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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10:33:16

어니 래드

1. 개요2.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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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어니 래드 (Ernie Ladd)
생년월일 1938년 11월 28일
사망 2007년 3월 10일
신장 206cm
체중 136kg
출생지 미국 루이지애나주, 레이빌 (Rayville, Louisiana)
별명 빅 캣 (The Big Cat)
피니쉬 무브 빅붓 (Big boot)
커리어 기타 명예자 (2005)
NWA 센트럴 스테이트 태그 팀 챔피언 1회
NWA 플로리다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서던 헤비웨이트 챔피언 (플로리다 버전) 1회
NWA 조지아 태그 팀 챔피언 1회
NWA 아메리카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WWA 국제 텔레비전 태그 팀 챔피언 1회
W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명예의 전당 (2013년 클래스)
NWF 황동너클스 챔피언 1회
NWF 헤비급 챔피언 1회
NWF 북미 헤비급 챔피언 6회
NWA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브라스 너클스 챔피언 (텍사스 버전) 1회
NWA 텍사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미드 사우스 루이지애나 헤비급 챔피언 2회
중남미 헤비급 챔피언 1회
중남부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아칸소 헤비급 챔피언 1회
NWA 북미 헤비급 챔피언 (트라이 스테이트 버전) 5회
NWA 미국 태그팀 챔피언 (Tri-State 버전) 1회
2003년, "PWI Years" 500명 최고 싱글 레슬러 205위 선정.
2018학년도 남부 캘리포니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2020년 헌액
WCW 명예의 전당 (1994년 클래스)
W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C 북미 헤비급 챔피언 1회
WWF 명예의 전당 (1995년 클래스)
레슬링 옵서버 뉴스레터 명예의 전당 (1996년 클래스)

1. 개요

WWE에서 1970년대에 활동했던 프로레슬러. 본명은 어니스트 래드(Ernest Ladd). 루이지애나주 레이빌출신.

빅 캣(Big cat)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2. 커리어

"빅 캣" 어니 래드는 여러 분야에서 공헌을 세워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는 대학 시절과 프로 미식축구로서 정상에서 활약했고, 정계에 입문해 공화당에서 약 35년 가까이 정치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는 1960 ~ 1970년대의 정상급 프로레슬러이기도 하다. 특히 북동부 지역의 오랜 프로레슬링 매니아라면 1970년대에 걸쳐 WWE에서 그가 가장 크고 미움을 많이 받는 악역으로 활약했던 모습을 보았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는 1950년말 루이지애나의 그램블링 스테이트 유니버시티의 스타 라인맨이었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뒤엔 AFL (American Football League)에 소속된 샌디에고 차저스에 스카웃되었다. 그는 차저스의 1963년 AFL 우승 당시 멤버였으며, 1962년부터 1965년까지 4년 연속으로 AFL 올스타戰에 나가기도 했다. 그는 차저스뿐만 아니라 휴스턴 오일러스 & 캔사스 시티 치프스 등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다. 6피트 9인치 300파운드의 거한인 어니 래드는 그가 활약하던 시절에 가장 큰 선수 가운데 하나였는데, 그는 장신임에도 보기 드물게 민첩한 몸놀림으로 "빅 캣"이란 별명을 얻었다. 1960년대 초반 프로레슬링계에선 그런 어니 래드에 유혹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가 차저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을 때도 프로레슬링계에서 러브콜이 있었다. 실제로 몇몇 샌디에고 지역의 프로레슬러들은 "빅 캣"에게 개인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링에서 승부를 벌이기도 했다. 끊임없이 프로레슬링계 진출 제의를 받던 그는 미식축구 오프 시즌에 한해 파트타임으로 LA 지역의 프로모션에서 프로레슬러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프로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평판 덕분에 어니 래드는 프로레슬링계에서도 가장 흥행카드로 부상할 수 있었고, 프로모터들은 그를 모시는데 혈안이 되기도 했다. 그는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명성에만 그저 의존했던 것이 아니라, 팬들로부터 가장 큰 증오를 받는 악한으로 종종 거만한 인터뷰로 팬들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고, 악명높은 테이핑한 엄지 손가락을 사용하는 것으로 팬들의 주의를 끌었다. 어니 래드의 악역으로서의 지위가 특히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프로모터들이 "인종 문제"로 인해 폭동이 일어날까 저어하여 흑인 캐릭터를 기용하는 일을 두려워하던 시기에 그가 프로레슬링계 첫 번째 아프리칸 어메리칸 (African-American = 아프리카 출신 미국人) 악당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WWE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1968년의 일이었다. 그는 메이저 프로모션이었던 WWE에서 이후 12년간 활약했다. 그랜드 위저드의 매니지먼트를 받았던 그는 비록 타이틀을 따내진 못했지만 WWE 챔피언 브루노 삼마르티노, 페드로 모랄레스, 밥 백런드 등에 꾸준히 도전할 만한 위치에서 그들에게 도전장을 던지며 왕좌를 위협하곤 했다. 그는 앞서 언급한 이들 외에도 앙드레 더 자이언트, 헤이스택스 칼혼, 고릴라 몬순 등 수많은 전설과 대립 관계를 맺은 바 있다.

프로레슬링계를 떠난 이후 어니 래드는 오랜 공화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특히 그는 1960년대 이래로 부쉬家와 친분을 맺어왔고, 조지 부시 및 조지 W. 부쉬의 대통령 당선을 돕기도 했다. 그는 조지 W. 부쉬의 집권 초기 대통령 취임 위원회 특별 대의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그 외에 그는 기독교 성직자로 감옥을 넘나들며 죄수들의 교화에 힘쓰기도 했다. 다양한 활약을 펼쳤던 그이지만, 사각의 링 또한 그의 마음 속에 아주 특별한 곳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는 1995년에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니 래드는 명예의 전당 2004에서 정키야드 독을 헌액하는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으며, San Diego Hall of Champions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이후 어니 래드는 암에 걸려 2007년 3월 10일, 68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