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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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27호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 |
아미타불(阿彌陀佛) / 무량수불(無量壽佛) / 무량광불(無量光佛)
불교에서 말하는 서방극락세계의 부처. 다른 말로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줄여서 미타라고도 한다. 미타사, 미타암 등 사찰 이름에 많이 쓰인다. 전생에 '법장보살'이었을 때 48대원을 세웠고 지금은 48대원이 전부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관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의 키는 60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라고 한다. 아미타불 옆에 대보살 둘이 있다. 대보살의 이름은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다.
범어로는 아미따바(Amitabha), 아미따유스(Amitayus)라고 한다. 이중 Amita는 '끝없는', abha는 광명, ayus는 삶, 수명(생명)이란 뜻이다. 따라서 아미따바는 '끝없는 광명', 아미따유스는 '끝없는 삶(수명)'이란 의미가 된다. 아미따바를 한자로 음역하면 아미타불이 되며 의역하면 무량광불, 아미따유스를 의역한 것이 무량수불이다.
2. 유래
아미타불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대승 불교 경전은 기원전 1세기에 정리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 Pratyutpanna Samādhi Sūtra)》이다. '阿彌陀'라는 한역명은 이 경을 한문으로 번역한 지루가참이 고안한 것이다.발타화여,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는 계를 온전히 지키고 홀로 한곳에 머물러서 마음으로 서방의 아미타불을 염하되, 마땅히 지금 현재 들은 그대로 염해야 한다. 이곳으로부터 천억만 불국토를 지나면 수마제(須摩提, Sumati)[1]라는 나라가 있다. 그곳의 모든 보살 가운데에서 경을 설하고 계시며, 대중들은 항상 아미타불을 염한다. (...) 서방 아미타부처님의 정토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사문이나 재가자는 마땅히 그곳의 부처님을 염(念, smrti)하고 계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일심(一心)으로 염하기를 하루 밤낮이나 혹은 7일 밤낮으로 하면, 7일이 지난 후엔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할 것이며, 깨어 있을 때 보지 못한다면 꿈속에서라도 친견하리라. (...) 보살이 이 사바세계의 국토에서 아미타불에 대해서 듣고 끊임없이 생각하면 그로 인하여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될 것이다. 부처님을 친견한 뒤에 묻기를, ‘마땅히 어떠한 법을 지녀야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면, 아미타불께서 보살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국토에 태어나고자 하는 이는 항상 나를 끊임없이 염하되, 염하기를 지켜 쉬지 않으면 이와 같이 나의 국토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리라.
《반주삼매경》 K.67(7-925)
《반주삼매경》 K.67(7-925)
아미타불이 서방극락세계의 부처가 된 것은 성불하기 전 법장보살이었을 때 48개 서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아래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그 서원의 간단한 요약이다. (왜곡 있음, 참고 자료에 정확한 내용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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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한국어 위키피디아)
아미타불은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깨달음을 얻어 열반에 들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겠다고 했는데, 석가불 다음에 부처가 될 미륵불이 부처가 되어 세상에 내려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56억 7천만 년이다. 힌두교가 나온 인도 인근에서 나온지라 단위가 큰 것도 무리는 아니다. 현실에서 56억 년 전에는 지구는커녕 태양도 없었다. 세상에 부처 1명이 탄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이렇게 어마무시한데, 아미타불은 이 무한한 시간을 기다린 후 우주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열반에 들겠다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에 강조한 부분이 중요하다. 그냥 읽기만 해도 이 서원을 세웠다는 법장보살의 대인배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이게 가능하긴 하냐는 물음은 무기 항목을 참조. 저 말을 한 분은 부처다.
불설무량수경에는 석가모니가 제자들에게 이 서원을 잘 설명하는 내용이 있다. 아미타불의 광명이 무량하여 시방세계를 두루 비추어도 걸림이 없으므로 아미타불이라고 부르고, 또한 아미타불은 수명과 그 인민(人民)들의 수명이 한량없고 끝없는 아승기겁(阿僧祇劫)이므로 아미타불이라고 이름한다고 석가모니가 말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경전에 기록된 그대로의 세계가 바로 극락. 불교가 유입된 이후 많은 대중들이 이곳에 가기를 원했다.
3. 영향
이러한 아미타불을 숭배하는 대표적인 종파가 바로 정토교이다.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가르침에 '자신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라는 공통적인 가르침이 있기 때문에, 원효 대사는 이를 이용하여 "나무아미타불[5] 관세음보살"이라는 염불[6]을 만들어 전파하여 오늘날까지도 사용된다. 물론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또는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을 염불만 한다고 불자들이 전부 현세에는 편히 살고 내세엔 극락에 가는 것이 아니고 착하게 살아야된다. 그냥 아미타불만 염불하고 악행을 쌓으며 살면 극락에 가더라도 구품왕생에 따라 영겁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르침을 받으며 죄를 씻어내야 비로소 극락에 왕생한다.
아미타불과 정토로의 극락왕생 신앙[7]은 일본에서도 인기를 많이 얻어 '현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중생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탈할 수 없으므로, 아미타불의 힘을 빌려서 정토에 가야만 해탈할 수 있다.'는 타력본원 사상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센고쿠 시대로 대표되는 잦은 전란을 겪으면서 특히 많이 퍼졌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나무아미타불'의 일본어 발음이 축약되어 남만다부 혹은 남마이다(なんまいだー)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한다.[8] 다만 일본에서는 좌종 소리와 함께 장례식 이미지가 강해서 아무 때나 쓰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불교 사찰에서 아미타불을 모신 건물은 극락전(極樂殿), 무량수전(無量壽殿), 혹은 미타전(또는 아미타전)이라고 이름을 붙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극락정토가 말 그대로 서쪽에 있다 하므로, 아미타불을 모신 건물 또한 불상을 서쪽에 모시고 문을 동쪽으로 내도록 한 경우가 많다. 불교 신자들이 동쪽으로 들어와 서쪽에 있는 아미타 불상을 바라보도록 한 것. 대표적인 예로 경북 영주의 부석사의 무량수전에 모셔진 불상 또한 서쪽에 앉아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제망매가 이야기에서도 승려 월명사가 죽은 누이를 위하여 제망매가를 부르며 미타찰(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정토)에서 만나겠다고 하자, 바람이 불어 제삿상에 올려둔 지전이 서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월명사의 누이가 서방정토로 왕생했으리라 생각하게 하는 일화이다.
4. 수인
불상으로 표현할 때는 흔히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이라고 불리는 아홉 가지 수인 중 하나를 취한다. 불상이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로,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취하는 수인인데,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만드느냐 엄지와 중지로 만드느냐 엄지와 약지로 만드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손을 둘 다 아래에 모으는지 한손만 위로 올리고 있는지 양손을 모두 위로 올리고 있는지에 따라서 하품하생, 하품중생으로부터 상품중생, 상품상생까지 총 9품으로 나뉜다. 중생이 극락에 올 때 그 중생이 얼마나 덕을 쌓았는지에 따라서 아미타불이 다른 수인을 취한다고 한다. 정말 염불'만' 외고 악행을 저지르며 불도를 닦지 않은 사람은 하품하생이고 아주 공덕을 많이 쌓고 불법에 충실히 노력한 사람은 상품상생이라는 식.우리나라에서는 아미타불상이 대부분 하품중생인(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한다. 이를 두고 일본 정토진종의 개조 신란(親鸞 1173-1263)이 주장한 악인정기설(惡人正機說)로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선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도 깨달음을 얻으려 하지만, 악인은 불법의 힘이 아니고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번뇌를 떨쳐내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에게 구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악인정기설이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생각해서 아미타불상이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하도록 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불도를 닦지 않는 자들이 구제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위에서 우리나라의 아미타불상이 주로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을 취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수인은 두 가지가 아니라 하나이다. 같은 수인을 두고 하품중생인, 또는 중품하생인이라고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이름을 부를 뿐이다. 여기에는 정답이 없어서 학계에서도 아미타구품인에서 품(品)과 생(生)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체계가 병용되는 판. 상품상생, 중품중생, 하품하생 등 3가지 수인을 제외하면 품과 생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여 이름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상품하생인'이라고 하는 것을 두고 다른 누구는 '하품상생인'이라고 하는 식이다. 일단 우리나라에서는 손의 위치가 품, 손가락이 생을 결정한다고 보는 체계를 따르는 이들이 더 많은 듯하다. 우리나라의 아미타불이 취하는 수인을 두고도 중품하생인보다는 하품중생인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다.
애당초 우리나라 아미타불상의 수인을 아미타구품인으로 해석함 자체가 잘못이라는 주장도 있다. 아미타구품인이란 개념은 일본 불교, 그마저도 17세기 에도시대 중엽에 들어서 나타났는데, 아미타구품인과 별개로 제작된 우리나라의 옛 아미타불상들이 취한 수인을 일본 불교학의 영향 때문에 억지로 구품인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관련 논문
삼국시대의 불상 중에는 아미타불인데도 (원래는 석가모니불상이 취해야 할) 항마촉지인을 취하는 사례가 있다. 그 때문에 정체가 불명확한 오래된 불상을 두고 학계에서 아미타불상인지 석가모니불상인지 논란이 벌어질 때가 있다. 심지어 석굴암 본존불상을 두고도 아미타불이라고 주장하는 소수 학자들이 있을 정도.
이런 불상이 나타난 이유는 한국의 석상들은 재료가 주로 화강암이라서라는 추측이 있다. 화강암은 단단하면서도 매우 무거운지라, 어쩔 수 없이 항마촉지인처럼 팔과 다리를 붙혀서 팔의 무게를 견딜 수 있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5. 기타
신무협 소설이나 퓨전 소설에서는 소림사 스님이 말 끝마다 아미타불이라 외고, 무당파 등 도가문파에서는 무량수불이라고 외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불교에 무지한 독자들이 둘이 서로 다른 개념인 줄 잘못 알곤 하지만, 이는 청색과 푸른색이 다른 색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아미타불=무량수불이고, 도교에서 모시는 대상은 태상노군이나 원시천존 혹은 도 그 자체다. 실제 승려나 도사들의 어투를 잘 모르는데, 부족한 지식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하려다가 결국 도사가 부처를 찾는 더 이상한 꼴이 되고 만 것이다. 다만 이게 클리셰가 되어 무량수불이 도교에서 모시는 신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런 표현을 넣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 실제로 도교의 세계관이 불교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런 쪽으로 풀이한다. 요새는 이러한 클리셰를 비꼬아 "도가의 무량수불이 불가의 아미타불에서 유래했음을 아시오?"나 "도사가 왜 뜬금없이 불을 찾습니까?"와 같은 식으로 주로 소림이 도가문파를 깔 때 이를 써먹기도 한다.물론 서로 옥신각신 다투며 설전을 하면서도 각자의 교리, 교세,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당시 불교-도교의 상황을 감안하면 도인이 무량수불 명호를 염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관세음보살도 도교에선 관음낭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신선으로 숭배받기도 했으며 민간에서 인기가 좋은 정토 사상, 현세구복 사상에 편승하고자 했던 몇몇 도관은 관 내에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외에 석가모니불 등의 불가의 불보살을 선인들과 함께 모시며 도제와 불사가 합쳐진 격식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앞서 언급한 상황의 문제점이라면 굳이 도인이 원시천존, 태상노군 등의 도교의 신을 마다하고 불보살의 명호를 우선적으로 염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비유하면 필요한 바를 아버지에게 구하지 않고 옆집 아저씨를 찾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아미타불의 범어 호칭을 음차한 것이 아미타불, 의역한 것이 무량수불, 무량광불이다. 사찰에서 아미타불 또는 아미타삼존을 모신 법당 이름이 ' 무량수전'인 것도 이것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지만 전각 내 모시는 불상이 아미타불인지 확정되지 않았다.
법장 비구가 아미타부처로 열반하였을 때 세운 서원에 '빛', 그리고 '한량없는 수명'이 관련된 서원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아미타불의 광명/빛의 12가지 공덕을 십이광이라 하는데 다음과 같다.
1. 무량광(無量光): 이익이 한량(限量)이 없어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에 두루 미치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2. 무변광(無邊光): 십방(十方)세계와 중생을 빠짐없이 다 비추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3. 무애광(無碍光):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부처가 발하는 지혜나 자비의 빛.
4. 무대광(無對光): 다른 것에 대비할 것이 없이 밝은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5. 염왕광(燄王光): 그 누구도 미칠 수 없는 자유자재의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6. 청정광(淸淨光): 탐욕에 젖은 중생들을 비추어 더러운 마음을 멸하고 청정한 불문에 나게 한다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7. 환희광(歡喜光): 그 빛이 보문을 밝히는 신통력이 있다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8. 지혜광(智慧光): 중생의 무명(無明)의 어둠을 비추는 아미타불의 지혜의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광명.
9. 부단광(不斷光): 삼세에 늘 있어 끊임없이 세간에 비추어 이익되게 한다는 아미타불의 빛.
10. 난사광(難思光): 그 덕이 깊고 묘하여 생각하거나 형용하기 어렵다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11. 무칭광(無稱光): 그 밝음의 양을 말로써는 얼마라고 나타낼 수 없다고 하여 일컫는 아미타불의 빛.
12. 초일월광(超日月光): 해와 달의 빛을 뛰어넘는 아미타불의 광명의 덕.
우리나라에서 그리는 아미타불 탱화와 달리, 티베트에서 그린 아미타불 탕카(탱화)에서는 모습이 매우 다르다. 일단 피부가 붉은색이며, 약합처럼 보이는 그릇을 품은 모습이다. 또한 수인도 우리나라 아미타불상이나 탱화들이 자주 취하는 아미타 구품인(九品印)이 아니라 일반적인 선정인(禪定印)을 취하였다.
불교에서 매월 음력 15일은 미타재일이다.
나무아미타불 염불. 아미타부처님 48대원 자막
상좌부 불교에서는 미래불이나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부처에게 귀의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다. 석가모니불의 가르침(담마)이 남아있는 한 그 가르침을 수호하고 거기에 의존하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9] 하지만 아잔 아난(Ajahn Anan)을 비롯한 극소수 상좌부 승려는 본인의 명상 체험을 바탕으로 극락세계와 아미타불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1]
묘의(妙意)를 뜻한다.
극락의 여러 별명 중 하나다.
[2]
일생보처의 경지에 든 보살은 다음 생에서 무조건 해탈하여 부처가 된다.
[3]
국사 과목에서 말하는
원효의 '불교 대중화' 공헌이 바로 이것이다. 백성들에게 "절에 뭐 바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나무아미타불만 외우시면서 부처님 믿으면 극락 갈 수 있습니다."라고 전도하면서 불교가 부담 없이 민중 속으로 파고 든 것.
삼국유사에서는 이 덕분에
원숭이까지도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다고 적어 높게 평가한다. 간혹 배움 없이 기복신앙이나 다름없는 종교가 된다며 이와 같은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리가 있는 입장이지만 이름 석자 못 쓰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백성들에게
불경을 읽게 하고 수도하게 함은 불가능하다. 당시 야만인으로 취급받던
게르만족에게 (성화공경 자체가 금지인 건 아니었으나 이전부터 우상숭배 문제로 천주교회 내에서도 예민하던 차에)
가톨릭이 결국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 성화를 발전시켜 성상으로 만들고 보여주며 교육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
[4]
서원이 적힌 위를 보면 아미타불이 이기적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불경을 보면 '이런 정토가 만들어져 세속 사람들이 아미타불만을 염불하더라도 쉽게 정토에 와서 극락왕생하는 세상이 올 때까지 나는 부처가 되지 않겠다'라는 맥락이다. 앞 주석에서의 내용을 보면 알듯 불교를 믿고 선하고 바르게 살지만 불경을 읽고 수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단지 불경을 외지 못하고 수도하지 않았다고 극락에 못 간다면 그건 그것대로 불공평한 일이다.
[5]
조선 중기까지 진언집을 보면 '나모아미다불'이라고 읽었으나, 불교가 꾸준히 탄압받으면서 전승이 영향을 받았는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다.
[6]
부처의 모습과 공덕을 생각하면서 아미타불을 부르는 일.
한민족대백과,
네이버 어학사전
[7]
이를 두고 16세기 일본에 온
예수회
선교사들은 불교가 아닌 기독교 이단 교파로 오해하기도 했다.
[8]
일본에서는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마이넘버(주민증)을 '난마이다'와 헷갈렸다는 식의 개그가 있다.
[9]
불행히도 이러한 입장은
스리랑카나
미얀마 등 일부 상좌부 불교 국가에서 '담마를 수호하기 위한' 집단이나 국가 단위의 폭력이 용인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