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3년 3월 11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가 군부 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사건으로, 당시에는 반혁명 사건으로 불렸다.이 사건의 이름에는 뜬금없이 알래스카라는 이름이 들어갔는데 6.25 전쟁 직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 육군 24군단이 각 도마다 붙인 작전 암호 중 함경도에 붙었던 암호명 알래스카에서 유래되었다.
2. 원인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발한 후 군정 세력은 다가오는 민정이양을 앞두고 내부에서 여러 개의 파벌로 나뉘어서 계파 갈등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장도영 등으로 대표되는 평안도파를 1961년 7월 텍사스 토벌작전으로 제거해 버린 박정희는 정변 세력 중 군부 내 영향력이 막강했던 함경도파(함경도 출신들)[1]를 제거하고 싶어했고 군부 내 쿠데타 음모를 조작했다.3. 전개
1963년 3월 11일, 김재춘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군부가 쿠데타를 기도하였다는 성명문을 발표했다. 김재춘은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기성 정치인들을 정죄하기 위해 만든 정치활동정화법을 일부 해제하자 이에 불만을 품은 군부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최고의원, 기성 정치인들을 무력으로 제거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김동하 전 국가재건최고회의 외무국방위원장, 박임항, 박창암, 이규광, 방현철 등 20명이 당일 구속당했고[2] 1명이 수배되었다.이틀 뒤인 3월 13일 김재춘은 구속자 명단 11명을 추가로 발표하였다.
4. 구속자 명단
4.1. 3월 11일
- 김동하 예비역 해병대 중장
- 박임항 건설부장관(예비역 육군 중장)
- 박창암 예비역 육군 준장[3]
- 이규광 전 국토건설단보좌관, 예비역 육군 준장[4]
- 김명환
- 이종환
- 권창식
- 서상순
- 박준호
- 양한섭
- 이종태
- 김영하
- 이종민
- 이진득
- 박병섭
- 방원철 전 치안국 정보과장
- 김광식 전 최고회의 전문위원
- 김동흡 공군야전사 32정찰대장
- 강계삼
4.2. 3월 13일
5. 결과와 영향
제1공화국 시절 군부 내 파벌 중 평안도파와 함께 양대산맥이었던 함경도파는 이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반김종필 성향을 드러냈던 김동하가 제거됨에 따라 김종필을 위시로 한 육사 8기생들의 위시가 강화되었다.알래스카 토벌작전으로 구속된 21명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재판에 회부된 박임항은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유죄 판결을 받고 3년간 복역하다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으며 다른 인물들도 몇 년 간 형기를 살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