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네임 |
山本 小鉄 ヤマモト[1] オキ ヤマハ[2] オニ ヤマハ[3] |
본명 | 山本 勝[4] |
생년월일 | 1941년 10월 30일 |
사망 | 2010년 8월 28일 |
출신지 |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미나미구 |
신장 | 170cm |
체중 | 100kg |
별명 |
鬼軍曹[5] 人間爆弾[6] |
유형 | 올라운더 |
주요 커리어 |
NWA 미드 아메리카 서던 태그팀 챔피언 1회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
피니쉬 무브 |
다이빙 바디 프레스 하이잭 파일드라이버 |
테마곡 |
1. 개요
일본의 전 프로레슬러.2. 커리어
2.1. 재팬 프로레슬링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재팬 프로레슬링에 입문하려고 갖지만 역도산이 야마모토의 신체특징을 보며 입문을 불허했고, 야마모토는 동해금속공업에 근무하면서 YMCA로 보디빌딩에 몰두해 역도산 앞에 당당히 나서면서 역도산이 특별히 입문해줬다.데뷔전에서 타카사키야마 사루키치를 상대로 경기를 가지면서 시간경과로 인한 무승부로 끝났고, 재팬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던 중 1967년에 호시노 칸타로와 같이 미국으로 무사수행을 떠나며 NWA 및 휴스턴 레슬링에서 뛰게되었고, 호시노 칸타로와 NWA 미드 아메리카 서던 태그팀 챔피언에도 등극하며 첫 챔피언 경력을 만들어냈다.
해외원정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재팬 프로레슬링에서 선수활동을 이어갔지만 1971년에 안토니오 이노키에 의한 재팬 프로레슬링 탈취소동이 발각되자 야마모토 코테츠는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협력했기 때문에 자택 근신을 선고받았고, 이에 불복하여 안토니오 이노키가 재팬 프로레슬링에서 제명되면서 야마모토 코테츠는 재팬 프로레슬링을 퇴단해버린다.[7]
2.2. 신일본 프로레슬링
안토니오 이노키에 의해 신일본 프로레슬링이 창단되면서 야마모토 코테츠도 창단에 참가했고, 현장 책임자 코치도 겸하게 되었다.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벌인 첫 경기에서 토요노보리와 팀을 이뤄 짐 듀랑고 & 존 듀랑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잠시동안 토요노보리와 태그팀으로 다녔고,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선수로 뛰며 태그팀 경기 외에도 싱글 경기에도 참가하며 다양한 선수들을 상대로 경기를 가졌다.
호시노 칸타로와 팀을 이뤄 뛰는 일이 많았고, 1979년에 IWE에 같이 출연해 애니멀 하마구치 & 그레이트 쿠사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둬 새로운 I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하며 오랜만에 챔피언 경력을 만들어냈다. 애니멀 하마구치 & 마이티 이노우에를 상대로 첫 방어전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벌인 2차전에서 패해 챔피언 자리를 내준다.
멕시코의 UWA에 출연해 도렐 딕슨과 팀을 이뤄 베이브 페이스 & 피셔맨을 상대로 DQ승을 거뒀고, 신일본 프로레슬링 활동을 계속 이어가다가 1980년에 호시노 칸타로와 팀을 이뤄 츠루미 고로 & 오오이야마 카츠조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이 경기를 끝으로 프로레슬러 활동을 은퇴하게 된다.
2.3. 은퇴 후
프로레슬러 은퇴 후부터 심판으로 활동하며 신일본 도장의 코치나 신일본 프로레슬링 스쿨의 교장을 역임하게되고, 월드 프로레슬링의 해설자로도 활동하게 된다.1983년에 멕시코의 UWA에 다시 출연해 히로 사이토 & 호나가 노리오와 같이 애니발 & 엘 솔리타리오 & 발리아노 3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다.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기획선전 부장을 맡거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자회사인 신일본 프로레슬링 서비스의 대표이사 사장도 맡았고, 풀타임까진 아니지만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1회성으로 출전하며 경기에 뛰기도 했다.
2008년에는 쇼와 프로레슬링에 참가해 호시노 칸타로와 같이 그레이트 카부키 & 그레이트 코지카를 상대로 태그팀 경기를 갖지만 시간경과로 인한 무승부로 끝났고 이후로는 프로레슬러 활동을 거의 안했다.
2.4. 사망
2010년 8월 24일에 가족여행 차에 간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쵸에서 점심을 다먹고 의식불명으로 쓰러지고, 4일 후인 28일에 저산소성 뇌증 으로 68세 나이로 사망했다.3. 기타
- 성격은 매우 엄격힌 인물이었고, 지나친 음담패설과 장난을 극도로 싫어했다. 또 자신이 가르치고 발전시킨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레슬링 스타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 슈퍼 J컵에 참전한 남색 디노의 남색을 연상시키는 음담패설을 섞은 프로레슬링 스타일에 대해 상당히 격앙된 적도 있었다.
- 일본 일반인 사이 에서는 프로레슬러보다는 호랑이 교관으로 더 유명하다. 대머리+난닝구 또는 티셔츠에 츄리링 바지+손에 죽도를 들고 있으면 100% 코테츠가 모티브다.
- 도장에서의 젊은 지도에는 엄격하지만 연습 이외에는 상냥하게 대하고 있어, 신인 및 신진과 함께 식사를 하는 등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력도 하고 있었다. 또 말로만 지시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젊은 선수들과 같은 운동을 시도했다.
- 프로레슬링계 발전을 위해 여자레슬러에 대한 지도를 하거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에서 심판역을 맡는 등, 프로레슬링 이외의 분야에서도 그 인품과 성격은 애정을 받고 있어 폭넓게 활약하고 있었다. 근육 번호가 붙은 딱지 스타디움의 심판을 담당한 적도 있다.
4. 둘러보기
NJPW 그레이트 레슬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