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하루,
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섬겼으며, 요시테루에게 이름을 받아 야나기하라에서 야나기사와로 성을 바꿨다고 한다. 1569년에 혼코쿠지의 변으로 혼코쿠지에서
미요시 3인중의 습격을 받자 요시아키를 지켰으며, 7곳에 상처를 입어 요시아키로부터 말을 포상으로 받았다.
1592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분로쿠의 역)을 일으킬 때 히데요시가 가신으로 삼아 빈고 국과 이즈모 국에 영지를 받아 1만 석을 소유하면서 서쪽 지방의 대관과
이와미 은광의 광산 봉행(광산 부교)를 맡았다. 히데요시 사후 모리 가문으로 복귀해 1600년에는 모리 가문의 가신으로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모리 가문이 이봉되는 것에 동행하였으며, 1613년에 야마구치에서 사망하였다.
야마구치의 준류사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시카가 요시테루, 아시카가 요시아키, 케이쥬인[1]의 공양탑을 지었다고 한다.
[1]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정실. 요시테루, 요시아키의 어머니.
에이로쿠의 변 때 장남 요시테루와 함께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