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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0000><colcolor=gold> 제2대 남부군관구 사령관 알렉산드르 블라디미로비치 드보르니코프 Александр Владимирович Дворников Aleksandr Vladimirovich Dvornik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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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1년 8월 22일 ([age(1961-08-22)]세) | |
소련 러시아 SFSR 우수리스크 | ||
국적 |
[[러시아|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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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군인 | |
계급 | 대장 | |
경력 | 남부군관구 사령관 | |
2016년 9월 20일 ~ 2023년 1월 23일 | ||
특수군사작전구역 통합군 사령관 | ||
2022년 4월 ~ 6월 | ||
참전 |
제2차 체첸 전쟁 시리아 내전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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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군인이다.2. 생애
1961년 8월 22일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났다. 현재 국방장관인 세르게이 쇼이구, 총참모장 발레리 게라시모프, 육군 총사령관 올레그 살류코프 등 1955년 출생자들의 바로 아래 연배 장성들의 대표주자이다.1978년 우수리 수보로프 사관학교 졸업 후 소련군에 입대하였다. 이후 1991년 프룬제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소련이 해체되자 러시아군으로 전군하여 제6근위차량화저격여단 대대장으로 지휘관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이후 제10근위전차사단과 제2근위차량화저격사단에서 연대장 보직을 지냈다.
2000년 북캅카스 군관구 제19차량화저격사단 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제2차 체첸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2008년에는 제5군 사령관을 거쳐 동부군관구 부사령관, 중앙군관구 제1부사령관 및 참모장 등을 지내고 2015년에는 시리아 내전에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러시아 파병군 초대 사령관을 맡았다. 드보르니코프는 수헤일 알 하산의 부대 등 극히 일부 정예부대를 제외하면 오합지졸 수준이었던 시리아 정부군을 재편성하고 강도 높은 교육 훈련을 통해 정부군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학교와 병원 등 민간인 시설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반군의 저항의지를 꺾는 무자비한 전술[1]을 통해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이 승기를 잡게 한 일등공신으로 평가된다. 이 공로로 러시아 최고 상훈 러시아 연방 영웅 칭호를 받았지만,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으로 시리아의 도살자라는 악명도 얻었다.
2016년 남부군관구 사령관에 임명되었으며 2020년 대장으로 진급하였다.
2.1.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년 4월 드보르니코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러시아군 전 부대를 총지휘할 통합사령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임명되자마자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미사일 공격을 실행하여 우크라이나에 많은 민간인 피해를 발생하게 했다.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을 재편성하여 공세로 전환했던 공적 때문에 당시 시리아 정부군 수준보다 못한 오합지졸 도적떼로 전락한 러시아군을 수습하고 역량을 강화한 다음 우크라이나군과 결전을 벌여 현재 점령한 돈바스 지역만이라도 영구점령하려는 러시아의 출구전략을 실행할 적임자로 푸틴에게 낙점되었다는 평가이다. 다만 시리아에서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던 전례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있으며 시리아 정부군 이상으로 총체적 난국인 러시아군[2]을 가지고 얼마나 성과를 올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상황.
6월에 접어들어 세베로도네츠크를 함락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나 그 과정에서 대규모의 희생을 남겼고 심지어 우크라이나군에게 역습당해 전멸 수준의 피해를 입기까지 했다.[3] 여기에 더해 그 피해를 메꾸겠답시고 점령지인 헤르손의 주둔군으로 돌려막기를 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있으며[4] 이는 헤르손 반격을 시작한 우크라이나군이 수월하게 점령지 해방을 진행하는 요인이 되었다. 게다가 드보르니코프가 주로 채용했던 더블 탭 스트라이크 전술은 상대가 압도적인 열세라면 그야말로 열세인 상대를 더욱 가망없는 상태로 몰아넣어서 수월하게 승리를 따낼 수 있으나, 우크라이나처럼 상대가 체급이 초토화를 여러 번 당해도 바로 안 꺾일만큼은 받쳐주고 외부지원이 계속 들어온다면 유리한 결과를 낳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 전술은 민사작전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전술이기 때문에 점령 후의 점령지역 유지에 매우 악영향을 미친다. 실제로도 러시아군의 참혹한 초토화 전술 덕에 러시아군은 동남부에서 활용 가능했을지도 모를 친러세력들을 대거 상실했으며, 우크라이나도 결사항전의 의지가 더욱 굳어져버렸다.
물론 이 사단이 난 게 온전히 드보르니코프의 책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이미 상황이 너무 나빠진 시점에서 지휘권을 잡았고 푸틴과 실로비키의 압박을 받아 비효율적인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니 누가 와도 답이 없기 때문. 사실 드보르니코프는 세르듀코프와 함께 게라시모프, 라핀, 수로비킨 등의 정치군인이 아닌 일반 야전군인들 가운데에는 경력과 계급면에서 최고참에 해당하지만 그렇다고 러시아 핵심계층에는 해당하지 않다보니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다.
실로비키는 흔히 서방에서는 군부의 비중이 높다고 호도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정 반대이다. 실로비키는 구 KGB, 현 FSB/SVR을 비롯한 정보기관 출신들과 푸틴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쌓은 인맥들과 푸틴과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 푸틴의 친위세력이 핵심계층인 집단으로 군부는 실로비키가 아니라 그 밑의 실무진에 가깝다. 일반 민간 관료나 기관들보다야 당연히 위상이 높지만 본격적인 권력집단의 이너서클 내의 구도만으로 본다면 군부는 핵심에서 비껴나 있다. 일종의 문민통제상태에 있는 건 러시아도 별 다를 것이 없는 셈.
위에서도 언급되었듯 드보르니코프의 장기는 더블 탭 스트라이크같이 민간인과 인프라 피해는 전혀 신경 안 쓰고 공격하는 것, 그리고 전투력이 떨어진 아군을 재편하는 것인데 이 아군 재편에 필요한 시간을 모스크바에서 전혀 주지 않고 있다. 특별 군사 작전인 만큼 러시아 본토에서도 병력이 조금이나마 계속 보충되고 있는데 드보르니코프의 장기대로라면 이미 무리한 초기 전역에서의 손실을 이들로 보충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잔존병력을 대충 모아서 다시 재돌입시키는, 마치 카니발리즘과 같은 무리수를 두었는데 이는 푸틴과 실로비키들이 러시아 군부를 무리하게 압박해서 공격을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이러니 3명 타야 하는 전차에 2명 밖에 못타는 경우가 많고 전쟁 초기 때 처럼 완편 상태는커녕 차량만 간신히 움직일 병력 밖에 없는 상황이라 비효율적인 전투와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투입한 전력에 비해 매우 저조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이며 비록 우크라이나군이 아직 공세력이 부족한 탓에 러시아군과 4월~5월 초까지 교착상태를 이루고 있으나 러시아군은 1달 가까이 유의미한 성과를 크게 얻지도 못하고 교착상태를 돌파하지도 못했다. 그나마 드보르니코프가 지휘권을 잡은 후 러시아군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일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를 밀어내거나 교착상태를 유지하는건 러시아의 체급이 일단 우크라이나보다 압도적으로 크다보니 지금까지의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계속 병력을 대규모로 투입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러시아 쪽 포병전력이 아직까지 우세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기강은 여전히 제대로 잡질 못했고 5월 기준 러시아군 내부에서 아군끼리의 총격전이나 탈영병, 자살자 등이 속출하는 중이다.
한 가지 의의라면 드보르니코프가 시리아에서의 전술을 재활용하는 겸 전선을 좁혔기 때문에 러시아는 동부 전선에서 5~6월 동안 루한스크 전선에서의 국지적 우세를 맛볼 수 있기는 했다는 것. 그러나 이것도 엄청난 소모를 감안하고 진행하는 전술 치고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상태에서도 빠르게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 걸 보면 러시아군은 지속해서는 안 될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만 다시 보여주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서방이 전차 600대를 포함, 우크라이나에게 열세인 기갑전력과 원거리 공격력과 기동력을 보강해 줄 장비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작전도 영구히 유지하긴 어렵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동부 전선에 엄청나게 포병전력을 갈아넣은 탓에 러시아군은 극심한 탄약 소모로 당장 탄약이 부족하게 되어 6월 26일 결국 벨라루스군의 보유 탄약을 동원하려드는게 확인되었다.
이런 와중에 6월 24일부터 드보르니코프가 해임당할 위기에 놓였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6월 26일 결국 해임당한 게 확인되었고, 후임 우크라이나 침공 총사령관은 겐나디 지트코 상장이 임명되었다. 겨우 2개월 만에 군의 수뇌가 교체당한 것이다. 하지만 이 겐나디 지트코 상장은 드보르니코프보다 무능한 정치군인이고, 동시기 중부집단군 사령관과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각각 임명된 알렉산드르 라핀과 세르게이 수로비킨 역시 무능한 정치군인들이라는 점에서 러시아군의 전투력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지휘관들은 드보르니코프가 총지휘를 맡았던 시절의 손실까지 만회하며 전과를 거둬야 하지만 러시아군의 전력은 드보르니코프가 막 지휘권을 잡았을 때보다도 더 심하게 손실되었으며 본격적인 전시체제로 들어가고 싶어도 서방의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난이 심해져 군수물자 보급역량은 더욱 떨어진 상태다. 반대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드보르니코프의 해임 선례는 이후 다른 러시아군 지휘관들에게도 연신 반복될 수 있다. 그들 역시 크렘린이 기대하는 수준의 성과를 제대로 못 내는 한 드보르니코프처럼 해임당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사에서 지나치게 지휘관이 자주 교체되는 군대는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세르게이 수로비킨은 전형적인 정치군인이자 혹장인 졸장이고 #, 알렉산드르 라핀은 키이우 전선 참패의 총책임자이다. 여기에 제2차량화소총병사단 제1전차연대에서 연대장으로 복무 중인 라핀의 아들도 연대의 보유 전차 절반을 날려 먹는 실책을 저질렀음에도 오히려 잘 싸운다며 훈장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 #
한편 동부 우크라이나 공세 진행 과정에서 한동안 우크라이나군이 집계한 러시아군 손실 가운데 사망자 수와 기갑 차량 및 트럭의 손실이 줄었는데, 6월 26일 집계부터 이 손실이 갑자기 급격하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즉, 드보르니코프가 해임된 것이 확정된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우크라이나군이 확실한 인증이 없을 경우 전과 인정을 잘 안해주는 등 전과를 보수적으로 잡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러시아군 수뇌부가 드보르니코프의 전술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 전쟁 초기에 구사하던 BTG로 돌파하는 전술을 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요약하면, 드보르니코프가 그나마 선방했다는 것. 그래도 BTG 돌파전술로 루한스크를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했으나 도네츠크, 하르키우, 남부전선에서 우크라이나가 수월하게 진격하는 건 물론 그만큼 손실된 전력도 늘어나서 결국은 졸전이라는 결론만 나오고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군이 포병 전력이 압도적인 격차가 나니 전략을 바꿔 러시아군의 탄약고를 집중적으로 타격하기 시작하고, 미국으로부터 M142 HIMARS가 공여되면서 파괴되는 탄약고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으므로, 결국은 드보르니코프가 해임되지 않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전술이었다. 근본적으로 러시아는 제공권 장악에 실패했고[5] 공군을 제외한 지상병력을 동원해도 우크라이나의 현재 HIMARS를 동원한 러시아군 탄약고 공격에 대한 예방과 방어력이 현저히 떨어진다.[6]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의 탄약 보급 집중 공격을 시작하자 러시아군이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고 HIMARS에 엄청난 피해를 연신 입는 것이다.
그리고 9월이 되자 우크라이나는 동부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순식간에 격퇴하면서 그 동안 드보르니코프의 활약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11월에는 헤르손시까지 우크라이나군에 탈환되었다.
[1]
이 전술은
더블 탭 스트라이크라고 불리는 전술이다. 민간인 시설, 피난처 등에 일부러 폭격을 한 다음에 대응팀이나 구조대가 오면 추가로 공격하는 방식이다. 어원은
더블 탭.
[2]
바닥까지 떨어진 사기, 부족한 보급, 형편없는 숙련도, 막대한 손실 등 손볼 곳이 한 두 개가 아닌 상황이다. 거기에 러시아군은 덩치까지 거대하니 설령 뭘 하려고 해도 티나 날 지 의문. 상대인 우크라이나군은 서방의 풍부한 지원+러시아군이 버리고 도망친 기갑장비 등을 회수해 이를 정비하여 전장에 지속적으로 투입해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2022년 4월 말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렌드리스 법이 하원에서까지 통과되면서 장기전에 들어갈수록 러시아군이 더욱 병력에서 밀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리고 시리아 시절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체첸, 시리아 시절과 유사한 수준의 무자비한 전술을 사용한 것의 득을 보긴 커녕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 의지와 더불어 서방의 지원을 더욱 강화시켜버렸다.
[3]
그나마 아직 동부 러시아군은 포병 전력이 우세하고 기계화가 잘 되어서 여차하면 철수하는건 빠른 편이나(우크라이나군의 공세가 세베로도네츠크를 탈환할 정도로 선전하자 러시아군은 도시에서 철수한 뒤 도시 전역에 집중 포격을 가해 공세를 돈좌시켰다) 이것도 언제까지 갈지는 알 수 없다.
[4]
헤르손을 우크라이나측이 탈환하면 남부 전선이 무너질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남부 지역을 탈환한다는건 크림 반도도 위험해진다는걸 의미한다. 더 큰 문제는 헤르손 외 다른 남부 점령지들의 파르티잔들이 준동하는 것을 제대로 해결도 못한 상태에서 여기의 병력들까지 헤르손으로 빼돌리는 병력 돌려막기를 시전하는 중이다.
[5]
러시아 공군의 제공권 장악 실패는 이번 전쟁 초기부터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6]
러시아군은 현재 정찰에서도 우크라이나군에게 밀리고 전장에서 HIMARS를 제대로 포착하고 확실히 처리하는 것도 실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