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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주의 Augustinianis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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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 창시자 | 아우구스티누스 |
창시일 | 4세기 ~ 5세기 |
분류 | 기독교신학 |
이념 |
삼위일체론 은총론 |
주요 신학자 |
아우구스티누스 베네딕토 16세 다수의 서양 철학자들 및 그리스도교 신학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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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독교 성인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체계화한 기독교 신학.아우구스티누스는 주로 서방 기독교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서방 기독교라고 하는 것은 가톨릭과 개신교와 동방 가톨릭을 포함하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아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펠라기우스주의에 대항한 예정과 선택의 강조와 더불어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연구한 삼위일체에 관한 지성적 탐구와 신학 정립, 마리아론과 은총론 등등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후에 서방 신학에 매우 거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주류 서방 신학은 지금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범위에서 그다지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어는 개신교조차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1]그러나, 동방 정교회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거부하는 것이 많으며, 특히나 삼위일체론의 경우에는 거의 이단 취급하는 편이다. 또한, 그가 정립한 원죄사상이 동방 정교회에서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업적은 가히 성 바오로의 업적에 필적할 만하다.
2. 주요 내용
먼저 삼위일체론에 대해서 그의 사상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를 인간의 지성의 작동 방식을 기준으로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기억과 지성과 의지의 양태로 비유하며 사상을 전개시키는 모습을 그의 저서 삼위일체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 하느님을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 또는 의지로 표현을 시도하였다. 물론 그의 연구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으며, 후대의 후배 신학자들 중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러한 연구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존재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동방 정교회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을 성령의 휘포스타시스를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여기며 거부한다. 필리오퀘 논쟁에 대해서 동방은 성부로부터의 성령 발출만을 용인하지만, 서방은 성자를 통해서 성령이 온다고 주장하는 동방의 신학과 성자가 보내신다고 주장하는 것과는 차이가 없으며 사실상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또한, 예정설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그 기원이다. 주로 보수적인 장로교에서 주장하는 극단적인 이중예정설의 경우에도 그 뿌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뿌리를 두고 있다.[2]펠라기우스에 대항한 그의 은총론과 더불어 예정설은 가톨릭과 개신교에게 매우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여전히 지금도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장 칼뱅이 설파한 이중예정설에 반대하여 나온것이 바로 아르미니우스주의이다. 현대 가톨릭의 신학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느님의 은총을 둘 다 중시하는 편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좋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교부학의 주요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3]게다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후 후배 교부들에게도 매우 충분한 영향력을 끼쳤으며, 중세 유럽의 철학과 사상적 배경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분야를 좁혀서 신학적 측면에서만 살펴보더라도 중세 신학의 거의 알파와 오메가가 바로 이 인물이다. 롬바르도[4]의 "명제집"에 의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스콜라학자들에게 모종의 신학적 기준을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나 은총론의 경우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펠라기우스의 사상을 논박하며 형성된 교리사상 매우 중요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세 가톨릭은 이를 충실하게 보존하거나 반영했던것 같지는 않다. 아우구스티노회에 의해서, 이러한 그릇된 판단과 해석이 이루어진 적도 간혹 있었다. 9세기경, "고트샬크"에 의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이중 예정설에 해당하는 은총론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14세기에는 브래드와딘의 신학적 결정론에서 지대한 영향을 받은 위클리프의 사상과, 더불어 17세기에는 얀센주의로 대표되는 신학적 사상들의 토대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3세기 중세 유럽에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의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인식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설"을 해석함에 따라서 매우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자연적 인식도 신적 조명에 의해서 성립되며 그 때, 신은 이른바 아비첸나의 "능동이성"의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조명설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설에 결합시키는 시도도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형이상학적 바탕으로 아비체브론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질료형상주의의 해석이 중요하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의지가 지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주의주의"(主意主義)가 제창되었다. 13세기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우위에 있었다고 볼 수 있으나,[5] 아우구스티누스주의역시, 스콜라학의 기저를 형성하며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관련된 서적으로는 고백록, 삼위일체론, 신국론, 자유의지론, 은총론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