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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09:26:43

안드레이 아르샤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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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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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세르게이 세마크
(2006~2009)
안드레이 아르샤빈
(2009~2012)
로만 시로코프
(20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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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이 아르샤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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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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ФК Зенит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파일:아르샤빈_풋디.jpg
이름 안드레이 아르샤빈
Андрей Аршавин
본명 안드레이 세르게예비치 아르샤빈
Андрей Сергеевич Аршавин
출생 1981년 5월 29일 ([age(1981-05-19)]세)
러시아 SFSR 레닌그라드
국적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2cm | 체중 70kg
직업 축구 선수 ( 공격형 미드필더[1] / 은퇴)
디렉터
소속 선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1999~2000 / 유스)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0~2008)
아스날 FC (2009~2013)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2~2013 / 임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13~2015)
쿠반 크라스노다르 (2015~2016)
FC 카이라트 (2016~2018)
프런트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20~ / 디렉터)
국가대표 75경기 17골 ( 러시아 / 2002~2012)
링크 공식홈페이지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6.1. WAGs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前 축구 선수이자, 현재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프런트. 현역 시절 '그라운드의 마법사'라고 불렸던 선수였으며, 제니트와 아스날에서 크게 활약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2.1.1.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2000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소속 제니트에 입단하며, 섀도 스트라이커, 측면 공격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2007 시즌 10골 14도움을 기록하며 제니트의 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한편 2007-08 UEFA컵에서도 제니트가 우승하는데 기여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6년 김동진 울산 현대에서 제니트로 이적하면서 국내에도 처음 알려졌다.[2] 다만 당시까지만 해도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는 같은 유럽권이긴 해도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스페인 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 A, 독일 분데스리가 등의 인기에 밀려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고[3] 러시아 축구 자체가 '유럽의 변방'이라는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에 그저 '김동진 팀의 에이스'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로 2008을 거치며 그의 위상은 현저히 달라진다.

2.1.2. 아스날 FC

유로 2008의 활약으로 러시아의 디에고 마라도나라는 칭호를 얻으며 대어로 떠오른다. 바르샐로나, 유벤투스 등 굵직굵직한 팀들과의 숱한 염문을 뿌리던 아르샤빈이 최종적으로 종착한 곳은 아스날이었다. 1,5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클럽 레코드를 세웠다. 아르샤빈의 똥줄 영입 과정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그간 맡아온 공격형 미드필더(혹은 세컨드 스트라이커) 자리는 팀이 4-4-2 전술을 사용하다보니 포지션 자체가 없으며 또한 이 포지션을 위해 포지션을 바꾸기에는 절대적인 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롤과 겹치기 때문에 4-4-2의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4] 출전하게 되었고, 이후 아스날이 4-3-3 포메이션으로 전환함에 따라 왼쪽 윙포워드로 대부분 뛰었다.

리버풀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디디에 드록바가 아스날 킬러라면, 아르샤빈은 리버풀 킬러. 어느정도인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전설의 08-09 시즌 33라운드 리버풀 전. 4슈팅 4골. 골결정력 100%. 양팀 수비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와 더불어 아르샤빈의 결정력을 두고두고 회자할때 쓰이는 예. 아르샤빈은 네번째 골을 넣고는 네손가락을 모두 들어 올렸다.그런데도 팀은 4:4로 비겼다. 아르샤빈의 데뷔 시즌인 08-09 시즌과 이후 시즌인 09-10 시즌에서 아르샤빈의 모습은 크랙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2008-09 시즌(후반기): 13경기(선발 12경기) 6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2 12 0 6 5
FA컵 1 0 1 0 0
합계 13 12 0 6 5

2009-10 시즌: 41경기(선발 34경기) 12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0 25 5 10 1
UEFA 챔피언스 리그 6 6 0 1 5
FA컵 1 0 1 0 0
챔피언스 리그 예선 2 1 1 1 0
합계 41 34 7 12 6

하지만 팬들은 이 때의 폭발적인 아르샤빈을 그리워하며 계속 까고 있다. 아르샤빈의 폭발력은 초기 두 시즌을 제외하고 급격히 감소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기본적으로 28세가 되던 해에 아스날로 이적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비수들에게 드리블 패턴이 읽히기 시작하면서 막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아르샤빈은 체중조절을 실패한 모습을 자주 노출하면서 몸관리에 소홀한 편이었는데, 그 이유로 30세가 넘어가면서 신체능력이 급감하며 더욱 고전했다. 테크닉보다 밸런스와 운동능력에 의존하는 성향이 강했기에 더욱 기량쇠퇴가 빨리 올 수 밖에 없었다. 센세이셔널한 첫 시즌의 모습이 아쉬울 따름이었다.[5] 다만 그간 뛰어온 포지션이 아닌 측면 자원으로 주로 기용되었고 심지어 09-10 시즌에는 센터포워드 자원들의 줄부상으로 정말 어울리지도 않는 원톱 자리에서 시즌 절반을 소화했으며, 10-11 시즌 전에는 조국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으로 인한 동기부여 상실과 프로 데뷔 이후 첫 휴가라는 변수가 생겼다는 등의 변명거리는 있다. 거기에 키가 워낙 작으니 사소한 피지컬적인 하락도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2010-11 시즌: 52경기(선발 36경기) 10골 1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25 12 6 11
UEFA 챔피언스 리그 6 3 3 3 2
FA컵 5 5 0 0 1
EFL컵 4 3 1 1 3
합계 52 36 16 10 17

그래도 클래스는 어디 안간다고, 이따금씩 그만의 여전한 클래스를 보여주며 소속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으며 '러시아 사기꾼'이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경기력을 떠나 스탯만큼은 준수하게 쌓곤 했다. 그러나 체력적인 한계가 눈에 띄게 보이고 있으며 90분 풀타임을 기록한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11-12 시즌을 기점으로 후반 조커로 위상이 급락했고, 출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잦았다. 그리고 점점 러시아로 복귀하다는 이적설이 나오기 시작했고, 결국 친정팀 제니트로 복귀한다.

2011-12 시즌: 26경기(선발 11경기) 2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9 8 11 1 3
UEFA 챔피언스 리그 4 1 3 0 0
FA컵 1 1 0 0 0
EFL컵 2 1 1 1 1
합계 26 11 15 2 3

2012-13 시즌(전반기): 11경기(선발 2경기) 1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7 0 7 0 0
챔피언스 리그 2 0 2 0 0
EFL컵 2 2 0 1 5
합계 11 2 9 1 5

2.1.3.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복귀

벤치를 지키는 날이 점점 많아지더니, 결국 2012년 2월, 원 소속팀인 제니트로 임대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아스날과의 계약이 끝나고 제니트로의 완전 이적이 확정되었다.

복귀 이후 조커로 쏠쏠하게 활약하기도 했지만 30세 이후로 급격한 노쇠화 때문인지 점점 출장수가 줄어들면서 2014-15 시즌 종료 이후 제니트는 야르샤빈과 더 이상 재계약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고 계약만료로 팀을 떠날거라고 한다. 아르샤빈도 제니트를 떠나면 선수 생활에서 은퇴할 의사를 보여서 현역 은퇴가 유력해보인다.

2.1.4. 그 후

2015년 7월 14일 쿠반 크라스노다르와 1년 계약에 성공하므로써 현역을 이어간다. 2016년 2월 2일 쿠반과 계약해지를 했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프리미어 리그 카이라트와 계약해서 남은 시즌 동안 25경기 8골 8도움을 올렸다.

2018년 11월 10일, 샤흐타르 카라간디와의 리그 최종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2.2. 국가대표

2002년 5월 17일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데뷔했지만 그해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 명단에는 들어가지 못했고, UEFA 유로 2004 명단에도 탈락하였다. 2003년 2월 13일 루마니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첫 골을 신고했다. 아르샤빈은 2007년 UEFA 유로 2008 예선 에스토니아전에서 첫 주장 완장을 달았다.

2.2.1. UEFA 유로 2008

취약한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국내 축구팬들이 이 대회에서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팀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 감독이 이 분이었기 때문.

파일:external/static.guim.co.uk/Guus-Hiddink-right-and-An-002.jpg

실로 엄청난 거물이 아닐 수 없었다. '축구종가' 잉글랜드를 밀어내고 본선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내 러시아 팬들은 환호했지만, 정작 팀내 에이스인 아르샤빈은 마지막 경기에서 불필요한 반칙을 범하고 퇴장당해 결국 본선 두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대표팀 주장이였던 아르샤빈을 대체하지 않고 끝까지 명단에 남겨두었고, 본선 첫번째 경기인 스페인전에서 처참하게 발렸다.

하지만 세번째 경기인 스웨덴전에서 복귀한 아르샤빈은 팀의 두 번째 골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믿어준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8강 진출을 선물한다. 그리고 운명의 네덜란드전...

여러모로 '빅매치'라 불릴만한 경기였다. 네덜란드는 조별 리그에서 이탈리아를 3-0으로, 프랑스를 4-1로 대파하고 올라온 강팀이었고,[6] 히딩크는 러시아를 내세워 그런 자신의 조국을 꺾고 '역적'이 되겠다며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

러시아는 정신력, 피지컬에서 우위를 점하며 네덜란드를 몰아붙였다. 그야말로 창과 창의 대결. 하지만 네덜란드는 예선의 피로감 때문인지 쉽게 경기를 풀어나가지 못했으나, 0-1로 러시아에 끌려나가던 후반전 막판에 뤼트 판니스텔로이가 동점골을 뽑아내는 데 성공, 연장전에 역전을 도모하는 듯 했으나...

러시아엔 아르샤빈이 있었다. 후반전 토르빈스키의 골을 도운 날카로운 크로스로 2-1을 만들어낸 것도, 그리고 에드윈 반 데 사르와의 일대일 상황에서 통렬한 슛을 작렬시키며 3-1의 완승을 완성시킨 것도 바로 아르샤빈이었다.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였다.

러시아에서는 이 승리가 유로 1998 결승전에서 네덜란드에 패해 분루를 삼켰던 소련 국가대표팀의 복수혈전으로 받아들여진 모양. 일제히 '기적', '혁명'과 같은 기사를 쏟아내었고, 히딩크는 대한민국, 호주에 이어 러시아에서도 영웅이 되었다.

비록 4강전에서 스페인에 완패해 4강을 끝으로 러시아의 파죽지세는 꺾였지만 히딩크의 위엄을 다시 한번 세계에 널리 퍼졌고, '유로 2008의 스타' 아르샤빈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며 대회 베스트팀에 들어갔다.

이후 아르샤빈은 2008년 발롱도르 6위를 기록한다.[7]

2.2.2. 그 후

유로 2008에서 엄청난 활약 이후 아르샤빈은 2009년 러시아 국가대표팀 주장에 선정되고 팀을 이끌었으나, 아쉽게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2012년 딕 아드보카트 감독 체제에서 유로 2012의 명단에 뽑힌 아르샤빈은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지만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해 탈락하였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그리스전 패배 직후 팬과의 언쟁으로 곤혹을 치렀으며 러시아 축구 연합에서도 아르샤빈의 행동을 비판했다.

이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취임하면서 코트디부아르와의 친선 경기에 선발된 이후 국가대표에 한번도 선발되지 못했다. 공석이 된 주장은 로만 시로코프에게 넘겨졌고, 이후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탈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

천재적인 윙포워드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선수이다. 양발에 능하고, 드리블 능력도 수준급이면서 득점 능력도 되는 선수가 바로 아르샤빈. 2021년 현재로 보면, 율리안 드락슬러가 키가 작아지는 대신에 스탯에서 비약적인 발전이 생기게 되면 바로 아르샤빈과 같은 선수가 될듯 싶다.

아르샤빈의 드리블과 피니쉬의 절정을 보여준 골은 바로 아스날 시절 데뷔골이다.[8] 그리고 공미나 스트라이커도 소화할정도인지라, 연계 측면에서도 훌륭하다.[9]

단점은 멘탈과 체력, 그리고 수비가담. 수비가담이야 피지컬 특성상 그렇다 치더라도 이 선수가 몰락한 이유는 바로 멘탈적인 문제가 크다. 아르샤빈이 망하게 된 시점을 보면 2010년도 이후인데, 바로 러시아가 월드컵에서 떨어진 이후이다. 실제로 아르센 벵거가 멘탈도 따로 챙겨줘야 할 정도로 힘들어 했었던게 당시 아르샤빈. 90분 소화가 어려운 저질 체력 역시 멘탈 문제로 인한 자기 관리 소홀이 큰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르센 벵거 재임기간중에 아르샤빈과 같이 나잇대가 많은 선수를 영입한 적은 많지 않다.[10] 허나, 벵거가 지르는 이러한 베테랑급 영입이 웬만하면 중박이상을 터뜨리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선수이다. 만약 벵거가 유스만이 아닌 이러한 영입도 적절히 섞어서 이적시장을 운용하였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아스날에서 아르샤빈은 엄청난 크랙이었다.

4. 지도자 경력

2019년 2월 21일에 C급 라이선스를 따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제니트의 유스팀 풋볼 디렉터로 부임하였다. 공식 직함은 Директор департамента развития молодежного футбола по спортивным вопросам. (스포츠 문제를 위한 청소년 축구 개발부 국장) 이다.

현재 제니트의 1군 풋볼 디렉터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돌고 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6.1. WAGs

2003년 율리아 바라놉스카야와 결혼해서 자녀 3명을 두었고 아내가 3번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인 2016년 스캔들 때문에 이혼한 뒤 스캔들의 주인공인 모델 앨리스 카즈미나와 식을 올렸다. 곧 네번째 아이인 딸이 태어났고 2017년 예카테리나라는 모델과 또 스캔들이 났으나 넘어갔다. 앨리스와도 2019년 이혼했다. 앨리스는 아르샤빈과의 결혼으로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었으나 이혼 후 여러 질병에 시달렸으며 아르샤빈의 어머니는 이혼시 앨리스가 받은 재산 중에 같이 살던 집이 포함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하고 있다. 2021년 3월 기사에 따르면 앨리스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걸렸으며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1] 윙어, 스트라이커로도 뛸수 있었다. [2] 제니트로의 이적은 김동진보다 현영민이 앞섰다. 단지 그때는 더더욱 러시아 축구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터라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참고로 현영민이 회상하는 아르샤빈은 장난꾸러기 같고 사교성이 좋은 선수였다고. [3]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4] 아르샤빈보다 앞서 아스날에 입단한 토마시 로시츠키도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아스날 입단 초에는 왼쪽 측면 미드필더로 뛰었다. [5] 아르샤빈의 이적 직전, 아스날의 리그 순위는 5위. 즉 빅4에서 탈락하고 다음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참가자격 자체가 날아갈 위기였다. 아르샤빈이 오며 공격진의 숨통이 트여 그가 출전한 경기에서는 무패를 기록하며 아스톤 빌라를 끌어내리며 4위를 지켰다. [6] 불과 2년 전에 열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각각 우승, 준우승을 기록한 팀이다. 단,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을 정점으로 점점 하락세를 타던 팀이었고, 프랑스는 전력 그 자체는 꽤나 막강했으나, 지네딘 지단의 은퇴로 팀의 조직력이 막 붕괴되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반대로 당시 네덜란드는 막 상승세를 타던 시점. [7] 7위 다비드 비야, 8위 카카, 9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10위 스티븐 제라드보다도 높은 순위다. [8] 블랙번 로버스 FC전. 참고로, 아스날 공홈 선정 역대 베스트 골 탑 10에 당당히 들어가 있다. [9] 제니트에선 곧잘 공격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나섰다 [10] 페트르 체흐는 포지션 고려, 미켈 아르테타 산티 카솔라가 그나마 비슷한 케이스. [11] 임대 [12] 첼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제니트에게 비기는 통에 유벤투스 FC에 밀려 조 2위로 추락했는데, 첼시를 제외한 EPL 3개 팀이 모두 조 1위를 기록하는 통에 같은 조에 있던 팀이나 같은 나라 클럽과는 붙이지 않는 UEFA 16강 대진 추첨 규정상 레알 마드리드 CF, FC 바이에른 뮌헨, AFC 아약스, LOSC 릴 4팀간만 붙을 수 있었다. 레바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약스도 리그 1위에 조별리그 전승을 자랑하는 강팀이었던 데 반해, 릴은 추첨 당시 기준 리그 1 10위까지 떨어져 있던 상황이라 첼시 입장에서는 매치업에 따라 난이도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기적적으로 릴이랑 붙게 된 것이다. [13] 그래서 8강전 조 추첨식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미카엘 실베스트르가 추첨하게 되었다. [14] 게다가 현재 아스날에는 SNS에 푸틴에 대한 비난글을 올렸다가 삭제당한적이 있는 우크라이나 국적의 선수가 현역으로 뛰고 있다.