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퀼라 전역 Aquilan Campa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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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타우라 전쟁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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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
1912년 ~ 1914년 | ||
장소 | ||
아퀼라 왕국 전역 | ||
교전국 | ||
아퀼라 왕국 |
안타레스 제국 | |
지휘관[1] | ||
루카스 실바 |
칼빈 타우 알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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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 | ||
안타레스 제국의 승리 | ||
영향 | ||
아퀼라 왕국의 항복 안타레스의 아퀼라 합병 베가 전역의 단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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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 규모 | ||
불명 | ||
모티브 | ||
제1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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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기는 탈로나 방송국, 아퀼라의 마지막 요새에서 생중계를 시작합니다. (중략) 우리 사랑하는 도시의 모든 지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농부, 상인, 학생, 군인들까지- 용감한 남녀 모두가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습니다. (중략) 이 방송은 우리들의 마지막 패배 소식이 아닙니다. 패배의 시발점 또한 아닙니다. 이건 우리 항전의 시작입니다.
탈로나 방송국의 마지막 방송
탈로나 방송국의 마지막 방송
"우리 시민들은 우리가 말하는 동안 죽어가고 있습니다."
탈로나의 마지막 벙커에서 한 소령이[2] 말한 말
탈로나의 마지막 벙커에서 한 소령이[2] 말한 말
아퀼라 전역은 1912년 가을, 안타레스 제국이 오랜 역사, 정치적 라이벌이였던 아퀼라 왕국을 침공하며 발생한 전쟁으로, 남부 코르부스 전쟁을 제외한 센타우라 전쟁을 첫 신호탄으로 본다.
2. 배경
리브라 제국이 멸망하고 생긴 센타우라의 많은 군소국가들은 남동부 센타우라 지역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수세기간 갈등했고, 끝없는 갈등 끝에 남동부 센타우라에 지배권을 확립한 국가가 바로 아퀼라 왕국이였다. 아퀼라는 남동부 영토에 지배권을 확고하고 난 뒤 계속해서 영토를 확장해 남부센타우라의 다른 강대국들인 안타레스, 세터스와 국경을 맞대게 되었다.이후 아퀼라는 국경분쟁으로 1700년대 후반 안타레스 제국과 그루스 왕국이 연합하여 아퀼라를 침공하지만, 아퀼라는 이 공격을 모두 격퇴하곤 오히려 안타레스와 그루스의 영토를 강탈하였다. 전쟁이후 1875년 안타레스가 민주화된 아퀼라가 약해졌다고 믿곤 또 아퀼라를 침공하지만, 또 격퇴당해 패배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안타레스와 아퀼라 간 라이벌 관계가 성립되며 현 아퀼라 전역이 발발하게 되는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안타레스의 황제 칼빈 타우의 꿈 역시 전쟁이 발발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안타레스의 왕자였던 칼빈은 1875년 안타레스-아퀼라 전쟁에 참전해 트라우마를 겪게 되었고, 전쟁에 대한 강한 증오심이 생겼다. 그런데 칼빈 타우는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이 미쳐버렸는지, 안타레스가 전쟁을 통해 센타우라 대륙을 전부 통일하면 안타레스의 통치 아래 전 대륙이 모두 평화로울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전쟁광 폭군이 된 것도 아퀼라 전역이 발발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3. 전개
3.1. 안타레스 육군의 공세와 불의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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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 남부 국경과 세터스 방면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안타레스 육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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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고리에서 펄럭이는 아퀼라 국기 |
3.2. 아퀼라의 반격, 스코트퍼치[5]
1913년, 아퀼라 북부 전선에서 아퀼라 포대들에 의해 패배한 안타레스 육군은 그들의 항공 전력으로부터 지원을 받기위해 스코트퍼치의 비행장으로 후퇴하는데, 뒤에서 몰래 아퀼라 육군이 추격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들이 스코트퍼치의 비행장에 도착했을때, 아퀼라군도 안타레스 군을 기습하기 시작했다.3.3. 소각 작전
안타레스 육군과 당시 안타레스의 황제 칼빈 타우는 아퀼라 육군의 완강한 저항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칼빈 황제의 군사 고문들은 칼빈 황제를 설득하여 아퀼라 육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약화시키기 위해 아퀼라의 많은 숲과 초원을 닥치는데로 불태우는 작전 일명 소각(The Scorch) 작전의 승인을 요구하였다. 칼빈 황제는 너무 파괴적이고 비인도적인 작전이였기에 고심했지만, 고문들의 계속되는 설득에 개시에후 결국 1주일 후에는 전면 중단한다는 조건 하 작전의 승인을 받았으며, 소각 작전이 시작되었다. 소각 자체는 1주일간 지속되었지만, 그 여파는 1년 간 이어지며 아퀼라의 촌락 30%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이 결과 아퀼라군의 사기 저하는 커녕 오히려 화를 돋구어 전 아퀼라가 분노하여 더욱 항쟁하는 결과를 만들어냈고, 이 아퀼라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한 방대한 화염은 아군인 안타레스 육군의 작전에도 차질을 빗게 만들었다[6].
3.4. 탈로나의 심장부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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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탈로나 코앞까지 진격한 안타레스 육군 |
3.5. 탈로나 전투
사실 안타레스 육군은 아퀼라보다도 아퀼라 민간인들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 할려고 노력하였다. 탈로나 원정군은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어 하였기에, 도심지에 대규모 포격을 개시하려는 것 자체를 꺼렸지만, 탈로나는 군사도시로서 중요 요충지이자 도심지 내에 민간인들이 모두 대피했다는 안타레스 군사 정보부의 거짓 첩보[7]와 상부의 압박으로 안타레스 육군은 어쩔 수 없이 대규모 포격을 개시한 것이였으며, 이 과정에서 탈로나의 방어를 책임지는 아퀼라군 사령부가 민간인을 보호해야할 군대임에도 민간인 대피가 군의 방어작전에 방해된다며 민간인들에게 대피령을 내리지 않아 탈로나에선 엄청난 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안타레스 육군 포병대는 대규모 포격이후 제한적인 포격 작전만 수행하고 있었고, 탈로나 원정군은 척후대를 보내 도시의 상황을 살피려 진격하는 와중 척후대는 탈로나 내부의 엄청난 살육의 현장을 목격하곤 민간인 대피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후 곧바로 상부에 이 사실을 전파하며 안타레스의 지휘관들은 이 사실에 당황하곤 포격 명령을 취하하였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처참히 살해당한 이후였다.안타레스 육군은 이러한 관경에도 진군해야 했다. 탈로나 내에는 아퀼라 육군과 남녀 시민 모두가 총칼을 들고 바리케이트를 급조해 방어진을 치고, 화염병을 제조하는 등, 탈로나로 진격중인 안타레스 육군을 상대로 격렬히 저항하였지만 결국 전력 차를 못이기고 모두 진압당하며 2년간 지속된 전쟁은 아퀼라 왕국이 안타레스 제국에게 항복하며 끝을 맺는다.
[1]
볼드체는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이다.
[2]
이 소령은 장군이 탈로나의 민간인들을 대피시키지 않은것에 대해 장군에게 왜 대피시키지 않았냐고 계속 말하다 결국 장군에게 권총으로 처형당한다.
[3]
소령을 처형한 사람이다.
[4]
이 말을 했을때 주변 장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아무도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한다.
[5]
참고로 여기는 안타레스에 의해 점령된 세터스 영토의 최동쪽이다.
[6]
이 소각 작전으로 인해 정작 안타레스 육군이 소각 작전후 점령한 지역에서도 그곳의 자원들이 다 불타서 얻을게 없었다고 한다.
[7]
정황상 최대한 빠르게 도시를 공략하기 위해 아군까지 기만해가며 이런 첩보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