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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22:47:37

안지만/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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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 라이온즈 시절
1.1. 2003년~2009년 시즌1.2. 2010 시즌1.3. 2011 시즌1.4. 2012 시즌1.5. 2013 시즌1.6. 2014 시즌1.7. 2015 시즌1.8. 2016 시즌
2. 국가대표 경력

1. 삼성 라이온즈 시절

1.1. 2003년~2009년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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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초경량투수였던 신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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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적화 되기 전의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

고교시절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프로행이 불투명 했지만 3학년 대붕기 예선에서 삼성스카우터들 앞에서 최고 구속 143km를 던지며 잠재력을 인정받아 2차 6라운드에서 삼성에 깜짝 지명됐다.
애초에 삼성에 입단할 때는 65kg의 초경량 투수로 입단했으나[1] 몸무게를 불리라는 말[2]에 열심히 2009년까지 80kg로 몸을 불렸다.[3] 삼적화의 대표적인 사례.현재는 183cm,104kg, 30mm 의 탄탄하고 육중한 몸을 유지하고있다.

2003년 4월 15일에 1군 첫 등판을 했다.

입단 4년차인 2005년부터 두각을 드러내 계투진의 한 자리를 맡아 8승 14홀드 평균자책 3.48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6년에는 겨우 7경기 등판해, 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하고도 유일하게 연봉이 깎이는 수모를 겪었다.

2007년에는 팀의 열악한 선발 사정으로 차우찬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았다. 이 때 보직은 스윙맨이었다.

2008년에는 정현욱, 권혁과 함께 안정권 트리오를 구축했다.

2009년에는 윤성환, 크루세타를 제외한 선발진의 붕괴로 선발로 등판했던 경기가 조금 더 많았다. 다만, 시즌 중반에 부상을 입어 시즌아웃을 당했다. 안지만의 부상은 삼성의 2009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로 이어졌다. 선발과 불펜 어디에든 등판이 가능했기에 선발진과 계투진이 모두 큰 타격을 입었다. 선발진에는 나이트가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지만 4~5선발 차우찬 배영수가 완전히 부진했으며, 계투진에도 권혁 정현욱의 잦은 등판으로 이어졌다.

1.2. 2010 시즌

2010년에는 제대로 포텐을 터뜨리며 정상급 계투로 평가받기 시작했으며, 이후로는 줄곧 삼성 불펜의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권혁도 내려가고 오승환도 내려간 삼성 불펜에서 제일 잘 던졌다. 7월 성적이 5⅔이닝 4K 무실점!! 9월 9승 3패 9세이브 8홀드 평균자책점 2.65 기록했었으니 5회까지 리드시 31전 전승을 기록중인 삼성 불펜의 보배라고 할 수 있겠다.

포텐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지만이 등판하면 삼성 팬들은 '팀은 이기고 있다. 하지만 안지만..."?? 지만이형이 이거 개솔이데...이라는 말을 뱉어댔을 정도로 좋지 못했으나 2010년에 포텐이 완벽하게 터진 모습으로 막강 삼성 불펜진에서도 가장 중심에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포텐을 터뜨린 계기로는 KIA와의 연장 경기서 등판, 안타 3개를 내리 쳐맞고 무사 만루 상황을 자초한 뒤 나지완, 안치홍, 이종범을 상대로 전부 삼진을 잡아내며 자신감을 얻었던 게 결정적이었다.[4] 그 당시 KIA 타자들은 넓어진 스트라이크 존 때문에 괜한 공에 스윙만 해대다 들어갔다고.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5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 ⅔이닝 5피안타 3볼넷 1실점 1자책점 평균 자책점 2.45, 1승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3 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0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2010년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7 ⅓이닝 6피안타 4볼넷 1사구(死球) 3K 1실점 1자책점 평균 자책점 1.23, 1승 1세이브 1블론세이브를 기록했다.

1.3. 2011 시즌

시즌 초반에 장원삼이 재활로 빠지는 등 선발진에 구멍이 나자 임시로 선발 등판을 했다. 4월 24일까지 4경기 선발 등판하여 22이닝 동안 2승 2패 2QS ERA 4.76을 기록했다. 이후 불펜으로 돌아갔다가 5월 17일 다시 선발로 등판해 승리를 챙겼다. 그러나 류중일 감독이 "더 이상 안지만이 선발로 등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다시 선발 등판하지는 않을 전망이다.[5]

이후 삼성 중계진의 중심 투수로 맹활약하며 2011년 8월 7일 기준으로 31경기 64⅓이닝 10승 4패 10홀드, 방어율 3.08 탈삼진 52개를 기록했다. 구원 등판 시 기록은 26경기 36이닝 7승 2패 10홀드, 방어율 1.50 탈삼진 33개였다.

패넌트레이스 종료 후 순수 중간계투로 낸 기록은 42경기 57⅔이닝 10자책점 평균자책점 1.56으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기록이었다. 2011년 정대현의 평균자책점이 1.48, 정우람의 평균자책점이 1.81인 점을 생각하면 다른 팀의 우투수 중엔 비교 대상조차 없었다. 당시 KBO의 탑급 계투는 우투는 오승환, 좌투는 정우람, 언더는 정대현이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특급 허리로 그야말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 끝판왕에 필적하는 구위로 SK 타자들을 완전 벙찌게 만들었다. 1, 2, 4, 5차전에 나와 모두 홀드를 챙겼다. 특히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이기던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의 그의 활약은 그야말로 폭풍간지였다. 팀이 스코어 5:4로 쫓기던 7회말 무사 1, 3루라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공 4개로 아웃카운트 3개를 모두 잡는 MVP급 활약을 펼쳤다. 이날 2이닝 22투구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4로 이겼다.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4⅓이닝 3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 4홀드를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4승 1패 우승에 기여했다.[6]

시즌 후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는 흔히 비만소대라 말하는 건강소대에 배속되었다.

1.4. 2012 시즌

등번호를 11번으로 바꿨다. 그간 1번을 탐내왔으나 1번은 윤성환이 달고 있기에, 그나마 비슷한 번호로 바꾼 것. 그런데 1번에 대한 집착을 못 버렸는지 1과 1사이에 '×'를 그려 넣었다. # 하지만 결국 "넌 28번이 어울려!"라는 조언을 받고 5월 4일부로 다시 28번을 달게 되었다. # 그리고 2014 아시안게임때가 돼서야 비로소 자기가 원하던 1번을 달게 되었다.

2011 시즌 후 훈련소에서 4주 훈련을 받느라 전지훈련에 늦게 합류해 구위도 떨어지고 몸상태도 안 좋은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등, 2011 시즌과 달리 시즌 출발이 좋지 않다.

5월 4일 오승환, 정현욱과 술푸러 다녔다는 글이 돌면서 팀이 부진하는 상황에 잘하는 짓이라고 까였다.

결국 5월 이후로 등번호 11번을 다시 원래 달았던 번호인 28번으로 바꿔 달았다. 신기하게도 28번으로 바꾼 이후부터는 원래의 위력을 되찾았다.

2012 페넌트레이스 성적은 1승 2패 28홀드(2위)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했다. 2012년이 안지만 개인 최고 시즌이었다. 필승계투로서 적지 않은 홀드를 챙겼지만 비룡 군단 박씨 성을 가진 특급 노예가 홀드 신기록(34홀드)을 갈아치운 바람에 다소 묻혔다.

팀의 대선배인 이승엽이 친 통산 500호 홈런을 슬라이딩 캐치로 잡아내 구단에 기증했다고 한다[7]. #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6경기 중 4경기에 등판하여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1볼넷 8탈삼진 4실점 4자책점 평균자책점 7.20, 2홀드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1.5.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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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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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 불안했으나 곧 밸런스를 되찾아 홀드 선두에 오르는 등 활약했다. 다만 6월 들어 승계주자 실점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났다.

8월 14일 SK 와이번스경기에서 0.2이닝동안 주자 2명을 내보냈지만 삼진으로 처리하고, 전 구단 상대 홀드기록을 세웠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야구 결승전에서 7회 말 등판, 대만에 3:2로 뒤진데다 무사 주자 1,3루라는 위기 상황에서 삼진 1, 뜬공 2로 처리하며 무실점으로 위기를 넘겼고, 이게 8회의 기적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투구로 여러 미필 선수들을 구하며 안순신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시즌 뒤 FA자격을 취득했다. 4년 65억(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에 삼성에 잔류하며 불펜투수 최고액을 크게 경신한 주인공이 되었다.[8][9] 그러나 공개되지 않은 옵션금액이 상당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아래 2019년 문단 참고.

1.7.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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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BO 리그 홀드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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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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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중 인터넷 불법도박,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 문제가 터지면서 보류명단에서 제외되며 방출되었다.

2. 국가대표 경력

2.1.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1차전 대만과의 경기에서 8회 초 1사 상황에 봉중근 이후 등판, 안지만 놀이를 다시금 시전하며 5아웃을 전부 삼진으로 잡고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켰다. 단 점수차가 좀 있었기에 세이브는 얻지 못했다.

이 대회에서 유니폼 네임 J(지) M(만) AN(안)[10] 이게 마치 래퍼의 이름 같이 보여서 힙지만이란 별명과 너무 잘 어울린 나머지 J-MAN(제이맨)이란 별명도 추가. 불암콩콩코믹스에도 등장.

2.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4일 대만과의 예선에서 8회에 등판해 1이닝 2피안타 2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8회 콜드게임으로 경기가 끝나면서 안지만이 이 날 마지막 투수였다.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1점 지고 있는 7회말에 양현종이 연속 안타를 맞으면서 무사 1,3루가 되자 양현종에 이어 등판했다. 3타자를 삼진, 중견수 플라이, 좌익수 플라이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처음 등판할때는 자신이 독박 쓰겠구나 생각하고 이 악물고 던졌는데 예상외로 잘 던지게 되었다고 한다. 안지만의 호투는 경기 흐름을 대표팀으로 가져왔고, 8회 초에 타자들은 황재균의 쐐기타를 포함해 대거 4득점하면서 역전했다. 안지만은 8회말에도 등판해 3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한 후 임창용과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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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역전승의 1등 공신으로 꼽히면서 경기 후 시상식 때 대표팀 선수들은 류중일 감독의 헹가래 이후에 안지만의 이름을 연호하며 헹가래를 쳐줬다.


[1] 이마저도 너무 깡마른 게 부끄러워 늘려서 등록한 것이었다. 실제로는 입단 당시에 61kg이었다. 2015년 7월 10일 기사 180에 60kg이면 일반인 기준으로도 많이 저체중이다. [2] 사실 이정도면 심각한게 성인이 되고 나서 키가 자랐고 성인이 되고 수년간 왜소하다는 소리를 밥먹듯이 들었다는 이종범이나 정수근이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당시 168cm에 61kg이었다. 안지만도 약간 자라기는 했다지만 20살때 182cm는 되었는데도 61kg이었다고 하니 말도 안되는 수준. 이종범은 대학생활 3년간 키가 7cm 정도 많이 자랐다고 하고, 정수근도 프로생활 2년간 키가 많이 자랐다고 한다. [3] 보약을 먹여도 살이 불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의 말로는 경산의 밥이 너무나 맛있어 계속 먹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4] 이것에 빗대어 다른 투수들이 이 비슷한 상황을 연출할 때 안지만 놀이라고 부르게 된다. 만루 상황을 즐긴다고 해서 만루변태라는 별명도 추가 [5] 사실 구원 등판으로 얻은 승리가 더 많다. 선발 등판으로 3승, 구원 등판으로 8승 기록. [6]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기록한 4홀드는 2008년 당시 SK 와이번스 소속이었던 이승호가 기록한 4홀드와 타이기록이다. [7] 목동에서 친 홈런이었는데 목동구장은 외야석이 없고 외야에 불펜이 있다. [8] 불펜보강에 눈이 뒤집힌 옆나라 구단에서 템퍼링을 넣을 정도로 쟁탈전이 심했다. [9] 이후 2015년 말 SK에서 한화로 이적한 정우람의 4년 84억으로 안지만의 불펜투수 FA 최고액 계약은 1년 만에 경신되었다. [10] JMAN을 지 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지,만.안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