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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57년 ~ 기원전 179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반랑 | 남월 | ||||
위치 | 베트남 | ||||
수도 | 코 로아 | ||||
정치 체제 | 군주제 | ||||
국가 원수 | 왕 | ||||
주요 국왕 | 안즈엉브엉 | ||||
민족 | 베트남인 | ||||
주요 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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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베트남 역사상 두 번째 왕조다. 안즈엉브엉이 첫번째 왕조인 반랑(문랑)을 멸망시키고 건국했다. 툭 왕조, 구낙, 구락국이라고도 불린다. 어우락이라는 국호는 당시 베트남의 주류 민족인 어우 족과 락 족의 연합으로 탄생했다고 하여 칭해진 것이었다.굳이 한국사와 비교해보자면 후대인 남월은 위만조선이고, 여기는 기자조선[1]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문헌상 기자조선과 달리 여기는 단명국가였다. 창업자인 안즈엉 브엉 본인의 대에서 멸망했기에 역대 토후가 안 즈엉 브엉 단 한 명밖에 없다.
베트남과 중국의 기나긴 악연(?)이 이때부터 시작되는데, 어우락은 진나라 군벌 장수였다 진나라가 혼란해진 틈을 타 지금의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일대에 기원전 204년 남월이란 독자적인 왕조를 세운 조타군의 침공으로 기원전 179년 멸망했다. 참고로 베트남의 유명한 관광지이자 당시 어우락의 수도 고라에 세워진 꼬로아 성(Thành Cổ Loa, 古螺城, 고라성)은 당시 중국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
어우락의 멸망 과정이 담긴 설화가 전해져오는데, 묘하게도 《 삼국사기》에 기록된 고구려의 호동왕자 설화와 유사하다. 안양왕의 딸인 미쩌우(Mỵ Châu, 媚珠, 미주)가 조타의 아들인 중시(仲始, Trọng Thủy, 쫑투이)와 사랑에 빠졌고, 중시는 미쩌우에게 어우락 왕조의 주력 무기인 쇠뇌를 부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미쩌우가 안양왕이 황금거북에게서 받은 쇠뇌를 부숴버린 것이 멸망의 이유라고 한다. 집안과 조국을 배신한 미쩌우는 격노한 부왕에게 목이 달아났다.
다만 이런 설화가 흔히 그렇듯 실제 역사와는 차이 혹은 과장이 있어보이고, 많은 학자들은 청동기 문화인 어우락 왕조가 철제 무기를 가진 조타군에게 대적하기 어려워 무너졌다고 보고 있다. 초창기 철기는 최고 스텟의 청동기에 비해 큰 메리트가 없었다는 주장도 존재하나 남월(남비엣)이 쓴 철제 무기는 초창기 철제 무기가 아닌 전한에서 배워온 철제 무기였다.[2]
2. 역대 군주
대수 | 왕호 | 휘 | 재위기간 |
1 | 안양왕(安陽王) | 촉반(蜀泮) | 기원전 257년 ~ 기원전 208년 |
[1]
물론 전근대의 한국사 인식으로 따졌을 경우고, 오늘날
고고학적으로는 기자조선의 실체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2]
세계 각국사 시리즈 《동남아시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