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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00:19:19

아이저 리아인스 그레이언/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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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10px" <tablebordercolor=#8bbbe5,#8bbbe5><tablebgcolor=#8bbbe5,#8bbbe5> 아이저 리아인스 그레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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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bbbe5,#8bbbe5><colcolor=#000,#000> 작중 행적 챕터 1 · 챕터 2 · 챕터 3
인물 정보 인간관계

1. 개요

웹툰 《 세레나》의 남주인공 아이저 리아인스 그레이언의 인간관계를 저술한 문서.

2. 여자 관계

2.1. 세레나 세레니티

세상을 떠난 친구의 동생, 그리고 계약으로 맞이한 아내이다. 무관심하지만 이해되는 사람에서 짜증나지만 흥미로운 상대로,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결혼 초에는 극단적으로 사이가 나빴다. 세레나의 외조모인 이안사와 아이저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고 세레나의 동의 없이 계약 결혼을 강행했다. 따라서 서로 감정이 없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나, 세레나가 아이저가 언젠가 자신을 죽이고 세레니티 호텔을 완전히 빼앗을 거라고 오해하게 되는 계기가 발생했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사이가 극단적으로 틀어졌다.

세레나의 오해와 달리 과거에나 지금이나 세레나를 싫어한 적이 없다. 처음에는 세레나의 유별난 가문 사랑이 더스틴을 떠올리게 하여 오해하기도 했고, 눈빛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성가시고 귀찮다고 여긴 적은 있었다. 아이저는 성숙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끼는데, 세레나는 미숙함 투성이어서 더욱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1]

결혼 초반에는 세레니티의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세레나의 아픈 마음을 크게 신경쓰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대화를 할 필요성도 딱히 못느꼈다. 그래도 세레나와의 부부 관계는 이안사와 자신이 억지로 만든 만큼 그 책임을 다하려했다. 우울증이 심한 세레나를 굳이 자극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늘 날을 세우는 행위도 죽은 듯 지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전부 견뎌주었다. 단순히 아이저가 참을성이 대단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감정,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상실감, 지켜내야 하는 것이 있는 처지 등, 세레나가 겪었던 상황을 아이저가 먼저 겪어보았기 때문이다. 세레나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껴버려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이해 때문에 자신을 향한 미움 조차 미워하지 못했다. 그 미움이 아이저가 그레이언 가문이라는 이유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그레이언을 미워하는 한 사람으로서 세레나가 미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깊은 이해로 미움을 품어주었다. 프리드릭 블룸을 아이저로부터 지켜줄 호위무사로 고용하여 침실까지 들이고, 대외적으로는 정부로 둔갑시켜 데리고 다녀 더러운 추문이 나돌 때도 포용했다.

이제는 떠나갔지만 친했던 친구 하퍼스의 동생이기도 하니 더욱 눈감아줄 수 있었다. 하퍼스는 생전 동생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자존심이 세고 앙칼지지만 사실 속이 여려서 눈물도 많고 애교도 많다고 하였다. 게다가 아이저가 경영을 하며 동생을 만나게 되면 친절하게 대해달가고 부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 되어버렸다. 부탁을 들을 당시에는 그레이언 가문이 세레나를 언제 적으로 돌릴 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약속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 겁났고, 하퍼스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겠다고 하지 못했다.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세레니티가 재정적 위기를 극복한 뒤로는 아이저도 여유가 생겨 세레나의 위신을 챙겨줄 수 있게 되었다. 세레나를 은근히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불쾌감을 드러내며 '아내' 세레나와 '경영자' 세레나의 입지 모두를 수호하려했다. 그러나 세레나의 적대감은 더욱 심해져만 갔고 이안사는 점점 쇠약해져갔다. 또한 곧있으면 호텔 업무가 매우 많아질 것이었기에 아이저 혼자 호텔 경영을 감당하기란 힘들었다. 세레나가 위기를 극복하고 경영을 배우도록 만들기 위해 계책을 새로 만들어야했다.

아이저는 위악을 과장하기로 핬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게 만들 방법은 자신을 향한 적개심을 이용하는 것 뿐이라 판단했고, 그 판단은 적중했다. 세레나는 망나니같은 생활의 습관이 남아 있었지만 타고난 머리가 명석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부모님을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배워 알고 있는 것들도 많았다. 그동안 라울을 통해 보냈던 서류들의 내용도 모두 기억하고 있어 아이저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 기억과 세레나만의 정보를 조합하여 테라스 시공에 투입될 바닥재 가격이 부풀려졌다는 것을 기막히게 눈치채기까지 했다.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ff,#1f2023>고요하고 잔잔한 호수가 아닌 크고 웅장하게 제 소리를 내는 파도가 되어 제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귀찮게, 거슬리게, 신경 쓰이게, 꾸준히 내게 물방울을 튀어대는 존재.

...그렇기에 조금은 흥미롭게 지켜봤을 뿐이야. 따분한 일상 속에 그나마의 재밋거리, ...단지 그 뿐.
25화 ||

호텔 경영을 함께 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점점 개선되어갔다. 또한 세레나에게는 그동안 만나왔던 성숙하고 일을 잘하는 사람들과 다른 결의 장점도 있었다. 능숙하게 일하는 다른 이들에게선 편안함을 느꼈지만 금방 지루해진 반면, 세레나는 처음에는 미숙함으로 신경을 자극하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든 해내는 모습으로 꾸준히 재미를 주었다. 아이저가 가르친 내용도 곧잘 흡수했고, 그동안 보아온 사람들과는 반응이 격한 것도 재미있었다. 가문에 대한 애정이나 고집, 과제에 몰두하는 태도 등 나름의 자질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세레나에게 이성적인 관심이 있다는 것은 부정했다.

이 부정을 우습게 만드는 일이 이틀동안 일어났다. 아이저와 세레나가 헤럴드 회장의 집에 방문하기로 한 날, 세레나는 블라우스 단추가 뒤에 달려있던 탓에 헤매고 있었고, 하필 그곳엔 여자 종업원이 없어서 아이저가 도와줘야했다. 화장도 미숙해서 립스틱 양조절을 하지 못해 아이저가 입술을 닦아주어야했다. 이런 예기치못한 미숙함에 흥미도 느꼈지만 입술을 만진 그 감촉이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또한 세레나의 숨겨진 속내를 듣게된 날이기도 했다. 후식으로 세레나가 좋아한다고 들었다며 복숭아를 대접했는데, 세레나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 순간 세레나의 어머니가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었다는 기록을 보았던 기억이 떠올라 세레나가 복숭아를 입에 넣기 직전에 물컵을 깨서 회장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뒤 복숭아를 이미 먹은 자신의 접시와 바꿔주었다. 세레나가 자신의 복숭아 알레르기를 어떻게 알았냐고 추궁함으로써 아이저의 추측이 맞았음이 드러났다. 아이저는 복숭아를 먹었다가 건강이 위험해지면 행사에 차질이 있다며 질책했는데, 세레나는 약점을 잡히기 싫었다고 답했다. 벨라티아의 복숭아 알레르기가 유명했는지 세레니티에 빚을 진 사람 중 하나가 벨라티아가 먹을 음식에 알아차릴 수 없도록 복숭아를 섞었고 벨라티아는 자칫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사연이 있었다. 그걸 본 뒤로 약점은 숨기고 강한 척 해야한다고 배웠다고 한다. 더욱이 회장 부인의 얼굴은 처음보지만 가면 파티에서 본 적이 있는데, 세레나의 험담을 했다고 한다. 목소리가 특이해서 유독 기억에 남았고, 그렇게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 앞에서 복숭아 알레르기라는 약점을 드러내기 싫었다고 말했다. 세레나는 벨라티아에 비해 복숭아 알레르기의 정도가 약해서 한 조각 정도는 먹을 수 있었기에 눈 앞에서 먹어보여서 강함을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아이저는 이러한 속사정을 듣고 짠하면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회장의 집에 다녀온 뒤로 아이저는 세레나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본다거나, 입술을 계속 신경쓰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시선을 보내기 시작한다.

추후에 아이저만 간직하고 있던 사실이 더 공개되었는데, 아이저는 세레나의 약한 면도 함께 봐버렸고, 모순적이게도 약한 면에서 강한 면을 찾아내게 되면서 존경심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악천후 때문에 헤럴드 회장의 집에서 하룻밤 더 묵게 되었고, 아이저는 세레나를 배려해서 바닥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는데, 세레나가 악몽을 꾸는지 잠꼬대로 흐느끼고 있었다. 곧장 세레나 곁으로 가 눈물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주다 그만 세레나가 잠결에 아이저를 인형처럼 껴안아버렸다. 이때 세레나가 예상보다 더 작고 말랐다는 걸 체감하며 신체적인 약점을 보았고, 잠결에 엄마를 부르며 우는 것을 보고서는 내면이 여리다는 약점을 보았다. 그런데 아이저는 이런 약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애를 쓰고 버티고 있으니 내면이 강한 사람이라고 판단했다. 과거의 자신은 세레나처럼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있어 동질감도 생겼고, 존경심도 더욱 컸다.

그렇게 긍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있을 때 강한 성적 긴장감까지 형성되었다. 순간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울어서 빨개진 코를 만졌는데, 이때 세레나가 아예 품 안으로 파고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세레나가 자신의 잠옷이 너무 얇고 노출이 있어 신경쓰인다며 아이저의 셔츠를 몰래 꺼내어 입고 있었다. 즉, 맨몸에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다는 뜻이며, 아이저는 이를 내내 신경쓰고 있었는데 그 상태에서 강하게 껴안았던지라 서로의 몸이 닿는 감각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헤럴드 회장의 집으로 함께 출장을 다녀오면서 세레나를 향하는 감정이 약간의 짜증과 흥미에서 존경과 애정으로 변하는 계기란 계기는 모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Chapter 2부터는 세레나가 자신을 향한 경계심을 많이 푼 것을 느끼고 내심 기뻐한다. 더불어 다이아[2]와의 불펀함보다 세레나의 체면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6년 전, 달린쿠르에서 주최한 가면 파티 당시 졸업생 자격으로 갔다가 구두굽이 부러져 넘어진 세레나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가면 파티 전 가면을 벗고있을 때 하퍼스가 멀찍이서 소개해주었기 때문에 그 소녀가 세레나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다 이안사와 뜻이 맞아 세레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나 세레나가 아이저를 워낙 경계했고 2년 전부터는 아예 혐오하게된 탓에 진실을 밝힐 수 없었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3] 그 구두굽이 우연히 이안사의 손에 들어왔고[4] 세레나는 그동안 구두굽을 보물이라며 소중히 보관했다고 한다. 그걸 주워준 사람이 아이저이니 아이저의 손으로 본래 있어야할 장소에 가져다주면 좋을 것 같다며 직접 건네주었다.[5] 결혼 4년차에 아이저가 세레나에게 이성적인 호감이 생겼고, 세레나 또한 조금씩 아이저를 신뢰하게 되었을 때 이 상황이 재현되었고, 그때와 똑같이 도와주면서 드디어 진실을 밝힌다.

직접적인 서술은 없지만 세레나가 빅터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을 계기로 이성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를 통해 아이저의 감정적인 약점이 세레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위치를 알아내었고, 개인 총기까지 챙겨서 세레나를 구하러 갔다.[6] 세레나에게 가는 내내 빅터에 의해 끝내 죽임을 당했을까봐 무서워한다. 다행히 세레나는 무사했지만 감시 인력 하나가 세레나의 손목을 잡아채고 있었고, 블라우스 앞섶이 풀어져 맨살이 훤히 드러나보였다.[7] 세레나를 만나기 직전까지는 한 사람 당 한두 발씩 쏴서[8] 앞길을 막지 못하도록 쓰러뜨리고 끝낸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을 보고 말았을 때는 이성이 완전히 끊어져서는 세레나가 울면서 아이저의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총을 7회나 연발했다. 세레나를 구조하고나서도 세레나가 입고 있는 옷을 거칠게 벗기고 피를 닦겠다며 개울물에 들어가서 자신의 셔츠를 벗어버리는 등, 평소의 아이저라면 절대 하지 않을 법한 행동을 보이며 매우 불안해한다. 그 이유는 범행을 사주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형, 빅터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운 자신의 가문 때문에 세레나가 목숨까지 위험해졌고, 아이저가 잘못한 것은 없는데도 스스로에게 분노를 느끼고 만다. 세레나는 그간 아이저 앞에서는 울음을 어떻게든 참아냈고, 그래서 세레나가 우는 얼굴을 궁금해했던 적이 있다. 결국 우는 모습을 봐버렸지만 빅터에게 목숨을 위협당하고 아이저가 총을 무섭게 쏘는 바람에 울려버린 것이라 우는 모습을 알고 싶어했던 과거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길 정도로 심한 자기 혐오를 보인다. 그런데 세레나는 아이저의 손을 먼저 잡고 고맙다는 말까지 전해오고, 예상 밖의 반응에 말을 잃는다.

이제는 세레나를 만지고 싶은 욕구를 넘어서 소유욕을 느끼게된다. 피 묻은 옷을 거칠게 벗기고 피를 닦아냈던 행동부터가 세레나의 몸에 다른 사람의 피가 묻어있는 꼴이 끔찍히도 싫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유욕을 느끼게 한 첫 상대이기도 하다. 예쁘고 재밌는 것을 혼자서만 맛보고 즐기고 싶었고, 그런 욕구를 품은 스스로에게 못됐다는 자기 비판을 하지만, 그렇다고 소유욕을 포기하지도 못했다. 이 욕구가 얼마나 강하냐하면, 세레나가 아픈데도[9] 주치의가 있는 저택으로 데려갔을 때 수이나 프리드릭 등에게 밀려나 아픈 세레나를 돌볼 기회를 빼앗기는 것도 싫었다고 한다. 저택의 의사를 보아야할 정도로 세레나의 상태가 위급했다면 저택으로 데려갔겠지만 그렇지는 않아서 자신만 아는 곳으로 데려가 직접 세레나를 돌봤다. 그 자신만 아는 곳의 정체는 12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별장이다. 이곳은 아이저가 불행도 모르던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장소이기에 이곳에 세레나를 데려온 행위는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별장에서도 세레나가 앓아 누워있는 동안 아서가 여러 번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마치 꽁꽁 숨겨둔 것마냥 절대 대면하지 못하게 했고, 아서가 세레나를 보고 싶다며 인사를 하려하자 두 사람이 마주치기 전에 바로 돌려보냈다.

세레나를 잃을 뻔한 일을 겪고, 둘만의 시간까지 보냈기 때문인지 전보다도 더욱 강한 욕정을 느낀다. 수시로 닿고 싶은 욕구를 참기 위해 책을 꺼내들고 다른 곳에 정신을 집중해보려 노력했지만 세레나가 갑자기 아이저에게 다가와 시선을 빼앗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윽고 자신이 무얼하든 간에 아이저가 관심없을 거라며 자존심이 상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세레나에게서 '내가 너를, 어쩌다...'라는 발언을 듣게되면서 세레나의 감정을 눈치챘는데 그 말은 곧 아이저가 세레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것을 알아버렸고 본인도 더이상은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여 키스를 통해 사랑을 고백했다. 세레나도 받아들임으로써 둘은 서로 사랑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 사이로 발전했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아이저의 바람과 달리 성관계는 맺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레나는 환경 탓에 관련 교육을 받을 시기를 놓쳤고[10] 분위기조차 읽지 못했다. 단, 가면 파티에서 남편에게 배우라는 조언을 주워 들었다며 폭탄 발언을 날리는 바람에 성교육은 암묵적으로 훗날의 아이저가 담당하게 되었다.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ff,#1f2023>하지만 나라면, 당신[11]같은 선택은 안해. (중략)

두려워도 맞서든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뺏기지 않기 위해 끝까지 버텼을 거야. 행여 이미 소중한 것을 잃었어도 무너지지 않고 제힘으로 회복할 길을 찾는 것. 그게 내가 원했던, 나의 방법이거든.
58화 ||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ff,#1f2023>그렇게 최소한의 소통 속에 무관심과 방치를 이어오다, 널 가르치며 함께 일을 시작하자 내게 튀어대던 물방울에 어느새 흠뻑 잠겨버릴 줄은 몰랐지만.
81화 ||

세레나는 알면 알수록 아이저가 원하는 사람이었다. 세레나가 아이저를 알아보겠다고 나섰는데, 아이저는 처음에 자신을 공개하길 꺼려[12] 뒷조사를 해보라고 선을 그었다. 세레나는 화를 내며 믿어볼만한 사람인지, 상의해서 힘을 합칠 수 있는지 아이저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자 뒷조사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더스틴과 다이아는 일방적인 선택을 하고 나중에서야 아이저를 위해서라고 변명하던 사람들이었다. 아이저는 그들의 선택을 원한 적 없기에 다이아의 관장 취임식 당일, 다이아에게 자신과 의논해서 상황을 헤쳐나갔어야한다고 꼬집으며 다이아와 대조되는 세레나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이저에게 서로 상의하고 싶었다는 말을 건네준 것은 세레나가 처음이었다. 끝내 스스로 밝히지는 못했지만 세레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말을 되뇌며 웃음지었다.

세레나는 아이저의 과거를 알고도 동정이 아니라 이해의 시선을 보냈다. 세레나가 겪은, 혹은 겪고 있는 어려움과 비슷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저가 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는지와 같은 행간마저 척척 읽어내고 이해해주었다. 세레나는 아이저가 자신을 이해해주었다고 했지만 그 순간 세레나도 아이저를 이해해주고 있었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이기 이전에 사제 관계이기도 하다. 세레나의 역경과 비슷한 난관들을 아이저가 이미 헤쳐나간 적이 있었다. 세레나를 가르치기 시작하며 세레나는 경영자의 사고 방식, 행동가짐을 함양해가고 있다. 그것들은 전부 세레나가 오롯이 홀로 설 기반이 될 터이다. 이와 비슷하게 산길을 헤쳐나가는 것처럼 사소한 것조차 아이저가 먼저 걸어가 걸리적거리는 것을 제거해주며 세레나가 더 쉽게 걷도록 도와주었다. 산길에서 세레나가 아이저의 배려를 자각하게 되었고, 세레나에게서 완전한 신뢰를 샀다. 세레나는 거리낌 없이 아이저의 퍼스트 네임을 부르고 손을 먼저 내밀 정도로 믿음을 보내기 시작했다.[13]

아이저의 별장에서 못다했던 행위는 저택으로 돌아온 바로 다음 날에 이루어졌으며, 드디어 세레나와 진정한 부부로 도약하게 된다. 둘은 이튿날부터 아예 세레나의 부모님이 쓰던 침실로 옮긴다. 이는 두 사람이 몸과 마음으로 부부가 되었듯, 공간 역시 하나로 합침으로써 부부가 되었다는 의식을 치른 것이고, 동시에 사용인들에게 암묵적으로 둘의 사이를 공표한 행위이다. 이 결정이 세레나에게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세레나는 사고 이후로, 부모님 생각이 날까봐 부부의 침실에는 들어가본 적이 없다. 아이저와 함께 부부의 침실을 쓰게 되면서 슬픔을 직면할 기회를 가졌고, 아이저와 슬픔을 나눔으로써 조금 더 씩씩하게 이겨내고 있다. 아이저 또한 바깥에서 감정 소모를 심하게 한 날에는 세레나에게 안겨서 의지하게 되었다.

아이저와 이안사 두 사람의 필요에 의해 부부로 맺어졌으나 아이저와 세레나 두 사람은 필요에 의한 관계가 아니다. 세레나는 아이저에게 원하는 것이 없었고, 아이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이저는 처음부터 세레나와 사랑할 계획이 없었다. 대화할 필요 조차도 못 느꼈다. 그런데 결혼 4년차에 세레나를 가르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말과 행동은 허를 찔러서 재미있고 다이아에게는 결여되어 있던 솔직함, 상호 소통, 용기 따위의 덕목들을 세레나가 모두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둘의 관계는 이안사가 사망하거나 아이저의 목표를 이루더라도 종결될 관계가 아니게 되었으며 세레나는 아이저가 내심 바라왔던 사람이기까지 하니 두 사람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쳐볼 수 있다.

세레나는 아이저에게 끝사랑이다. 단 한 가지 불안 요소는 빅터가 세레나를 자신에게서 빼앗으려한다는 현실이다. 아이저는 자신의 사람을 잃은 경험이 너무나 많다. 그들을 무력하게 잃었을 때처럼, 아이저의 마지막 사람일 세레나마저 지켜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영영 아이저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세레나를 잃으면 아이저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지도 모를 정도로 세레나는 아이저에게 중요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전과 달리 세레나만큼은 잃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공을 들여서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2.2. 다이아 더로랑

약혼자였기에 의지했던 사람이고, 책임져야할 사람이기도 했지만 아이저를 끝내 배신한 사람이다. 한때는 감정적인 약점이었다.

일종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였다. 이전부터 가문간의 협력 관계[14]로 얼굴을 마주친적은 있었으나 제대로 대화를 해본 것은 갓 성인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아이저가 성인이 되기 직전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희생을 하였는데, 아버지 더스틴과 빅터는 애도는 커녕 자선 사업을 하며 이미지 세탁을 하였다. 두 사람의 행각에 아이저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을 무렵, 21살이 되던 해의 가을, 다이아가 결혼을 제안하며 접근해왔다. 그레이언 가문에서는 더로랑을 마음에 들어했고, 더로랑은 빚을 갚아야할 처지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빅터와 다이아가 사이에서 혼담이 오갔던 시기였다. 다이아는 그레이언 가문과의 결혼을 피할 수 없었는데, 아이저가 후계자로 조금 더 유력하면서 자신의 가문을 싫어한다는 점을 마음에 들어했다. 아이저와 결혼했을 때는 가문을 물려받은 아이저가 가문을 멸문시키거나 팔아넘길 것이고, 그러면 빚도 갚으면서 그레이언 가문과도 별개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빅터는 가문에 순종적인 사람이었기에 빅터와 결혼하면 빚은 갚을 수 있을 지언정 그레이언 가문을 위해서 살아야했다. 이런 모든 계산을 끝마치고 아이저에게 결혼을 제안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다이아는 자신과 결혼하면 후계자로서 입지가 공고해질 것이라는 것을 무기로 삼았다. 아이저가 가문을 망하게 하려면 우선 가문을 물려받아야했는데, 더스틴은 아이저에게 가문을 물려주고 싶어했지만 아이저가 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불안요소로 삼고 선택을 미루고 있었다. 다이아가 제안한 거래는 솔깃했다. 아이저는 처음에는 다이아가 숨기는 게 많은데 자신은 솔직한 사람이 좋다며 거절했지만 안 그럴 것 같으면서 담배를 피는 모습도 흥미로웠고, 자신도 다이아에게는 속내를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느끼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더스틴도 결혼을 허락했으나, 약혼을 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요구했다.

필요에 의해 맺어진 관계였으나 연인처럼 가까워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저에게는 주위에 제대로 된 어른이 없다는 결핍이 있다. 아버지와 형은 나이만 먹었고, 그나마 어른 역할을 해줄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제프릭은 그레이언 가문과 인연을 끊었다. 다이아는 나이가 조금 더 많아 성숙한 듯했으며,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면모를 좋게 보고 잘 따랐다. 게다가 서로 극복하고 싶은 현실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다이아는 망하더라도 함께 망하자는 담대한 발언을 통해 미래를 약속해주었으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다이아는 이런 아이저를 미들 네임인 '리아인스'로 부를 정도로 각별하게 여겼다.

그러나 처음의 호감이 더 깊어지지는 못했으며, 아이저가 책임을 다하는 관계로 변질되었다. 갈수록 다이아가 미성숙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다이아의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 문제가 되었는데, 거짓말이 늘어갔고, 일방적인 결정을 한 뒤 변명으로 일관했다. 더 큰 문제는 마약 투약이었다. 다이아는 수시로 마약을 투약하고 인사불성이 되어 그 뒷수습을 하고 다니느라 점점 지쳐갔다. 아이저는 다이아에게 의지하기 힘들어졌으며, 다이아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다이아와 한 약속에 의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결국 둘의 관계는 서로의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맺은 약속만 아니었더라면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관계였다.

아이저는 그나마 그런 다이아라도 있어야 살 수 있었다. 다이아를 사랑했기 때문에 필요로 한 것은 아니고, 이는 아이저도 부정했다. 그럼에도 다이아를 놓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유일한 숨통이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크게 의지했다. 그 이유는 다이아는 어찌됐든 약혼자였다는 사실에 있었다. 다이아 외에 아이저의 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러비스도 있고, 22살 전까지는 하퍼스도 있었다. 라울도 늘 아이저를 생각해준다. 그러나 다이아는 약혼 관계이기에 서로를 책임져야한다. 이는 러비스와 하퍼스 같은 친구 관계와 결이 다르며, 라울과의 사이처럼 주종 관계도 아니다. 다이아도 아이저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아이저에게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듯한 말을 반복하며 아이저를 안심시켰다. 이렇게 책임으로 이어진 연대 관계에서 생존 가능성을 찾았다. 생존 본능 하나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사랑이 아니어도 마음을 주었고, 다이아가 실망스러운 순간이 끊임없이 찾아와도 관계를 차마 놓지 못하고 다이아를 포용해줄 수 있다며 자기 암시를 시도했다. 그 일환으로 다이아의 어두운 면들이 나름대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1년 뒤[15] 마침내 더스틴이 결혼 날짜를 잡아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허무하게 끝났다. 아이저와 다이아의 결혼 날짜가 잡히자 빅터가 후계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제프릭의 죽음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아이저가 더스틴에게 이를 따지자, 더스틴이 아닌 아이저가 제프릭을 죽였다는 잔혹한 진실[16]을 알렸다. 이 충격에 더스틴과 싸우고 가출하여 임시로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다. 물론 아이저의 성격 상 다이아에게 거처를 알리긴 했다. 아이저에게 더로랑의 빚을 갚아줄 능력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레이언 가문의 돈을 줄 수는 없어졌고, 다이아와 결혼을 해야할 당위성도 사라졌다.

아이저는 매우 힘든 시기였음에도 다이아를 떠올리지 못했다. 물론 연인이 있더라도 얼마든지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결정적으로 겨우 다이아가 떠올랐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을 안심시키고 본인도 의지하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지 않았고, 다른 방법으로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서로의 필요가 사라졌지만 진심을 나누었다고 생각했고, 약속이 파토난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했고, 그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다이아는 갑자기 아이저가 사라져 불안했을 수 있겠으나, 아이저가 자신의 거처를 알리고 떠났으므로 마지막으로 한 번은 아이저를 믿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저를 믿지 않고 약속을 멋대로 파기했고, 아이저를 찾아가 사실을 통보하는 최소한의 예의조차 저버렸다. 결과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러 다이아를 찾아갔던 아이저가 빅터와 진한 입맞춤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이저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각적 충격을 떠안았고, 허탈감과 배신감에 장기간 시달렸다. 위약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없었다.

아이저가 다이아의 뒤늦은 구애에도 진실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이저와 했던 약속과 맹세를 그대로 상대만 빅터로 바꾸어 이행했다. 게다가 아이저가 자신과 맺은 약속에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 아이저의 가족이 아이저에게 어떠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행동했다. 당연하게도 그동안 다이아가 했던 약속의 맹세는 진실성을 모두 잃었으며, 다이아와의 약속 하나로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잡고 모든 책임을 쏟아부은 세월이 허망해졌다. 그래서 가족들과 다이아를 미워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다가 감정이 메말라버렸다. 다이아를 마음 속에서 완전히 정리하려해도 다이아와 그레이언 가문 사이에서 지저분한 소문이 끊이질 않았고, 아이저의 귀에도 꾸준히 들어갔다. 그 탓인지 다이아는 감정적인 약점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그러다 이안사가 아이저를 찾아와 거래를 청하였고, 아이저는 세레나와 결혼을 하게되었다.

다이아에 대한 배신감이 조금 남아있던 시기에는 다이아에 관한 소식을 극도로 피했다. 임신한 채로 유학을 갔다는 소식이 마지막이었는데 그곳에서 아이저의 결혼 소식을 접했는지 세레니티 저택으로 아이저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왔다. 아이저는 수이에게 편지를 전달하지 말고 전부 폐기 처분하라고 지시했다. 그나마 전달된 마지막 편지도 읽지 않고 태워버렸다. 그래도 감정이 덜 정리되었는지 편지를 태운 후 독한 술을 먹고 생각을 지워버리곤 했다. 재회가 이루어졌을 때 다이아는 이 모든 일에 아이저의 오해가 있다고 주장하여 아이저의 화를 돋웠다. 게다가 먼저 아이저와의 약속을 어겨 놓고서 이미 아내가 있는 아이저에게 여전히 '자기' 또는 '리아인스'라고 불렀다. 연인으로의 관계 회복을 원한다는 암시였다. 결국 참다 못한 아이저는 다이아의 면전에다 직접 당신은 살아있는 더러운 과거라고까지 말했다.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ff,#1f2023>당신한테 새삼 더 실망할 것도, 질릴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평온하게라도 살길 바랐는데. 여전한 걸 보니 그냥 그렇게 계속 사는게, 당신 세상이고 수준인 것 같군.

너야 그렇게 살든 말든 이제 내 관심 밖이지만, 이 애[17] 건드리지 말아. 네 영역에 끌어들일 생각도, 감히 만날 생각도 말라고. 그땐 너도 내 적이 될 테니까. 내게 빅터같은 취급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처신해. 알아들어?.
83화 ||

그런데 막상 대화를 하게되자 예상과 달리 그나마 남아있던 미움조차도 사라져버렸다. 종합적으로 다시 만난 다이아는 너무나 기대 이하였고, 그래도 다이아의 방법을 존중해 수는 있어져서 과거에는 다이아를 원망했다면 이제는 다이아를 믿은 자신을 후회하게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다이아를 미워하다 그 미움도 대부분이 소진되었고 그 빈자리는 세레나가 대신하고 있었다. 다이아의 관장 취임식에 부부 동반으로 초대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거부하고 세레나를 홀로 보냈지만 세레나가 걱정된다는 이유 하나로 마음을 바꾸고 용기를 내어 초대객으로 갔다. 더이상 다이아가 아이저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막간에 다이아에게서 마약 냄새를 맡는 바람에 다이아가 일방적으로 관계를 끝냄으로써 풀리지 못한 채 곪아갔던 미움에 봉인이 풀렸다.

다이아는 실망할 거리가 더 남아있지 않다고 여기면 더 실망할 거리를 주었고, 아이저는 그나마 남아있던 인간적인 신뢰마저도 잃었다. 다이아와 했던 수많은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남은 딱 하나의 약속이 마약을 끊겠다는 약속이었다. 그 약속은 약혼자 다이아가 아닌, 인간 다이아에게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신뢰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약혼자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믿어서는 안될 사람이었다. 이로써 다이아를 믿고 책임지며 아버지를 향한 복수를 다짐했던 1년 남짓의 노력은 헛된 짓이 되어버렸다. 그간 대화를 기피했던 아이저였지만 이때만큼은 아이저 답지않게 흥분했다. 세레나 앞에서 다이아를 끌고 갈 정도로 이성이 반쯤 나가서 먼저 대면을 요청했다. 여기서 다이아는 아이저가 자신을 외면해서 마약을 다시 접했다는, 하지 말아야할 최악의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래도 일단 다이아를 존중할 수는 있게 되었으나, 이 존중이 미움마저도 종결되는 신호탄이었다. 다이아는 당시의 아이저는 너무 위태로워서 본인마저 짐이 될 수 없었고, 그래서 일단 목숨부터 구걸하고 본 뒤 아이저 곁에 돌아가려 했다고 해명했다. 아이저는 자신이 너무 약해서 믿지 못했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아이저의 주변에 믿을 사람이 별로 없던 시기에 다이아마저 아이저를 떠나면서 그야말로 모두에게 버려졌다. 그런데 사랑해서 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떠났다는 얘기는, 말만 사랑한다고 표현할 뿐, 상대의 마음은 조금도 보살피지 않은 처사였다. 즉, 그런 감정조차도 갖지 못할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렸다. 다만 다이아의 상황이 안좋았던 것만은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 점을 고려하면 용서를 못할 이유는 없었고, 당시에는 다이아의 가치관과 의사 결정 방식이 실망스러운 점에 지나지 않맜지만 이제는 이것을 차이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완전한 이별로 이어졌다.

다이아에 대한 미움이 사라진만큼 다이아를 믿었던 세월을 후회하는 마음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다이아는 먼저 대화를 끝내려는 아이저를 붙잡고 마지막으로 오해를 풀고 싶다며 한 가지 진실을 밝혔는데, 아이저가 가출했을 무렵에 다이아가 빅터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문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이저도 이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 소문이 거짓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해를 풀겠답시고 밝힌 진실이 거짓보다 최악이었다. 다이아는 빅터와 헤어지기 위해 임신한 척 연극을 했고, 그 아이가 아이저의 아이라는 거짓말을 하여 빅터에게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집에서 쫓겨나듯 유학을 떠난 이유도 이것때문이라고 하며, 아이저의 아이를 유산해서 건강이 나빠졌다고 보고함으로써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이 거짓이 진실로 둔갑되어 세간에 소문이 퍼졌다면 아이저의 평판이 추락하는 것은 자명하다. 인성마저도 바닥을 보여주는 다이아를 미워하는 것은 아이저에게 의미가 없었다.

다이아 때문에 불쾌할 때는 독한 술을 먹고 취해버리곤 했는데 이날은 술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후련해했다. 귀가 후 다이아와 마찰을 빚은 세레나가 눈 앞에서 술을 먹는데도 지켜보기만 할 뿐 입에 대지도 않았다. 다이아와의 만남도 더이상 피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세레나가 더로랑과 진품 논쟁을 벌였을 때는 세레나가 특별히 부탁한 적이 없는데도 아내의 체면을 먼저 생각해 나서서 더로랑 갤러리로 함께 가줄 정도로 아예 존재감 자체가 사라졌다. 심지어 세레나 납치 사건 때는 다이아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서 더로랑의 약점을 쥐고 정보를 캐내려했다.

현재 다이아는 세레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다이아가 마약을 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바람에 더욱 위험한 존재로 여겨졌다. 세레나의 차량을 슬럼가에서 발견해서 세레나를 찾아 한 건물로 들어갔는데, 세레나는 어떤 방 안에서 다이아와 함께 있었고, 뒤편에서는 마약 냄새가 짙게 났다. 다이아는 마약 투약을 하러온 게 뻔했고, 그곳의 생태를 따져보았을 때 세레나에게 억지로 투약해서 원하는 대답을 받아낸다거나 중독시켜서 망쳐버릴 작정일게 뻔했다. 그게 아니라도 언제든 마약을 이용해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뭘 하든 상관 없지만 세레나를 끌어들인다거나 감히 만난다면 빅터와 동급으로 취급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너는 그 수준 정도 뿐인 사람이라는 독설도 함께였다.

3. 그레이언 가문

3.1. 빅터 그레이언

형이지만 사이가 매우 나쁘다. 아이저가 자기 혐오를 품게 된 데에 아주 큰 지분이 있는 인물이다. 매우 잔혹한 성정을 갖고 있기에 의지조차 할 수 없었고 부모님 역시도 그랬기에 다이아에게 의지했다. 허나 다이아가 아이저를 버리고 빅터를 선택하고 빅터는 그런 다이아를 마약으로 망가뜨렸다. 그 와중에 다이아는 빅터의 아이를 임신하면서[18] 두 사람에게 배신감을 크게 느낀다. 이런 식으로 아이저의 것을 빼앗고 망가뜨린 것이 하루이틀 일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이유로 아이저는 세레나가 빅터와 얽히지 않길 바라고 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곤란해한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빅터가 매입하려는 토지를 아이저가 먼저 매입한 일을 포함하여 빅터의 계획을 번번이 저지하고 있다. 세레나가 경매장에서 납치되고, 입찰하려했던 경매의 정보와 세레나가 구입한 미술품에서 찾아낸 검은 돈을 토대로 가장 먼저 빅터를 의심한다. 그 정도로 한 치의 신뢰도 없는 사이이며, 세라가 세레나라는 사실을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면 형제 싸움은 불가피하게 되는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세레나를 구출하러 갔을 때 빅터가 자리를 비운 덕에 목숨이 오가는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이 일로 자신의 약점이 세레나라는 사실을 빅터에게 들켜버렸다.

세레나가 그레이언 가문을 유난히 나쁘게 본 이유를 드디어 듣게 되었는데,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사연인즉슨, 세레나가 라타생에서 발레를 배우던 시절 빅터의 총에 맞아 학생이 즉사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레이언 가문이 예술원을 후원하면서 후원 학생들을 접대 상품처럼 여기며 부정한 수익을 내었고, 이로 인해 학생들이 고통받았고, 세레나를 돌봐주던 언니 하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세레나는 언니의 싸늘한 주검을 두 눈으로 보고 말았다. 잇따른 사건이 몰고온 정신적 충격 때문에 그렇게나 좋아하는 발레를 그만두었다. 그래서 그레이언 가문을 나쁘게 보고 있었고, 빅터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이저를 본격적으로 불신하게 된 건 아이저가 동생과 관련하여 통화하는 것 들은 일 때문이었다. 누구를 죽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대상이 자신이 아니더라도 빅터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듯, 아이저도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아이저를 그토록 불신했던 것이었다. 당시 아이저의 통화 내용은 숨겨진 남동생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레이언 가문의 지저분한 일 중 하나였다. 누가 들어도 오해할만한 내용이었지만 그렇다한들 빅터가 아이저의 형이 아니었다면, 또는 빅터가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세레나가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며 고통받을 일도, 아이저와 세레나가 그토록 대립했을 리는 없다. 또한 세레나가 겪은 비극은 전부 그레이언 가문이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아이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레이언 가문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그 죗값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형제가 처음부터 사이가 나빴던 것은 아니었고, 아주 어릴 때는 아이저와 꼭대기 방에서 함께 놀기도 했다. 그러나 빅터가 아버지의 교육을 받게된 시점부터 아이저는 어머니와 함께했기 때문에 성장하면서 데면데면해졌다. 아이저가 밖에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친구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빅터는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일상처럼 목격하는 삶을 살았다. 아이저가 12살 때부터 빅터와 함께 교육을 받게되자 아이저에게 자신의 것을 빼앗기는 것과 같은 질투를 갖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오히려 서로 물고 뜯는 경쟁을 부추겨버렸다. 이때부터 빅터가 아이저를 싫어하게 되었고, 그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데, 빅터의 첫 번째 피해자가 바로 아이저와 어머니이다. 아버지의 범죄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어머니를 죽음 가까이로 몰고 갔다. 어머니를 체포하러 저택에 군인들과 경찰들이 찾아왔고, 이를 원치 않았던 아이저가 어머니를 저택의 꼭대기 방에 숨겼다. 그곳 열쇠는 아이저와 빅터만이 갖고 있었는데, 빅터가 아버지의 눈에 띄기 위해 열쇠로 방문을 따서 어머니를 경찰에 넘겼다. 그리고 빅터는 어머니를 넘기면서 조금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으며, 대놓고 사악하게 웃기까지 했다.

빅터의 입가에 난 큰 흉은 아이저가 낸 것이었다. 어머니가 체포된 뒤, 아버지는 아이저에게 어머니보다 돈이 더 가치있고, 사업가는 늘 더 가치있는 것을 선택해야한다고 교육했다. 어머니를 함부로 말하는 아버지에게도, 어머니를 손수 넘기고도 활짝 웃고 있는 빅터에게도 분노가 치밀었다. 그자리에서 아버지의 책상에 올려져있던 식칼을 주워들고 빅터의 웃는 입을 칼로 그어서 아버지에게 반항했고 빅터에게도 복수했다.

현재 빅터는 세레나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존재이다. 세레나를 납치하도록 사주했으며, 사건 이후 아이저가 빅터를 찾아가자 세레나를 훔치겠으니 잘 지키라고 경고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저가 지키려했던 사람들은 전부 죽거나 망가졌다며, 세레나를 죽일 의도가 이미 있음을 암시했다.

부부 사이를 더욱 어렵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세레나는 유난히 그레이언 가문을 혐오했는데, 그 이유가 세레나가 14살이던 시절 눈앞에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벌인 자선 사업 때문에 아끼던 언니를 잃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아이저를 더욱 믿기 힘들어했던 것이다. 세레나의 이러한 아픔을 알고서 더욱 자기 혐오를 느낀다.

3.2. 더스틴 그레이언

본인의 아버지로, 그간 딱 한 번만 언급되었을 뿐 내내 등장하지 않다가 세레나가 아이저의 과거를 물었을 때 아이저의 회상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회상 속에서 더스틴은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어떠한 결정 이후 그것을 아이저에게 통보하며,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안단다. 내 판단이 곧 네 판단이다, 아이저. 어쩔 수 없었어. 너라도 그랬을거야. 그레이언가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아이저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릇된 집착과 소유욕으로 인해 빅터와 아이저 형제를 심리적으로 학대한 장본인이다. 빅터가 태어나기 전까지 자기 자식은 뱃속에 있든 세상 밖으로 나왔든 자식에게 회사를 넘겨주기 싫다는 이유로 죄다 죽여버렸다. 회사를 넘겨주는 것을 회사를 빼앗기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삶은 유한하다고 주변인들과 아내가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자식을 보기로 마음을 돌렸고 두 형제가 겨우 태어났다. 자식이 태어나고 나서는 나름 애정을 보였고, 후계자가 될 빅터를 직접 교육했다. 따라서 아이저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삶은 아이저가 12살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12살 때부터 아버지의 지도를 아이저도 받게 되었는데, 아버지가 빅터에게 쏟는 관심은 올바른 사랑이 아니었다. 형태도 올바르지 않은데 그 강도마저 과도해서 사실상 학대 수준이었다. 이때부터 아이저의 불행이 시작되었다.

형제 사이를 무참히 도륙낸 범인이다. 아이저가 상급 교과를 홀로 독학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저를 칭찬했는데, 이때 빅터보다 더 낫다는 말을 흘리며 은근슬쩍 빅터와의 경쟁을 부추겼다. 아이저가 어머니와 바깥에서 보낸 시간을 쓸 데 없는 것으로 치부하여 그 시간을 완전히 없앴고, 아이저에게도 경영을 가르치게 되었다. 빅터는 더스틴의 관심을 그동안 홀로 독차지하고 있었고, 주 양육자가 더스틴이었던 만큼 더스틴에게 애착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경영도 홀로 배우고 있었고, 회사도 자신이 갖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갑자기 아이저가 나타나 모든 것을 나누어 갖게 되는 상황에 크게 불안감을 느끼게 되었다. 더스틴은 더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게 사업을 물려줄 것이고 사업은 경쟁의 연속이라며 아예 빅터의 질투와 경쟁심에 불을 붙여버린다. 심지어 경쟁에서 지는 사람을 '실패자', '도태자'로 낙인찍어 빅터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 일로 빅터가 노골적으로 아이저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두 아들의 사이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어른으로서 자격도 없다. 아이가 폭력적인 장면에 노출되는 것을 방관해왔고, 잘못이라는 자각 조차 없다. 아이저가 더스틴을 따라 공장을 따라갔을 때, 사채를 쓰고 돈을 갚지 못해 구타를 당하고 피칠갑이 된 사람을 발견했다. 그 사람은 아이저를 보고 자신도 이만한 아들이 있으니 사정을 봐달라고 하지만 더스틴은 더럽다며 아이저와 떼어놓았고, 끝내는 그자리에서 죽여버렸다. 그 아들도 찾아내어 고아원에 보내고 성인이 되자마자 독촉장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이때 아이저의 나이는 고작 12살이었다.

아이저에게서 어머니를 빼앗아간 결정적인 원인 제공자이다. 어느날, 가족 외에는 출입을 막아둔 방에 누군가 출입해버리는 바람에 범죄 행각을 들켜버렸다. 더스틴은 본인이 살겠다고 아내에게 모든 죄를 씌우고 아내를 경찰에 넘겼다. 이 일로 어머니가 죽을 수도 있었기에 아이저는 어머니를 지키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기른 괴물인 빅터가 더스틴의 눈에 띄기 위해 어머니를 손수 내어주어 더스틴에게 조력했다.

자신 때문에 아들이 어머니를 잃게 만들고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머니의 가치를 돈보다도 낮잡아보아 영원한 상처를 남겼다. 더스틴은 큰 것(돈)을 지키려면 소중한 것(어머니)을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이저에게 사상 교육을 했다. 어머니보다 돈이 더 큰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에 돈은 크면 클수록 가치가 있어 명확하고 객관적이지만, 소중하단 것은 순간의 판단일 뿐, 언제든 변하는 가치인데다, 사업가는 이득을 계산해야하는 사람이기에 더 가치있는 것을 택한 것이라며 아이저의 마음에 대못을 박아버려시다. 어머니가 돈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그야말로 천인공노할 말이었다. 아이저는 정확히 알아듣고 더스틴에게 확인차 되묻자 그저 내 아들이라서 이해가 빠르다며 좋아할 뿐 전혀 슬퍼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이저는 더스틴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칼을 집어들고 빅터에게 가서 얼굴을 그어버렸다. 자신에게는 더스틴의 가르침을 받는 것보다 어머니(더스틴의 아내)를 따라 감옥에 가는게 더 가치있고, 방금 사람을 해쳤으니 자신도 경찰에 넘기라고 말하며, 가치 있는 것을 저울질하고 더 가치있는 것을 선택하라는 더스틴의 가르침을 그대로 이용해 더스틴을 조롱했다.
||<tablewidth=100%><width=10%><tablebgcolor=#fff,#1f2023><tablebordercolor=#fff,#1f2023>이 집안이 거대한 뱀의 배 속처럼 느껴져 이곳에 더 있다간 질식해 죽을 것 같았다. 숨을 옥죄어오는 역겨운 답답함, 그간의 목적도 다 부질 없이 느껴지는 무기력함. 그저 내가 저 악마같은 인간의 핏줄로 이 집안에 태어난 게 저주스러웠다.

당장 이 집을 나가야만 했다. 당신을 죽이고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어 살든, 어머니를 따라, 제프릭을 따라 내가 죽든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를 것만 같아서.
80화 ||

결국 더스틴은 어머니를 잃게 만들었다. 더스틴은 아이저가 12살일 때 이미 한 번 아내(아이저의 어머니)를 죽일 뻔 하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았고, 팔란타오 시의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사람 하나를 죽였다. 이 일이 적발되어 그레이언 가문의 사람들 중 누군가 책임을 져야만 했다. 당시 빅터는 행방이 묘연했고, 아이저는 계승 1순위인데다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책임을 질 수가 없었다. 본인이 책임지는 건 그냥 싫었다. 그래서 다시 아내(아이저의 어머니)를 희생시키기로 했는데, 문제는 아내(아이저의 어머니)는 이미 살인 전과를 뒤집어썼기 때문에 이번에도 죄를 떠넘기면 정말로 사형이었다. 그런데도 아내(아이저의 어머니)에게 죄를 물으려 했다. 이때 아이저는 곧 성년을 앞두었을 정도로 성장했을 시기였다. 본인에게 어느 정도 힘이 있었기 때문에 빅터와 아버지를 고발함으로써 어머니를 지키기로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삼부자가 갈등하는 것도, 빅터와 아이저가 다치는 것도 싫어서 죄를 뒤집어쓰길 자처했다. 어머니는 감옥에 들어가서 사형을 기다리기보다 자결을 택했다. 더스틴과 빅터는 어머니를 애도하긴 커녕 이를 빌미로 자선 사업을 벌여 이미지 쇄신을 했다.[19]

결국 아이저를 무너뜨리는 단초를 제공했다. 그나마 아이저는 12살 무렵부터 17살까지 제프릭[20] 덕에 많은 위로를 받았고, 그레이언 가의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더스틴의 말도 안되는 가치관들은 걸러내면서도 더스틴에게서 배울 점은 배웠는데 이 역시 제프릭 덕에 스스로 터득하게된 처세술이었다. 18살에 달린쿠르가 방학을 맞아 귀가했는데, 그때부터 더스틴이 보이지 않았다. 더스틴은 사용인들과 가족들이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저 자신과의 만남이 문제가 되어 잘렸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진실은 매우 참혹했다. 더스틴은 아이저가 자신에게 반항하는 이유를 전부 제프릭 탓으로 보았고, 제프릭을 죽여버린 것이었다. 그를 죽인 방법은 더 문제였다. 아이저가 방학때 숲에서 사격 수업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제프릭을 표적으로 속이고, 아이저가 오인 사격하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이 일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죽이고야 말았고, 이 사실을 약 4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저는 제프릭이야말로 더스틴을 나쁘게만 보는 자신을 꾸짖었던 사람이라며 항변하고 분노했지만, 더스틴은 손으로 자기 사람을 죽여봐야 앞으로 주저할 게 없는 추악한 말만 할 뿐이었다. 아이저가 아꼈던 사람은 죄다 이 집안에서 죽어나갔고, 본인의 손마저 자신의 의도였든 아니든 더럽혀지자 죄책감은 물론 자신도 오염되는 기분을 느꼈다. 이 일로 아이저는 영영 가출하게 되었다.

아이저가 갖고 있는 고유의 죄책감과 자기 혐오는 전부 더스틴에게서 우러나왔다고 할 수 있다. 빅터도 물론 일조했지만 빅터라는 괴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더스틴이므로 모든 근원은 더스틴이다.

만일 아버지가 자식을 보기로 결심한 시기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빅터는 작중 시점에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고, 아이저 역시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빅터와 같은 삶을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 평판도 당연히 나빠서 아이저는 남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했다.

3.3. 어머니

빅터와 아이저를 아낌없이 사랑해준 어머니이며, 12살 까지 아이저의 주 양육자였다. 현 시점에서는 이미 사망했다. 세간에는 사업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다닌 것이 발각되어 죽음으로 빚을 갚겠다는 말을 남긴 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아이저가 어떠한 진실을 밝히고 싶어한다는 정황이 드러났고, 아이저 어머니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 살해당하고 자살로 꾸며진 것이 아니냐는 독자들의 추론이 나왔다.

아이저가 빅터와 달리 아버지에게 세뇌되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 아이저는 12살 이전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주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절 어머니와의 기억은 좋은 것들로만 가득 차있다. 아이저는 승마를 좋아해서 달린쿠르 학생이던 시절, 승마 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아이저에게 승마를 처음 가르친 인물이 다름아닌 아이저의 어머니이다. 아이저의 어머니가 승마를 좋아하여 아이저가 어릴 때 승마를 직접 지도했다. 따라서 승마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흔적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이저의 어머니가 정말로 세간에 알려진 것과 같이 극악무도한 사람이었다면 아이저가 커서도 승마를 즐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머니의 지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자주 묵으며 계급, 지위, 돈 따위의 것들과 상관 없이 어울리며 살기도 했다. 이 마을의 풍경을 살펴보면 2층 짜리 별장이 하나 있고, 앞마당에는 호수가 내다보이며, 작은 석조 다리도 하나 놓여있다. 이 2층 짜리 별장이 바로 세레나를 아무에게도 빼앗기기 싫다며 데려간 장소이다. 가장 사람답게 살았던 시절의 추억 속 장소이며, 어머니의 흔적이 짙게 묻은 장소이기에 어머니에 대한 소문의 진위에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독자들의 의심은 적중했다. 아버지가 가족 외에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한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 외부인이 침입해버리면서 아버지의 범행이 들통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는 만행을 벌였고, 어머니는 감옥으로 끌려가 경찰 수사와 재판 과정을 견뎌야했다.

아이저가 어머니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는 발언을 다이아에게 쏟은 적이 있다. 다만 아버지나 형과는 다른 이유로 어머니에게 기대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달리 매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사람답게 살았던 어릴 적의 추억은 어머니의 유산이며, 아이저는 이 기억을 준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아버지에게 정서적으로 학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여태껏 살아남아 두 형제를 무사히 낳은 강한 사람임과 동시에 아버지의 무리한 요구 하나 거절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존재였다. 아버지의 죄를 모두 뒤집어쓰게 되었을 때는 정말로 아버지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모두 알고 있었던 아이저가 어머니를 말려보았지만 어머니는 괜찮다며 아이저에게 거짓말을 했다. 일단 4개월 뒤, 살아서 돌아오긴 했으나 얼마나 고초가 심했는지 앙상하게 야위어있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결론적으로 괜찮을 거라는 본인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이후 종종 수녀원에 가서 요양을 하곤 했다.

이 인물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맞다. 자살로 몰고가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레이언가의 악행이 또다시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더스틴은 자식이든 부인이든 책임을 지우려 했고, 아이저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죄를 밝히려 했다. 그러나 아이저의 전화를 도중에 끊어버리고, 자살을 암시하는 말을 하였다.[21] 어머니는 겨우 낳은 두 자식만은 지키고 싶어했고, 아이저가 더스틴과 빅터를 미워하지 말길 바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저가 성인이 되기 직전에 생을 마감했다.

3.4. 남동생

아이저의 어머니는 빅터가 태어나기 전, 잦은 임신과 낙태, 출산으로 고통받았으며, 아이저가 태어난 뒤로도 아이를 낳았다는 의혹이 있다. 만약 이 아이가 실존한다면 여러 문제가 생기는지 아이저의 아버지와 형은 이 아이를 찾아다니고 있으며, 친척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저는 동생을 만난 적이 없으며, 이 남동생이 애초에 존재하긴 했는지조차 불분명하다고 한다. 아버지와 빅터는 그가 실존한다고 믿고 수색하고 있으며, 아이저는 실존했다 하더라도 죽었다고 여기고 있지만 그레이언 가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아버지와 형의 장단을 맞춰주었다.

아이저가 남동생과 관련하여 친척들과 연락할 때, 남이나 다를 바 없으니 이용할 때까지 이용하다가 방해가 되는 즉시 죽여버리겠다고 친척을 안심시킨 적이 있었다. 세레나가 이 대화를 듣고서 아이저가 누구를 죽인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대상이 누구이건 자신을 죽일 지도 모른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이 시점부터 둘 사이가 파국으로 갈라졌다.

그의 존재와 생사를 아는 유일한 인물은 어머니 뿐이나, 이미 고인이기에 진실은 묻혀버렸다.

3.5. 제프릭

그레이언 가문의 변호사로, 아이저가 어머니를 감옥에 보내고 어머니를 잃을까봐 불안해 하고 있을 시기에 더스틴 몰래 주기적으로 아이저에게 찾아와 위로해주고 올바른 가치관을 전달해 준 사람이다. 아이저가 더스틴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때 제프릭은 사람을 죽이고 다닌다고 하여 이정도로 사업을 번창시키는 것은 힘들기에 그 능력마저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꾸짖었다. 그 덕에 아이저는 더스틴의 가치관은 걸러내되 도움이 되는 것들은 골라서 흡수하는 처세술을 배웠다.

그러나 이 인물도 더스틴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좀 더 정확히는 더스틴의 손에 피를 묻힌 것이 아니라 아이저의 손을 빌려서 죽였다. 그 방법도 너무나 파렴치했는데, 아이저가 사격 수업을 받을 때 제프릭을 표적으로 오인하도록 유도했다. 아이저가 이 사실을 4년이 지난 22살 때 알게되면서 부, 명예, 권력 등 모든 것을 버리고 그레이언 가문을 떠났다.

제프릭은 아이저의 무력함과 죄책감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존경하는 어른이었지만 힘이 부족하여 더스틴의 곁에서 조용히 힘을 키우던 시절에 그가 죽어가는 것도 알지,못하여 그를 지키지 못했다. 더스틴에게 속았다기는 하나 본인의 손에 희생되었으므로 그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지는 어림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4. 그 외 인간관계




[1] 과거의 본인과 세레나의 상황이 비슷해서 세레나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 후술할 전 연인, 다이아 더로랑. [3] 우선 세레나가 그 사람이 아이저라는 사실을 아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 같았고, 아이저도 세레나에게 정을 줄 여유도 이유도 없었으니 과거의 인연 따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4] 이안사 역시도 졸업생 자격으로 파티에 참석했었고 아이저와도 만났다. 세레나가 집에 와서 도움을 받았던 일을 엄청 자랑했는데, 세레나가 묘사한 가면이 아이저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 세레나를 도왔던 사람이 아이저인 걸 이미 알고 있었다. [5] 그리고 한참 지나서야 이 부탁을 들어주었다. [6] 개인 총기는 왕국에서 불법이다. [7] 겁탈이나 추행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장면이었다. [8] 총 4명의 감시 인력이었고 한 명은 세레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총성은 총 4번 들렸고 세 사람에게 쏘았다. [9] 납치의 후유증 탓이다. [10] 성년의 날에 술과 성에 대해 배우는 관행이 있는데, 왕국이 개방되면서 교육을 생략하고 성년 이전에 알아서들 배우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귀족 출신 규수들은 여전히 관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데, 세레나는 성년이 되기 전에 부모를 잃었다. 집안도 위태로워져서 이안사가 교육에 신경쓰지 못했다. [11] 다이아. [12]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싫을 뿐 모르게 할 생각은 없다. [13] 퍼스트 네임을 부르지 않는 것은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세레나의 경계심을 의미했고, 손을 잡는 것은 아주 사소한 믿음을 의미한다. [14] 동등한 관계는 아니었다. 더로랑이 예술 사업을 하면서 부지도, 건물도 그레이언 가문이 마련해주는 대신 명의를 그레이언 가문에게 주었다. [15] 아이저가 22살, 다이아가 24살일 때. [16] 18살, 방학을 맞아 돌아왔을 때 제프릭이 사라져있었다. 아이저는 그 방학에 숲에서 사격 수업을 받았다. 더스틴은 아이저에게, 이때 아이저가 총으로 쏜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며 태연하게 답했다. [17] 세레나. [18] 다이아의 연극이었지만 당시에는 진실이라 믿고 있었다. [19] 이 자선 사업을 하면서도 피후원자들을 막 죽이고 다녔으며, 후원은 이름만 후원이었지 그냥 매매혼이었다.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피후원자에게 사기를 친 다음,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어서 부자와 결혼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결혼이 성사되면 고객들에게 불법적인 돈을 얻어내는 방법으로 큰 돈을 벌어들였다. 피후원자가 예술인일 경우, 자선 공연이라는 허울을 갖다붙여서 접대를 시켰다. 그레이언은 접대 비용을 취득할 수 있었고, 더 많은 돈을 끌어들였다. 아이저에게는 고인 모독이나 다름 없었다. [20] 그레이언 가문의 고문 변호사였다. [21] 자식들의 죽음을 보았을 때부터 사는게 사는게 아니었다고 한다. [22] 세레나가 호위를 들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이저가 누군가에게 '계속 지켜보는 중입니다. 그저 죽은 듯이 가만히 살고 있어요. 지금은 조용히 사는 게 도움이 된다지만, 시간이 흘러서도 쓸모없다면 없애야죠. 이용할 수 있을만큼 이용 하다 방해가 되는 순간 바로 죽일 겁니다. 그런 것쯤은 사고사로 위장하면 돼요. 사람들은 또 금방 잊을거고.' '정이라뇨, 남과 다를 바 없는 애입니다. 죽든, 살든 아무 상관도, 관심도 없습니다. 다만, 처리하더라도 제가 손댑니다. 기회를 보고 있으니, 기다리세요.'라고 말하는 통화 내용을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저가 누굴 겨냥하고 말한 것인지는 작중에서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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