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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19:36:59

얀 콜레르

체코의 前 축구선수
파일:external/www.solofutbol.cl/koller,%20jan%202004.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얀 콜레르
Jan Koller
출생 1973년 3월 30일 ([age(1973-03-30)]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프라하
국적
[[체코|
파일:체코 국기.svg
체코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202cm, 100kg
직업 축구선수 ( 공격수, 골키퍼[1] / 은퇴)
소속 선수 TJ 스메타노바로타 (1978~1989 / 유스)
ZVVZ 밀레프스코 (1989~1994 / 유스)
AC 스파르타 프라하 (1994~1996)
KSC 로케런 (1996~1999)
RSC 안데를레흐트 (1999~2001)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1~2006)
AS 모나코 (2006~2008)
1.FC 뉘른베르크 (2008)
PFC 크릴리야 소베토프 사마라 (2008~2009)
AS 칸 (2009~2011)
국가대표 91경기 55골[2] ( 체코 / 1999~2009)

1. 개요2. 초창기 커리어
2.1. 안데를레흐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2.2. AS 모나코, 뉘른베르크 시절2.3. 마지막 커리어
3. 국가대표4. 여담5. 수상 기록
5.1. 클럽5.2.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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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 출신의 前 축구선수. 포지션은 스트라이커.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 득점자로 별명은 '체코의 타워'. 2m가 넘는 장신 스트라이커로 압도적인 키와 강인한 피지컬을 갖췄고 덩치 역시 매우 큰 편으로, 이 모든 신체 조건이 합쳐져서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강력한 헤더 능력을 갖췄으며, 거기에 더해 포스트 플레이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키에 비해서 발밑도 괜찮은 편이었다.

2. 초창기 커리어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에서 태어난 콜레르는 축구의 첫 시작을 골키퍼로 출발했다. 그러나 공격수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비슷한 시기에 자국리그의 명문 구단인 AC 스파르타 프라하로 이적하였고, 1995년 베네소프와의 경기에서 1군 무대에 데뷔했다. 1996년 벨기에 프로리그의 로케런으로 이적하여 3년간 뛰었고, 1998-99 벨기에 프로리그 최다득점을 기록했다.

2.1. 안데를레흐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로케런에서의 활약으로 1999년 여름 벨기에 명문 구단인 RSC 안데를레흐트로 이적하였다. 캐나다 출신의 토마스 라진스키와 호흡을 맞추면서 맹활약을 보여주며 팀을 2년 연속 리그 우승에 견인하였고 2000년 벨기에 골든 슈를 수상하였다. 2000-01 시즌 종료 이후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구애를 받게 되어 안데를레흐트를 떠난다.

2001년 여름 도르트문트로 입성한 이후에도 콜레르는 팀의 중심 공격수로 자리매김하였고 리그 11골을 기록한다. 2001-02 시즌 도르트문트가 분데스리가에서 우승하면서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한 콜레르는 UEFA컵 결승 무대를 밟았으나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게 2-3으로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문다.

이후 2006년까지 도르트문트에 뛰면서 2002-03 시즌 46경기 21골로 자신의 커리어 최고의 활약을 보였고 매시즌 리그 10골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지만 마지막 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9경기 4골의 저조한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2.2. AS 모나코, 뉘른베르크 시절

2006년 여름 리그앙 AS 모나코로 이적하여 2시즌 동안 활약했지만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였고, 득점력이 감소하면서 모나코에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게 되자 2008년 다시 분데스리가로 복귀하여 뉘른베르크로 이적한다. 하지만 역시나 저조한 득점력으로 14경기 2골의 성적으로 최악의 모습을 보여 뉘른베르크의 강등을 막지 못한 뒤 시즌 종료 이후 방출되었다.

2.3. 마지막 커리어

2008년 여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의 사마라로 이적하여[3] 한시즌간 활약한 이후 2009년 프랑스 3부리그의 AS 칸에서 말년을 보내고 2011년 여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1999년 2월 9일 브뤼셀에서 열린 벨기에와의 친선 경기에서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고 A매치 첫 골을 기록했다. UEFA 유로 2000 지역예선에서 6경기 6골을 넣어 체코를 본선무대로 진출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이후 UEFA 유로 2004에서 콜레르는 체코가 4강까지 올라가는 동안 조별리그 네덜란드전과 8강 덴마크전에서 골을 넣어 2골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2005년 6월 8일 마케도니아와의 경기에서 4골을 넣어 A매치 통산 39골로 체코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 선수로 올라섰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플레이오프 끝에 본선에 진출하였고 조별리그 1차전 미국전에서 그리게라의 크로스를 받아 선제 헤딩골을 기록했지만 얼마 뒤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남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체코도 콜레르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며[4]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되었다.[5]

UEFA 유로 2008에도 발탁된 콜레르는 대회 시작 전 유로 2008을 마지막으로 체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것을 발표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메이저 대회를 준비했는데, 조별리그 3차전인 튀르키예전에서 헤딩 선제골, 플라실이 두번째 골을 기록하면서 체코는 2-0으로 앞서나갔으나 마지막 15분을 버티지 못하고 3골을 허용하여 역전패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게 된다. 이 대회를 끝으로 콜레르는 체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009년 7월 콜레르는 다시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여 1경기 출전했지만 그 해 9월 재차 은퇴를 선언했다. 통산 A매치 기록은 91경기 55골.

4. 여담


분데스리가 주간 베스트 골키퍼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2002년 11월 9일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후반 21분 도르트문트의 골키퍼인 옌스 레만이 역전골을 먹은 뒤 주심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는데, 이미 교체카드를 다 써버려서 골키퍼를 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로 데뷔 초창기까지 골키퍼로 뛰었던 콜레르가 골키퍼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남은 시간을 보냈다. 약 25분 동안 콜레르는 선방도 하고, 옌스 레만 부럽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마지막에는 공격수로의 본능을 발휘하며 공격 가담에도 나서는 등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체코의 공격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콜레르 이전에 30년대의 올드르지흐 네예들리, 요제프 비찬, 50년대의 라슬로 쿠발라, 파벨 쿠카[6]가 있긴 했지만, 30년대는 너무 옛날이고 쿠발라는 여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하는 공격수란 느낌은 약한 감이 있다.[7] 그리고 쿠카는 인지도가 거의 바닥이라 현대 체코 공격수의 계보는 얀 콜레르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이후가 밀란 바로시.

분명 2011년에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몇년뒤에 나온 풋볼 매니저 2016에서 등장하고 있다.

아직도 얀 콜러가 FM에? AS모나코 2군에 아마추어 계약이 된 상태로 머물고 있기에 에디터로 데려와야 한다.

파일:attachment/czech.jpg
먼 옛날 SBS에 의해 콜레어라고 개명당한 적이 있다. 이 때 토마시 위팔루시, 마렉 얀쿨로프스키, 블라디미르 스미체르, 페트르 체흐, 토마시 로시츠키도 대거 개명을 당했는데, 잘 보면 체코어 발음이 아닌 영어 발음으로 읽은 결과물이다.

워낙 압도적인 높이 때문에 각종 축구 게임에서도 나름대로 유명세가 높다. FIFA 시리즈에서도 콜레르만큼 높이와 몸싸움, 결정력을 전부 겸비한 스트라이커는 찾기 힘들고, 위닝일레븐에서도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려주면 헤더를 전부 꽂아버릴 정도로 성능이 출중하다. 다만 느린 주력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유저의 플레이 스타일을 좀 타는 편. 이후 헤딩 메타가 거의 없어진 후에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함께 퇴물취급을 당하고 있다. 거기다 헤더를 사용하는 유저들에게도 속도와 체감이 좀 더 준수한 피터 크라우치가 나오며 버려졌다.

5. 수상 기록

5.1. 클럽

5.2. 개인


[1] AC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골키퍼로 데뷔하였다. [2]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 [3] 당시 오범석이 해외 진출을 선언하여 포항을 떠나 사마라로 이적하면서 팀 동료로 한솥밥을 먹었다. [4] 밀란 바로시는 부상을 당하여 1차전을 불참에 콜레르의 부상으로 같은 장신인 196cm 브라티슬라프 로크벤츠가 대체하였으나 2차전 가나전에서 경고를 받아 경고누적으로 투입이 불가능해지자 결국 바로시가 이탈리아전에 나섰으나 힘도 쓰지 못했다. [5] 가나전 위팔루시, 이탈리아전 폴락이 각각 경고누적으로 퇴장까지 당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6] 국내 인지도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얀 콜러 이전에 체코 국대 최다 득점 기록의 주인공이다. 63경기 22골. [7] 굳이 따지자면 가장 많이 출전했고 가장 많이 득점했던 스페인으로 많이 표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