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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9:36:01

알 이티하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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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이티하드
Al Ittihad
<colbgcolor=#fef201><colcolor=#000> 정식 명칭 Al Ittihad Football Club
نادي الإتّحاد العربي السعودي
별칭 Tigers (호랑이)
창단 1927년 12월 26일 ([age(1927-12-26)]주년)
소속 리그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Saudi Professional League)
연고지 제다 (Jeddah)
라이벌 알 힐랄 - 사우디 클라시코(Saudi El Clásico)
알 아흘리 - 제다 더비(Jeddah Derby)
홈구장 킹 압둘라 스포츠 시티 (King Abdullah Sports City)
(62,345명 수용)
구단주
[[사우디아라비아|]][[틀:국기|]][[틀:국기|]] 칼레드 알마르조기 (Kaled Al-Marzogi)
단장
[[스페인|]][[틀:국기|]][[틀:국기|]] 라몬 플라네스 (Ramón Planes)
감독
[[프랑스|]][[틀:국기|]][[틀:국기|]] 로랑 블랑 (Laurent Blanc)
주장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카림 벤제마 (Karim Benzema)
부주장
[[브라질|]][[틀:국기|]][[틀:국기|]] 파비뉴 (Fabinho)
웹사이트 파일:알 이티하드 FC 엠블럼.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틱톡 아이콘.svg 파일:LinkedIn 아이콘.svg 파일:스냅챗 로고.svg
우승 기록
프로페셔널 리그
(9회)
1981-82, 1996-97, 1998-99, 1999-2000, 2000-01, 2002-03, 2006-07, 2008-09, 2022-23
킹스컵
(10회)
1958, 1959, 1960, 1963, 1967, 1988, 2010, 2013, 2018, 2023
크라운 프린스컵
(8회)
1958, 1959, 1963, 1991, 1997, 2001, 2004, 2017
사우디 슈퍼컵
(1회)
2022
AFC 챔피언스 리그
파일:ACL 트로피.svg 파일:ACL 트로피.svg
(2회)
2004, 2005
아시안 컵위너스컵
(1회)
1998-99
아랍 클럽 챔피언스컵
(1회)
2004-05
GCC 챔피언스 리그
(1회)
1999
구단 기록
최고 이적료 영입
[[프랑스|]][[틀:국기|]][[틀:국기|]] 무사 디아비 (Moussa Diaby)
(2024년, From 아스톤 빌라 FC, €60M)
최근 영입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다닐루 페헤이라 (Danilo Pereira)
(2024년, From 파리 생제르맹 FC, €5M)
최고 이적료 방출
[[사우디아라비아|]][[틀:국기|]][[틀:국기|]] 압둘레라 알말키 (Abdulelah Al-Malki)
(2023년, To 알 힐랄 SFC, €1.65M)
1. 개요2. 역사
2.1. 초창기2.2. 전성기2.3. 2010년대 초반~현재
3. AFC 챔피언스 리그
3.1. K리그와 악연
3.1.1. K리그의 복수
3.2. J리그와 악연3.3. 중국 슈퍼 리그와 악연
4. 침대 축구를 거부한 깡패 축구5. 여담6. 주요 선수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사우디아라비아의 명문 축구 클럽.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소속 클럽 중에서 알 힐랄 SFC와 함께 단 2개뿐인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2004, 2005) 클럽이다. 현지에서는 알 잇티하드[1]라고 부르며 제다를 연고로 한다.

잇티하드는 아랍어로 연합이라는 뜻이며 꽤 많은 아랍권 나라에서 축구 및 핸드볼, 농구, 크리켓같은 여러 종목 구단 이름으로 쓰인다.[2] 또한 알은 정관사 THE와 같은 뜻을 지니니 결국 '연합'이 팀 이름이다.

시리아(1953년 창단)나 이집트, 오만(여기는 2부리그팀), 바레인에도 똑같이 알 이티하드라는 구단이 있다. 소말리아에 있는 과격 이슬람 광신테러단 알 샤바브같은 경우도 있는데 이 이름도 흔해서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에도 축구 구단 및 농구 구단 이름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알 이티하드 제다 FC에 대해서 다룬다.

2. 역사

파일:알 이티하드 FC 엠블럼(~2018).svg
2018년까지의 엠블럼
1927년에 창단하여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구단이다. 이름이 연합이란 이름을 가진 이티하드가 된 것은 함자 피타이히를 비롯한 7명이 함께 설립했기 때문이다. 창단주 중 하나인 압둘 아지즈 자밀이 "우리가 여기에 하나로 모였으니 이티하드라는 이름이 어떻겠느냐?" 라고 건의한 것을 나머지 6명이 동의하여 이 이름이 붙었다. 아랍어로 이티하드는 연대, 연합이란 의미이다. 이웃국가인 아랍에미리트의 에티하드 항공 역시 같은 단어에서 유래된 것이다.

1929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첫 경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상대할 팀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나라가 아니었고 헤자즈 왕국과 네지드 왕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기에 여러가지로 내부 사정이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1929년에서야 젯다를 연고지로 한 알 리야디와 경기를 벌이게 되지만 알 리야디가 재정난으로 오래가지 않아 문닫는 통에 한동안 제대로 경기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과 달리 당시 이 팀은 구단주들이 부유한 게 아니라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가 1932년에서야 네지드가 헤자즈를 합병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재탄생하면서 비로소 석유 재벌과 왕족들의 투자가 이어져 1936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준리그가 문을 열었고 1958년 FA컵인 킹스컵(나중에 사우디 챔피언스컵으로 변경)이 시작되고 59년 첫 킹스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문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2011년까지 모두 리그 우승 8회, 사우디 왕자컵 6회, 크라운 프린스컵7회 우승으로 사우디 명문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리그 우승 13회로 최다 우승팀이자, 유병수 이영표가 속해있었던 알 힐랄과 라이벌 관계다. 알 힐랄에게 0:5으로 졌다고 리그를 무패로 4연속 우승시킨 가브리엘 칼데론 감독을 경질할 정도이다.
파일:attachment/Luis_Figo_Al-Ittihad.jpg
2007년에는 루이스 피구의 영입을 사실상 확정지었으나[3], 이적 시장이 열리기 직전 피구측이 알 이티하드의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알 이티하드를 FIFA에 제소해 계약이 파기되어 이적이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피구는 원래 뛰던 인테르에서 2년을 더 뛰고 은퇴한다.

2.1. 초창기

1976~77 시즌에 문을 연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 당연히 원년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하지만 7, 80년대에는 1981-1982 시즌 깜짝 우승을 제외하면 알 힐랄, 알 나스르, 알 아흘리가 리그를 3등분하던 시기인 반면 알 이티하드는 3위~6위를 오가는 그런저런 중위권 팀이였다.

90년대 알 이티하드는 조금씩 성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1992-1993 시즌 리그 3위를 기록해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라이벌 알 힐랄과 맞붙게 되었다. 1차전 홈에서는 알 이티하드가 2:1로 승리했고 2차전 원정에서는 0:1으로 패했다. 하지만 이때는 원정 다득점 원칙이 적용되지 않아 연장전까지 가게 되었고 연장전에서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 까지 간 끝에 3:4으로 알 이티하드가 패배하게 된다.

이후 1993-1994, 1994-1995 시즌 연속 7위를 기록하면서 다시 한번 중위권팀으로 내려가나 싶었지만 1995-1996년 리그 1위를 차지하면서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다시만난 알 힐랄에게 원정 0:1 패, 홈에서 1:1 무승부로 합계 1:2로 패해 3,4위전으로 밀려났고 3,4위전에서 알 나스르를 2:1로 겨우 꺾고 3위를 차지했다. 반면 알 힐랄은 승승장구해 리그 우승을 차지해 알이티하드 팬들에 마음에 못을 박았다. 이때부터 알 이티하드와 알 힐랄간에 라이벌 관계 형성과 이 두 팀의 피말리는 우승경쟁이 시작된다.

2.2. 전성기

1995-1996 시즌부터 2010-2011까지 총 16 시즌 동안 알 샤밥이 2003-2004, 2005-2006 시즌 우승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 힐랄, 알이티하드가 나란히 우승을 나누어 가졌다.

1996-1997 시즌에는 리그1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 에서 알 샤밥을 만나 홈에서 4:2 승리를 거두고 원정에서 2:2 무승부를 거둬 총 6:4로 알 샤밥을 이기고 15년만이자 두번째로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게 된다.

그러나 1997-1998 시즌은 7위로 추락해 플레이오프도 제대로 못가고 시즌을 마쳤고 알 힐랄이 리그 우승하는걸 지켜봐야 했다.

1998-1999 시즌에는 리그 2위를 차지해 플레이오프에서 알 사밥과 붙어 홈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고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둬 합계 4:3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에서 알 아흘리를 1:0으로 이기면서 다시 한번 부활을 알렸다.

1999-2000 시즌에는 리그 1위로 마쳐 플레이오프에서 알 나스르를 만나 홈에서 0:0, 원정에서 2:0 승리를 거둠으로써 다시 한번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다. 결승전 상대는 작년에 만난 알 아흘리로 확정되었다. 결승전에서 알 이티하드는 선취골을 넣으면서 리그 2연패를 저지하나 싶었지만 38분 바로 동점골을 먹혀 1:1 상황이 되었다. 이후 양팀간 득점없이 경기가 끝났고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었는데 연장 전반 101분경 알 이티하드가 역전골을 성공시킨다. 2:1이 되자 다급해진 알 아흘리는 총력을 다해 싸웠으나 알 이티하드 견고한 수비에 막혔고 결국 시간이 흘러 경기는 이대로 종료 알 이티하드가 리그 2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2000-2001 시즌에는 리그4위로 겨우 플레이오프 턱걸이를 했다. 플레이 오프 상대로는 알아흘리로 정해졌는데 1차전 에서는 0:0으로 비겼고 2차전에서는 4:2로 이겨 결승전에 진출하게 된다. 결승전에서는 알 나스르를 상대로 전반 39분 선취골을 잘키켜 1:0으로 승리하면서 알 샤밥에 이어 2번째로 리그 3연패를 달성한 팀이 되었다.

2001-2002 시즌에는 알 힐랄에 밀려 리그 2위로 마쳤지만 플레이오프에서 알 나스르를 2:1로 꺾으면서 결승전에서 라이벌 알 힐랄과 다시 한번 맞붙게 되었다. 결승전 경기는 서로 공방을 주고 받다가 80분과 87분에 알 힐랄이 연속골을 넣었다. 다급해진 알 이티하드는 90분에 추격골을 넣었지만 이미 승부에추는 기운상황 알 힐랄은 알 이티하드를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간지연을 시전했고 결국 그대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알 힐랄이 4년만에 우승컵을 되찾게 되었다.

2002-2003 시즌은 상당히 의미있는 시즌이였는데 리그 1위를 차지하고 플레이오프에서 지역 라이벌 알 아흘리를 3:2로 꺾고 6번째 우승컵을 가져갔을 뿐더러 AFC 챔피언스리그진출권을 확보했다.

2003-2004 시즌은 리그1위로 마쳤으나 결승전에서 알 샤밥에게 0:1으로 패해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4-2005 시즌에는 3위로 시즌을 마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 알 나스르를 6:0으로 꺾는 괴력을 발산해 알 힐랄과 맞붙게 되었으나 0:1으로 허무하게 패배해 3위로 마무리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리그 중반에 진행중이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2004 시즌에서는 4강에서 전북 현대 모터스를 꺾고 결승에 올라갔고 결승전에서 성남 일화 천마를 만나 홈에서 1:3으로 패했으나 원정에서 5:0 대승을 해 AFC 챔피언스리그 첫우승을 차지하면서 동아시아 킬러에 서막을 알리게 된다.

2005-2006 시즌에도 작년과 똑같이 3위로 마쳤고 플레이오프에서 알 아흘리를 3:0으로 꺾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으나 역시 라이벌 알 힐랄에게 1:2로 패해 3위로 마감했다.
그러나 이때도 리그 중반에 AFC 챔피언스리그 2005 시즌에서는 4강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만나 원정에서 5:0, 홈에서 2:0으로 통합 7:0으로 짓눌르면서 동아시아 킬러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고, 결승에 올라 알 아인을 1,2 차전 합계 5:3으로 꺾고 2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2005 FIFA 월드 클럽 챔피언십에서 2005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했다. 8강에서 CAF 대표인 이집트의 알 아흘리를 1:0로 격파하고 4강에서 이 대회 우승팀인 CONMEBOL 대표인 브라질의 상파울루 FC와 맞붙어서 먼저 선제골을 넣었으나 상파울루의 마르시우 아모로주한테 멀티골을 당했고 골넣는 골키퍼로 알려진 호제리우 세니한테 PK골을 내주며 1:3까지 끌려가다가 만회골을 넣었으나 2:3로 패했다.

2006-2007 시즌에는 플레이오프가 폐지되었고 리그 1, 2위가 맞붙는 형식으로 바뀌었는데 이때 알 이티하드는 리그 2위를 차지해 1위를 차지한 알 힐랄과 붙게 되었다. 결승을 알 힐랄의 홈인 킹 파드 스타디움에서 치러야 하는 불리함을 가지고 원정을 떠났다.
결승전에서 예상대로 전반 25분 알 힐랄이 먼저 선제골을 넣었고 알 이티하드는 70분까지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치 못하고 알 힐랄의 수비에 전부 다 차단당하게 된다.
그러나 75분 알 이티하드가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급해진 알 힐랄은 재차 공격에 나섰으나 소득없이 끝나게 되고 서로가 점수를 내지 못하다가 종료 직전인 추가시간 4분에 알 이티하드가 역전골을 뽑아내었고 경기는 그대로 종료가 되면서 알 이티하드는 통산 7번째 우승컵을 들게 된다.

2007-2008 시즌에는 알 힐랄과 알 이티하드가 피가 말리는 시즌이였는데 리그가 끝날 때까지도 우승경쟁이 안개속인 시즌이였다. 알 힐랄이 앞서가나 싶으면 알 이티하드가 따라 잡고 알 이티하드가 앞서가면 알 힐랄이 따라잡는 서로가 물고 물리는 시즌이였다.
최종 결과는 양팀모두 14승 6무 2패 승점 48점을 기록했고 골득실은 알 이티하드가 1골 더 많았으나 사우디아라비아 프리미어리그는 승점이 동률일 경우 상대전적을 먼저 따지기 때문에 이 시즌에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전적이 우세했던 알 힐랄이 우승컵을 가져갔고 준우승은 알 이티하드가 차지하면서 알 이티하드는 통한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2008-2009 시즌에는 승점 55점을 기록해 50점을 기록한 알 힐랄을 5점차로 따돌리고 8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된다. 이때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4강전에서 나고야를 홈에서 6:2, 원정에서 2:1로 모두 승리하면서 도합 8:3으로 뭉개고 결승전에 올라갔다. 하지만 중립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치러진 결승전에서 포항 스틸러스를 만나 1:2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알 이티하드는 동아시아 킬러답게 포항을 90분 내내 압도했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여러 번 놓쳤고, 오히려 세트피스 기회를 잘 살린 포항에 2골을 연달아 내주면서 패하게 된다.

2009-2010 시즌에는 오일 머니로 무장한 알 힐랄에게 밀려 준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승점 56점을 차지한 알 힐랄에 비해 알 이티하드는 45점 밖에 확보하지 못해 압도적인 승점차로 알 힐랄에게 우승컵을 넘겨주게 된다.

2010-2011 시즌은 알 이티하드가 더 암울해져 가는 시기였는데 라이벌 알 힐랄은 19승 7무 무패로 리그 우승을 차지한 반면 알 이티하드는 13승 12무 1패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적으로 보면 알 이티하드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알 힐랄이 무패로 우승했던 시기라 알 이티하드 팬들은 알 힐랄에 대해 더더욱 열등감을 느끼는 시즌이였다.

2011년 6월 11일에 벌어진 사우디 챔피언스컵 8강전에서 알 나스르를 제치고 4강에 올라온 알 이티하드는 또 다시 알 힐랄과 격돌하게 되었다. 같은 시즌 알 힐랄이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리그와 리그컵에서 3승 1무로 앞섰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1-3으로 패하여 16강에서 탈락한 상황이었다. 알 힐랄은 리그와 리그컵 우승에 이어 FA컵까지 우승하여 트리플 우승을 노리겠다고 나섰으며 알 이티하드는 올 시즌 남은 FA컵과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좌절한 리그 우승의 한을 덜겠다고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1차전에서 0-0으로 비기고, 2차전에서 3-0으로 승리하면서 알 이티하드가 다시 한 번 웃었다. 이 여파로 리그 무패 우승과 리그컵인 프린스 크라운컵 우승을 이뤘음에도 알 힐랄의 가브리엘 칼데론 감독은 경질되었다.[4]
알 힐랄을 꺾고 기분 좋게 결승에 안착했지만 리그 6위이었던 알 아흘리와 비겨서 승부차기 끝에 2:4로 져서 2회 연속 우승이 좌절됐다.
그럼에도 리그에서는 2위를 기록하여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얻게되었다.

2.3. 2010년대 초반~현재

2011~12 시즌에는 알 이티하드 몰락이 보인 시기였는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인 4위에도 못들고 5위로 리그를 마감했다. 그리고 리그컵인 크라운 프린스컵에선 유병수의 활약으로 알 나스르를 제치고 올라온 라이벌 알 힐랄과 또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리야드 원정에서 유병수의 선제골과 나와프 알 아베브에게 추가골을 얻어맞고 0:2로 패배했다. 이 패배와 더불어 리그에서 1승 2무 5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그중 대다수가 중하위권 팀에게 패했다. 결국 마트야즈 켁 감독이 겨우 석달도 안돼 해임되었다. 그리고 라울 카네다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다. 원래는 헤타페 C.F. 전 감독인 빅토르 무노즈가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될 예정이었으나 감독으로선 경력이 없는 라울 카네다가 감독으로 취임하여 사우디 프리미어 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을 놀라게 했다.

라울 카네다 경력이라곤 프리메라리가 하위팀이었던 UD 알메리아의 부코치를 1년 한 것뿐이다. 그동안 경력이 꽤 되던 감독이라든지 언론에서 새 감독으로 올 빅토르 무노즈와 비교하면 명함도 못 내밀 수준이었다.
결국 11-12 시즌 리그 성적은 겨우 5위에 그치면서 97-98 시즌에 거둔 리그 7위 이후로 가장 부진한 리그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컵 대회에서도 모두 우승에 실패하면서 2013 시즌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조차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임감독이던 마트야즈 켁 시절에 리그 10위까지 추락하고 당한 여파가 컸기에 이런 성적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컸다.
리그와 대조적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순항을 달리며 8강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8강에서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도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막히면서 동아시아 킬러라는 별명에 스크레치가 갔고, 이 시즌은 무관으로 마치게 되었다.

2023년 현재는 미친 오일머니의 힘으로 벤제마, 캉테 등 레전드 선수들을 영입했다.

2.3.1. 최근 성적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알 이티하드/최근 성적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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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AFC 챔피언스 리그

2002-2003 우승팀 자격으로 2004년 대회에 참가해 참가해 D조에 속해 세파한, 알 아라비, 네프치 페르가나와 속해 4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세파한과 승패, 승점 동률을 이루었으나 골득실로 인해 8강에 진출하게 되고 8강에서 다롄 스더를 합계 2:1, 4강에서 전북 현대를 합계 4:3, 결승에서 성남 일화를 꺾고 우승한다. 본선 토너먼트부터 결승전까지 모두 동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승리했고, 특히 결승전에서는 1차전 홈에서 1:3으로 패했으나 2차전 원정에서 5: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1차전 원정에서 2점차로 승리하면서 우승 기대감을 모았던 성남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언론에서도 치욕의 참패를 당했다고 보도했다.

2005년 대회에서는 작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8강에서부터 시작했다. 8강에서 산둥 루넝을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겼지만 2차전 홈에서 7:2로 대승을 거두며 합계 스코어 8:3으로 산둥을 꺾고 4강에 진출하였다. 4강에서도 부산 아이파크를 1차전 원정[5]에서 5:0, 2차전 홈에서 2:0으로 합계 스코어 7:0으로 대파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4강에서 중국의 선전 전리바오를 꺾고 올라온 UAE의 알 아인이었으나 합계 스코어 5:3으로 알 아인을 꺾고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다.

2006년 대회에서도 작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8강에서부터 시작했다. 8강에서 시리아 알 카라마를 만나 홈에서 2:0으로 이겼으나 원정에서 0:2로 후반전을 마쳐 연장전에 돌입했고 연장전에서 2골을 내줘 2:4로 패해 탈락하게 된다.

2008년 대회에서는 2006-2007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해 A조에 속해 부뇨드코르,세파한 ,알 이티하드 SC와 속해 경기를 치렀으나 3승 3패 조 2위로 경기를 마쳤고 탈락하게 된다.

2009년 대회에서는 2007-2008 준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했다. C조에 속해 움살랄, 알 자지라, 에스테그랄과 경기를 가져 3승 3무로 조1위로 예선을 통과했고 단판으로 치러진 16강에서 알 샤바브를 2:1로 꺾었으며 8강에서 파흐타코르를 1차전 원정에서 1:1 무승부, 2차전 홈에서 4:0 승리로 도합 5:1로 꺾고 4강에 진출했으며 4강에서 나고야 그램퍼스를 1차전 홈에서 6:2 대승, 원정에서도 2:1로 승리하면서 도합 8:3으로 대승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마침 4강 2차전이 일본 원정이었기 때문에 경기 후에도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머물면서 현지 적응을 했고[6] 4년만의 왕좌 탈환과 동시에 AFC 대회 최다 우승을 꿈꿨다. 하지만 중립인 도쿄에서 치러진 결승에서 포항 스틸러스에게 1:2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AFC 대회 최다 우승팀의 영광은 포항이 가져갔다.

2010 대회에 2008-2009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해 B조에 속해 알 와흐다, 분요드코르, 조브아한 과 속해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2승 2무 2패를 기록, 조 3위로 경기를 마쳐 예선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2011대회에 2009-2010 준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해 C조에 속해 알 와다, 페르세폴리스, 분요드코르와 속해 3승 2무 1패를 기록하여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단판으로 치러진 16강에서는 홈에서 라이벌 알 힐랄을 3:1로 누르고 8강에 진출했으며 8강에서 FC 서울을 홈에서 3:1로 승리 했고 원정에서 0:1로 패배했으나 총합 3:2로 4강에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4강에서 전북 현대를 만나 홈에서 2:3으로 패배했으며 원정에서도 1:2로 패해 총합 3:5 패배를 기록해 4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2012년 대회에도 2010-2011 준우승팀 자격으로 참가해 B조에 속해 바니야스, 파흐타코르, 알아라비와 속해 경기를 치르게 되었고 5승 1무를 기록해 16강에 진출하게 된다. 단판으로 치러진 16강에서는 홈에서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를 3:0으로 꺾고 8강에 진출 했으며 8강에서 광저우 헝다를 홈에서 4:2로 승리했고 원정에서 1:2로 패했으나 총합 5:4로 골득실에 앞서 4강에 진출하게 된다.
4강에서는 지역 라이벌 알 아흘리와 격돌하게 되었는데 1차전 에서는 1:0으로 승리 했으나 2차전에서는 0:2 패배를 기록하게 되면서 4강에서 탈락하게 된다. 경기 종료후 집단 난투를 벌여 화제가 되었다.

3.1. K리그와 악연

클럽 대회에서 K리그와 맞붙은 건 지금은 사라진 1999년에 열린 아시안컵 위너스컵(리그 및 FA컵같은 컵 대회 우승팀이 참가하던 대회로 유로파리그 전신인 위너스컵을 본떠 만들었다) 대회이다. 결승에 올라온 전남 드래곤즈와 알 이티하드는 연장까지 경기를 벌여 알 이티하드가 3-2로 이기며 팀 역사상 첫 클럽국제대회 우승을 맛보았다. 하지만 이 대회는 챔피언스리그 전신인 아시안 클럽컵보다 비중이 낮아서 잘 관심을 끌지 못했고 경기면에선 원정에서 연장까지 팽팽히 경기를 벌이던 터라 알 이티하드는 제법 상대할만 팀으로 남게 된다.

비로소 그 악명이 세상에 울려펴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이다.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 성남과 전북은 4강까지 순조롭게 진출했다. 4강에서 알 이티하드와 먼저 조우한 것은 전북이었다. 당시 알 이티하드는 중국의 다롄 스더에게 1승 1무로 다소 고전하며 2:1로 겨우 승리해서 진출했기에 그다지 위협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또한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은 4강까지 진출한 반면에 사우디아라비아는 독일에게 0:8로 박살이 나는 등 득점 하나도 없이 대량실점을 당하며 처참하게 무너졌기에 당연히 사우디아라비아 국가대표 뿐만 아니라 그들이 뛰는 사우디아라비아 리그에 대해서도 우습게 여기는 시각이 많았다.

그러나 전북은 1차전 원정에서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실점을 하며 1:2로 패하고 2차전 홈에서 2골을 먼저 넣으며 역전극을 보이는가 싶었으나 페널티킥을 허용하고 이어서 동점골까지 내주며 2:2로 비기면서 합계 3:4으로 아쉽게 탈락했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성남팬들과 K리그 팬들 대다수는 전북이 운이 없어 탈락한 것으로 봤고 알 이티하드 정도면 그럭저럭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 이티하드의 1차전 결승골과 2차전의 추격골, 동점골이 모두 전북 이용발 골키퍼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오히려 더 처참했다. 성남은 알 이티하드의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판정의 불리함을 딛고 3:1로 완승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다. 원정에서 2점차로 승리를 거뒀기 때문에 성남팬들은 벌써부터 우승을 자축하는 분위기였지만 여기서부터 알 이티하드의 깡패축구 전설이 막을 올렸다. 알 이티하드는 성남의 홈구장인 성남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차전에서 성남을 5:0으로 박살내며 합계 6:3으로 대회 개편 이후 첫 우승컵을 획득했다.

당시 K리그 최강으로 꼽히던 성남의 처절한 패배는 성남의 팬을 넘어 K리그의 모든 팬 전체를 현실부정의 늪에 빠뜨렸으며 알 이티하드는 K리그 공공의 적으로 등극한다. 이 처참한 패배를 지켜본 성남의 유명팬인 샤다라빠는 경기장에서 울어버렸다고 한다.

2골의 어드밴티지, 그리고 중동 선수들이 익숙하지 않은 겨울의 추위를 고려하면 당시의 완패는 거의 초현실적인 참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성남 선수들은 방심했는지 초반부터 우라돌격을 감행하는 등 안일한 플레이를 일삼았고, 1차전 패배 후 감독까지 경질되었던 알 이티하드는 말 그대로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했다.
알 이티하드는 무지막지한 피지컬을 활용한 고공축구로 성남 수비진을 유린하며 2골을 선취했고, 당황한 성남이 후반 역습을 감행하자 압도적인 개인기로 3골을 더 뽑아냈다. 게다가 성남의 에이스였던 브라질 출신의 두두가 오히려 추위에 위축되며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여담으로, 당시 스포츠토토에서 딱 1명이 성남의 0:5 패배에 10만원을 베팅했다. 그리고 7400배 배당으로 7억 4천만원(세금 33%포함)을 따냈다. 그리고 이 경기는 조예선부터 성남에게 불리한 판정을 벌인 중국의 루쥔 주심의 농간도 컸다.

2005년 대회에서는 구단주[7]가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인테르 출신의 모하메드 칼론과 미들즈브러 출신의 조세프 데지레 좁 등을 영입했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AFC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원정 5:0, 홈 2:0, 도합 종합 7:0으로 초전박살냈다. 당시 좌절한 부산팬들이 퇴장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 부산 갈매기를 불렀다는 루머도 전해진다.

사실, 일부 부산 팬들은 알 이티하드의 전력분석 이후 경기 전부터 거의 반쯤 포기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커라인의 게시판에 올라온 알 이티하드의 전력분석 내용을 보면 전성기 시절의 알 이티하드가 얼마나 공포의 대상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링크

2006년에는 작년 대회 우승팀 자격으로 기세좋게 8강전부터 시작했지만[8] 시리아 알 카라마에게 8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4:2로 져 탈락하자[9] 모든 K리그 팬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알 이티하드를 꺾은 알 카라마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전북 현대 모터스에게 결승전에서 2:3으로 패해 준우승했다.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8강에선 FC 서울을 1차전에서 홈으로 불러들여 3:1로 꺾었다. 서울은 2:0로 이기거나 아니면 3점 차로 이겨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놓였고 결국 상암에서 열린 2차전에서 FC 서울이 후반 39분에 골을 허용하며 0:1로 패배했으나, 도합 3:2으로 꺾고 4강에 진출했고, 전북을 상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북에게 통합 스코어 3-5로 패배하면서 탈락하면서 동아시아 킬러 이미지에 흠이 갔다.

2014 챔피언스 리그에서 라이벌 알 힐랄과 나란히 8강에 진출했는데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포항 스틸러스, FC 서울과 더불어 8강 진출팀이 2팀인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8강전 1차전에서 홈경기에서 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원정에서 0-2로 졌다. 이는 무관중 경기 여파인 탓이 컸다. 바로 16강전인 알 샤바브와의 홈경기에서 알 이티하드 관중들이 방화를 저지르며 경기가 잠깐 중단된 처벌로 AFC에서 무관중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2차전 원정에서도 1-3으로 지면서 8강에서 AFC 챔피언스 리그 시즌을 마무리했다. 반면 알 힐랄은 4강에서 라이벌을 꺾고 올라온 알 아인을 4-2로 이기고,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 1차전 0-1 패, 2차전 0-0 무를 기록하며 합산 스코어 0-1로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에게 사상 첫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를 내주고 말았다.

3.1.1. K리그의 복수

2009년 결승전 알 이티하드 상대는 포항 스틸러스와 만났다. 누가 이기든지 아시아 최초 3회 우승이라는 타이틀에 아시아 축구 언론들 관심이 도쿄로 쏠려 있는 가운데 대부분 전문가들은 알 이티하드의 무난한 승리 를 예상했다.

결승전 시작과 동시에 파상공세를 퍼부었지만 도리어 포항 스틸러스는 미드필더에서 맞불을 놓으며 전혀 밀리지 않는 경기를 이어간다. 일반적인 전력이라면 K리그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하는 포항이지만 알 이티하드의 공격을 적재적소에서 차단하는 한 편 어설프게 수비위주로 나가다 쌈싸먹히느니, 과감하게 공격으로 맞서 난타전으로 이어갔고, 세트피스 기회를 잘 살려 노병준의 프리킥 골과, 김형일의 헤딩골로 알 이티하드는 연달아 2골을 얻어 맞았다.
총공격을 펼친 끝에 후반 74분에 사우디국대선수인 모하메드 누르가 만회골을 넣고 1점차로 추격하면서 다시 파상공세를 이어갔지만 포항의 골키퍼 신화용의 슈퍼 세이브가 이어지면서 추가골을 뽑아내지 못해 결국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고 포항의 3회 우승이자 AFC 대회 최다 우승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경기는 K리그 최초의 반격이며 포항은 처음으로 만난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승리한 클럽이 되었고, 현재까지 맞대결에서 패한 적이 없는 유일한 K리그 팀이 됐다.

2011년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서울을 3:2로 꺾고 4강전에 진출하여 전북현대를 만났는데 당시 전북은 세레소 오사카를 2차전에서 6:1로 대승하고 도합 9:5로 4강에 진출한 팀이었다.

알 이티하드는 1차전 홈경기에서 전반 1분 에닝요의 코너킥이 알 이티하드 수비수, 골키퍼 실수로 인해 골로 연결되면서 0:1로 쫓기게 됐다.
하지만 김민식이 골킥 실수를 범하면서 이것이 알 이티하드 하자지의 골로 이어져 1:1이 되었고 전반 18분에도 김상식이 걷어낸다는 게 실책이 되어 하자지에게 추가골을 허용해 2:1로 역전했다. 우려했던 침대축구는 나오지 않았지만 알 이티하드 거센 공격에 전북은 고전하고 불안한 수비력으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 시작하자 전북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닥공 전술을 구사해 후반 12분 손승준의 천금같은 동점골과 32분 조성환의 역전골로 전북이 3:2로 원정에서 승리를 가져갔다.

알 이티하드는 원정에서 최소 2:0으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2차전 전주 원정을 떠났지만 전북은 홈에서 알 이티하드를 거세게 몰아 붙였고 엎친데 덮진격으로 홈에서 2골을 넣은 하자지가 조성환에게 신경전을 벌이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박치기를 해 퇴장을 당했다. 수적 열세에 몰린 알 이티하드는 전반 22분 에닝요에게 선제골을 내주고 24분 정성훈의 추가득점이 무효처리가 되었지만 36분 에닝요의 코너킥이 바로 득점으로 연결돼 2:0이 되었다.
후반 시작에도 전북은 알 이티하드를 몰아 붙였지만 추가득점에 실패했고, 오히려 경고 때문에 제대로 된 플레이를 펼치지 못할때 후반 27분 웬델이 역습 상황에서 1골을 만회했다.
2:1 상황에서 전북은 경고 때문에 수비에 약간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고 알 이티하드는 2골을 더 넣어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갔다. 그러던도중 로브렉이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해 10명 vs 10명 상황이 되 알 이티하드에게 기회가 되었지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경기가 종료되었고 종합 5:3으로 전북에게 결승 티켓을 내주게 된다.

포항에 이어 전북도 2번째로 알 이티하드를 상대로 승리한 클럽이 되었고 전북은 7년전 2004년 4강의 아픔을 알 이티하드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3.2. J리그와 악연

알 이티하드의 희생양은 K리그만이 아니었다.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나고야와 알 이티하드가 격돌했는데 알 이티하드는 차원이 다른 경기력을 과시하며 1차전 홈에서 나고야를 6:2로 박살냈다. 이 경기로 J리그 팬들은 충격에 빠졌다.
전반에는 나고야가 2골을 넣어서 2:1로 이기고 있었지만 후반 중반에 들어서 맹공을 펼치는 알 이티하드의 공세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기 시작하여 대량 실점을 당했다. 나고야는 주전 골키퍼인 나라자키 세이고가 부상으로 결장한 것도 컸다.

2차전 원정에서도 2:1로 승리하며 종합전적 8:3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2차전도 스코어만 2:1이었을 뿐이지 경기 내용상으로는 12:1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AFC 개편 이후 본선에서 알 이티하드와 J리그 팀이 맞붙은 건 이 경기가 유일하지만 임팩트가 너무 커서 J리그도 한동안 알 이티하드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3.3. 중국 슈퍼 리그와 악연

동아시아 킬러답게 중국 슈퍼리그 또한 만나는 족족 희생양이 됐다.

2004년 대회때 8강에서 다롄 스더를 상대로 중국 특유의 소림축구에 고전했지만 2:1로 신승하며 4강에 올라갔다.

2005년 대회에서도 8강에서 중국팀인 산둥 루넝을 만나자 알 이티하드는 중국축구 상대로 고전하지 않고 확실한 승리를 얻기 위해 중국 소림축구 파훼법을 찾으러 몆몆 관계자를 중국으로 파견해 중국 축구 를 분석하기도 했다.[10] 이것이 통하여 1차전 원정에서 1:1로 비겼지만 2차전 홈에서 7:2로 대파하여 4강에 진출했다.

2012년 AFC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중국 슈퍼 리그 팀 중 유일하게 8강에 올라온 광저우 헝다 에버그란데[11]를 상대했다. 엄청난 돈다발로 다리오 콘카같은 거액선수들에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마르첼로 리피 감독으로 무장한 광저우에게 1차전 원정에서 1:2로 지면서 1차전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알 이티하드는 홈으로 광저우를 불러 2차전에서 4:2로 승리, 골득실 우위로 4강에 진출했다. 돈다발로 무장하며 우승을 노린 광저우 헝다의 꿈을 부수고 이번 시즌에도 중국 슈퍼 리그 팀에게 상처를 남겨줬다.

이 다음 시즌부터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까지는 동/서아시아로 나눠서 대결을 펼치게 됐는데, 이 당시 우승을 노리다 참패한 중국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4. 침대 축구를 거부한 깡패 축구

중동 팀 특성상 1점차로 이기고 있거나 골득실에 앞서 비기고 있다면 침대축구를 시전하고, 중동팀끼리도 침대축구를 하기로 유명한데 알 이티하드는 스타일이 완전 공격 축구며, 이기고 있어도 계속 공격해 큰 점수차로 이긴다.

이러한 스타일은 2004년 성남과 결승전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알 이티하드는 1차전 홈에서 3:1로 져서 성남의 우승이 기정 사실화 되는 분위기였다. 이 경기 패배로 알 이티하드는 감독까지 경질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성남 홈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남이 이길것으로 예측했으나 오히려 침대축구를 거부하고 깡패축구를 택한 알 이티하드가 5:0으로 대승하고 우승컵을 가져가면서 많은 K리그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이때 부터 동아시아는 알 이티하드의 눈치를 보게 된다.

조별리그에서 이란 조브아한, 세파한, 에스테그랄, 페르세폴리스에 침대축구를 당했고 사우디 내에서 침대축구 안하기로 유명한 알 힐랄도 알 이티하드 상대로 이기고 있으면 침대축구를 시전한다. 그리고 이란, 아랍에미리트 팀들이 알 이티하드, 알 힐랄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다.

특히, 이란팀 같은 경우는 홈에서 알 이티하드만 만나면 경기 시작부터 침대축구를 시전하고 드로잉할 때 공을 바꿔달라고 신경질을 내는 한편 안 부딪쳤는데도 할리우드 액션으로 차에 치인 것같이 넘어져서 의료진 투입을 요청해서 경기를 3~5분간 지연시키는 행동으로 알 이티하드 선수들이 분노해서 신경전을 넘어 벤치 클리어링까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같은 알 힐랄도 이란팀에게 선제골을 내주면 침대축구에 끌려가다가 패배하거나 겨우 비긴다.

알 이티하드도 침대축구에 많은 피해를 보자, 2004년도 부터 대대적으로 팀 개편하면서 오일머니로 남미, 유럽선수를 영입해 깡패축구를 만들어서 상대팀에게 침대축구의 기회를 주지도 않고 계속 몰아쳐서 큰 점수 차이로 이기는 깡패축구를 시전하면서 2008-2009시즌에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알 힐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 알 이티하드는 일반적인 중동팀과는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2013년 FA컵인 사우디아라비아 챔피언스 컵에서도 리그 우승팀 알 파스를 홈에서 2:0, 원정에서도 4:0으로 물리쳐 깡패축구에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결승에서도 알 샤밥을 4:2로 꺾고 우승하면서 침대축구를 완전히 거스르는 팀인걸 확실하게 알렸다.

5. 여담

6. 주요 선수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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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파일:도쿄 베르디 로고.svg 도쿄 베르디 1987
1회
7 파일:알 사드 SC 로고.svg 알 사드 SC 1988-89 2011
2회
8 파일:랴오닝 훙윈 로고.svg 랴오닝 훙윈 1989-90
1회
9 파일:알 힐랄 SFC 엠블럼.svg 알 힐랄 SFC 199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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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파일:PAS Tehran FC Emblem.png 파스 테헤란 FC 1992-93
1회
11 파일:태국 농민은행FC.png 태국 농민은행 FC 1993-94 1994-95
2회
12 파일:성남 FC 엠블럼.svg 성남 FC 199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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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파일:포항 스틸러스 로고.svg 포항 스틸러스 1996-9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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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파일:주빌로 이와타 로고.svg 주빌로 이와타 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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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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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18 파일:전북 현대 모터스 엠블럼.svg 전북 현대 모터스 20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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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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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구단 국가 첫 우승 횟수
1 파일:페르세폴리스 FC 엠블럼.svg 페르세폴리스 파일:이란 국기.svg 1990-91
1회
2 파일:요코하마 F. 마리노스 로고.svg 요코하마 F. 마리노스 파일:일본 국기.svg 1991-92 ★★
2회
3 파일:알 카디시야 FC 로고.png 알 카디시야 FC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3-94
1회
4 파일:요코하마 플뤼겔스 로고.svg 요코하마 플뤼겔스 파일:일본 국기.svg 1994-95
1회
5 파일:쇼난 벨마레 로고.svg 쇼난 벨마레 파일:일본 국기.svg 1995
1회
6 파일:알 힐랄 SFC 엠블럼.svg 알 힐랄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6-97 ★★
2회
7 파일:알 나스르 FC 엠블럼.svg 알 나스르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7-98
1회
8 파일:알 이티하드 FC 엠블럼.svg 알 이티하드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1998-99
1회
9 파일:시미즈 S펄스 로고.svg 시미즈 S펄스 파일:일본 국기.svg 1999-00
1회
10 파일:알 샤바브 FC 엠블럼.svg 알 샤바브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2000-01
1회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 우승 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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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알 이티하드도 축구 말고도 농구와 핸드볼, 수구, 크리켓, 배구, 심지어 야구까지 12개에 이르는 구기종목 및 스포츠 종목으로 20개 팀을 운영 중인데 알 힐랄도 마찬가지라서 다른 종목에서도 똑같이 서로 라이벌로 이를 갈고 있다고 한다. 2010년까지 알 힐랄은 휘하 모든 스포츠에서 689개의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알 이티하드는 모두 678개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걸로도 서로 자랑할 정도로 원수지간이라고 한다. [2] 사족으로 맨체스터 시티 FC의 팬이라면 맨시티 유니폼 앞에 “ ETIHAD"라고 쓰여 있는 걸 봤을텐데, 이건 구단주 만수르의 가문인 UAE 아부다비 토후국 왕실에서 운영하는 항공사이다. 즉, 에티하드 항공도 본뜻은 “연합( ???) 항공” 정도로 볼 수 있겠다. [3] 당시 사실상 오피셜 수준인 구단 유니폼 인증 사진까지 찍었다. [4] 하필 칼데론 감독은 이전에 알 이티하드 감독에 있다가 챔피언스리그 우승 좌절과 같이 리그에서 알 힐랄에게 0-5로 대패한 것 때문에 경질되어 알 힐랄로 나중에 오게 되었던 경력이 있다. [5] 이때 부산은 홈경기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아닌 대우 로얄즈 시절 홈구장인 구덕운동장에서 했다. 리즈시절인 로얄즈 시절의 영광을 기억하는 관중들을 모으기 위한 마케팅이였고 성공하여 많은 관중이 들어차기도 했다. 그러나 홈에서 부산이 0:5로 박살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6] 알 이티하드의 칼데론 감독은 4강 2차전이 끝난 후 곧바로 구단 수뇌부에 장기 체류를 원한다고 전했고 수뇌부는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7] 사우디 축구팀이 거의 그러듯 여기도 구단주가 왕족이다. 하지만 왕족도 서열 별로 그 재산규모가 천차만별이라 이천수가 활약했던 알 나스르는 재정난에 빠진 적이 있다. [8] 이때는 우승팀이 다음대회 8강에 직행했다. 더불어 알 이티하드는 리그에선 알 샤바브에게 져서 준우승했는데 알 샤바브는 2006년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울산 현대에게 1, 2차전 각각 0:6, 0:1로 완패하며 감독인 움베르토 쿠엘류가 해임됐다. [9] 알 카라마의 피지컬 위주의 거친 플레이에 고전하다가 결국 피지컬이 강한 수비수 레다 투카르가 부상으로 실려나가자 그야말로 떡실신 당했다. [10] 같은 대회의 4강 상대인 부산 아이파크, 2009년 4강 상대인 나고야를 상대로도 같은 방법을 썼다. [11] 참고로 광저우는 조별 예선에서 전년도 준우승 팀이었던 전북 현대 모터스를 원정에서 5:1로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