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시드니 존스턴 Albert Sidney Johnston |
|
|
|
출생 | 1803년 2월 2일 |
미국 켄터키주 워싱턴 | |
사망 | 1862년 4월 6일 (향년 56세) |
미국 테네시주 샤일로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텍사스 공화국군 아메리카 연합 육군 |
최종 계급 | 아메리카 연합 육군 대장 |
복무 기간 |
1826~1834, 1842~1861(연방 육군) 1846~1842(텍사스 공화국) 1861~1862(남군) |
학력 |
트랜실바니아 대학교 미국육군사관학교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켄터키주 워싱턴에서 태어났고 텍사스에서 성장했다. 트랜실바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고 1826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뉴욕, 미주리에서 복무하다가 블랙호크 전쟁당시 헨리 앳킨슨 준장을 보좌했다.1834년 전역 후 텍사스로 돌아가 당시 멕시코의 이민정책에 반발해 일어난 텍사스 공화국의 장교로 들어갔다. 네체스 전투에 참가하고 1840년 텍사스를 떠나 켄터키로 돌아갔고 다시 육군으로 돌아왔다. 미국-멕시코 전쟁당시 몬테레이 전투에 참가했고 유타 전쟁에도 참가했다.
한편 존스턴은 강경한 노예론자로 알려져있었고 1861년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남군 소속으로 최초의 대장 5명 중 하나가 되었으며 서부전역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미시시피강으로 이어진 전선을 담당했다. 하지만 율리시스 S. 그랜트가 이끄는 부대에게 포트 헨리, 포트 도넬슨을 빼앗기고 테네시의 주도 내슈빌을 내주는 등 악재가 발생했다.
이후 존스턴은 병력을 미시시피주 북부 테네시 경계 근처의 철도 요충지 코린트에 집결시키고 샤일로 전투에서 그랜트의 북군을 선제공격했다. 전투 초반은 남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이에 사기를 북돋기 위해 선두에 서 돌격을 지휘했으나 아군 오사로 인해 오른다리 동맥이 관통당하는 치명상을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P. G. T. 보우리가드가 권한대행으로 남은 전투를 이끌었지만 전투 둘째날에 대규모 지원군을 받은 그랜트에게 결국 패배했다.
제퍼슨 데이비스 남부연합 대통령은 존스턴을 당시의 로버트 E. 리조차 뛰어넘는 남군 최고의 군인으로 여기고 그의 죽음을 매우 애석해했다. 그의 사망이 남부연합의 운명을 바꾼 전환점이라고 회상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