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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so II.a Gartzeitz | ||
가문 | 세메노 왕조 | |
생몰년도 | 미상 ~ 994년 | |
출생지 | 팜플로나 왕국 | |
사망지 | 팜플로나 왕국 | |
재위 기간 |
팜플로나 왕국 국왕 | 970년 - 994년 |
아버지 | 가르치아 2세 산치츠 | |
어머니 |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 | |
형제 | 토타 가르체이츠, 라미로 가르체이츠, 우라카 가르체이츠, 세메노 가르체이츠 | |
배우자 | 우라카 페르난데스 | |
자녀 | 가르치아 3세 산치츠, 라미로, 온찰루 산치츠, 아다 산치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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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팜플로나 왕국 7대 국왕. 그의 시대에 처음으로 '나바라 국왕'의 칭호를 사용했다.2. 생애
팜플로나 왕국 6대 국왕 가르치아 2세 산치츠와 아라곤 백작 갈린도 아스나레스 2세의 딸인 안드레고토 가린도이츠의 장남이다. 여동생으로 토타 가르체이츠를 두었고, 이복 형제로 라미로 가르체이츠, 우라카 가르체이츠, 세메노 가르체이츠가 있었다. 970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왕위에 올랐고, 972년 산안드레스 데시루에냐 수도원을 설립했다. 976년 팜플로나 왕국의 알벨다 수도원에서 비길라 사본(Codex Vigilanus)이 제작되었다. 이 저서는 이베리아 반도의 역사를 고대부터 10세기까지 서술한 여러 사료를 수집하여 편집한 것으로, 이베리아 국가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사료로 취급된다.976년 10월, 후우마이야 왕조의 아미르 알 하킴 2세가 사망했다. 그 뒤를 이어 11살의 어린 아들 히샴 2세가 즉위했고 알 하킴 2세의 부장이자 사위인 알 하지브 알 만수르가 섭정을 맡았다. 알 만수르는 기독교를 혐오했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합하겠다는 야망에 불탄 인물이었다. 그는 알안달루스 내 기독교도들을 가혹하게 탄압하는 한편 레온 왕국, 카스티야 백국, 팜플로나 왕국 등 북방의 기독교 국가들을 향한 대규모 원정을 단행했다. 기독교 군주들은 이에 맞서 연합했지만, 981년 토르데실라(Tordesillas)에서 12km 떨어진 루에다(Rueda)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했다.
안초 2세는 왕국을 어떻게든 보전하고자 코르도바로 직접 가서 알 만수르에게 많은 선물을 바치고 충성을 서약하는 한편, 자신의 딸 우라카 산치츠를 그에게 시집보내기로 했다. 그러나 알 만수르는 989년, 991년, 992년에 걸쳐 팜플로나 왕국을 포함한 북방의 기독교 국가들을 계속 침략했다. 결국 안초 2세는 992년에 또다시 코르도바로 가서 봉신 서약을 맺고 993년 아들 온찰루 산치츠를 인질로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 만수르는 994년에 또다시 팜플로나 왕국을 침략했고, 안초 2세는 왕국의 암울한 운명을 근심하다가 사망했다. 사후 장남 가르치아 3세 산치츠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는 987년 산후안 데라페냐 수도원에 알라스투에(Alastue) 마을을 기증하면서, 기증 문서에 '나바라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이것이 나바라 왕국이 공식 문서에서 언급된 최초의 사례다. 하지만 '나바라 왕국'이란 호칭은 11세기 즈음에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3. 가족 관계
- 우라카 페르난데스(? ~ 1007): 카스티야 백작 페르난도 곤잘레스의 딸.
- 가르치아 3세 산치츠(? ~ 1000 또는 1004): 팜플로나 왕국 8대 국왕.
- 라미로 산치츠(? ~ 992): 안초 2세가 992년 사망한 아들의 영혼을 위해 산밀란 데라코골라 수도원에 기부한 것 외에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 온찰루 산치츠(? ~ 1004 이전): 팜플로나 왕국에 속한 아라곤의 통치자.
- 우라카 산치츠(? ~ ?): 알 만수르의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