한 간단한 수술을 받기도 했다. [13] 아스날 원정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자신이 부상당했을 당시 진심을 다해 회복을 기원해준 구단과 팬들을 생각해 별다른 골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으며, 팬들 또한 아스날에서 에두아르도가 뛸 당시의 유니폼을 관중석에 걸어두고 에두아르도가 교체될 때 기립 박수를 보내며 이에 화답했다. 또한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에두아르도가 득점했을때 관중들은 아스날 선수가 득점한것처럼 환호했고 구장 아나운서도 아스날 시절 에두아르도가 득점했을때의 멘트를 했다. [14] 이 당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도 대회에 참여해 크로아티아와 경기를 가졌으며, 에두아르도도 출전했으나 팀은 대한민국에 0:2로 패했다. [15] 정작 에드아르도보다 어린 니코 크란차르 아버지 백, 루카 모드리치는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