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안드레이 흘린카 Andrej Hlin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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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64년 9월 27일 |
오스트리아 제국 헝가리 왕국 로자헤그 | |
사망 | 1938년 8월 16일 (향년 73세) |
체코슬로바키아 루좀베르크 | |
국적 | 체코슬로바키아 |
종교 | 가톨릭 |
직업 | 종교인,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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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체코슬로바키아의 사제, 정치인.2. 생애
1905년 루좀베로크의 사제가 되었으며 1906년 헝가리 의회선거에서 슬로바키아의 민족주의 후보들을 지지했다.결국 슬로바키아인들을 선동해 헝가리에 대항하도록 만들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5월에 교구민에게 선동적 고별사를 했다는 죄목으로 1년 6개월 형을 추가받게 되었다.
1918년 슬로바키아 인민당의 지도자가 되어 체코와의 통합을 지지했으나 이듬해 갑자기 통합에 의혹을 품고 슬로바키아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외교 문서를 파리 평화회의에 보냈으며 토마시 가리크 마사리크가 피츠버그 조약에서 약속한 슬로바키아 자치권을 체코인들이 이행하지 않는다면서 비난했다.
이후 체코와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1927년 그는 당 부서기 요제프 티소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직위를 받는 것을 허용한다. 그러나 2년 후 그의 당은 다시 체코에 적대적으로 돌아섰으며 그 당시 흘린카는 다른 당 부서기인 벨라 티카가 헝가리 첩보원 활동으로 반역죄로 기소되었을 때 그의 해임을 거절하기까지 했다.
3. 사후
비록 흘린카 본인은 슬로바키아의 애국자 그 자체였으나 동기 자체는 순수하지 못했으며, 체코에 대해 광적으로 적대감을 보였고 그는 이것이 슬로바키아의 대의명분에 비호의적인 독일인과 마자르인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과 체코슬로바키아의 파괴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결국 그가 죽은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의 침공을 받고 뮌헨 협정을 통해 헝가리 왕국을 비롯한 주변국에게 영토를 뜯기면서 동시에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으로 전락, 이후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과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으로 갈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